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공동구속자이신 성모/Our Lady Co-Redemptrix (2013-03-3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7

 


공동 구속자(Co-Redemptrix)이신 성모-(2013-03-3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십자가 곁에 그 모친과 그 모친의 아우 곧 클레오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섰더니.”(요왕19:25) 그들은 무슨 일을 했던가요? 고통을 많이 받으려고요? 이는 불공정한 것 아닌가요?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 자체를 생각해 볼 때, 심지어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자(瑕疵)없으신 어린 양이요, “하물며 영원하신 성신의 힘으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을 무구(無垢)한 희생으로 천주께 제헌(祭獻)하신.“(헤브레야 9:14)


여기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고통 당하는 무구한 사람. 왜 천주께서는 무구한 자(예수)가 고통을 겪게 하실까요? 그 분은 공정하지 않으신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 분이 공정하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보상, 즉 세상을 구원한다는 보상을 주는 것 없이 무구한 자, 죄 없는 자가 고통을 받게 끔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거스틴 성인이 구원이 신비를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얻어낸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이므로, 이는 또한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성모님도 역시 완벽한 순진 무구였습니다. 천주께서 성모께 커다란 보상을 주시려고, 공동구원자의 보상을 주시기 위해 성모님에게도 고통을 허용하십니다.


실제로 사람이 만약 ‘하자(瑕疵)없으신’이란 단어 사용을 성서를 검색한다면, 그는 놀랄만한 해답을 찾게 됩니다. 희생을 바치는 희생자가 하자 없어야 되는 것이 요구조건입니다. 어린 양은 반드시 하자 없어야 하고 성전에 바치는 송아지나 그 밖의 동물들도 하자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구원의 희생을 바치는 희생자가, 완벽하게 하자 없으신 어린 양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자 없으신 시잉태(始孕胎)가 희생의 빛이라는 사실에 놓이게 됩니다.

 

성 교회는 만약 성 육신, 즉 말씀이 육화(肉化)되기 위해서는 이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신비의 견지에서, 성모님은 하자 없으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허나 우리가 추가해야 할 사실은 성모님 또한 구원의 신비 견지에서 하자 없으시므로; 성모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희생자가 되기 위해 하자 없으시니, 그러므로 공동 구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이것은 동정 성모님의 중재 속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줍니다. 실제로 성모님의 기도: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구매”했다는, 우리는 성모께 속해있다는 어떤 확실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항상 천주님의 의지를 완벽하게 구현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온 생애는 성 육신으로부터 십자가 아래에 이르기까지 전적인 ‘피아트fiat “(그렇게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는 천주께 순명)이었으며 그 보상으로 우리 주께서는 성모께서 요청하는 것을 결코 거부하시지 않습니다.


둘째, 고통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을 때, 성모님은 커다란 용기가 됩니다. 실제로, 갈보리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회두(回頭)하는 도둑의 십자가, 회두하지 않는 도둑의 십자가입니다. 세 가지 종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저주 받은 자들의 고통, 회두자들의 고통, 그리고 무고한 이들의 고통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은 우리의 반란으로 인하여 쇠약해져서 오는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고통을 합당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통을 거부하게 될 때, 즉 우리의 죄악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교만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죄악을 위해 천주께 독성죄를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들은 고통을 경감시키진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여기 아래 지옥의 시작이 그들에겐 합당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살을 하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자살자들은 세속의 고통에서 영원한 고통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주님의 뜻을 거절하고 불순명하는, 천주님에 대한 반란의 궁극적인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고통을 결코 낭비하지 않도록 합시다.

회두(回頭)하는 자들의 고통들은 훨씬 낫습니다. 회두하는 도둑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관대함으로 보십시오. 그 도둑은 자기의 죄악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진실한 통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간구하면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 왕 안에서 신앙을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끊어질 때 연옥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왕국에 임하실 때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즉 이는 세상의 종말을 말합니다)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주십니다: “(세상의 종말 때가 아닌)오늘 그대는 나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니라” 그리고 나서 그는 다리가 꺾길 때까지 그리스도 옆에서 자기의 고통을 참고 바치고 곧장 천국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먼저 우리를 탓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가 있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된다면, 우리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죄악에 대해 속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가 천주께 불순명했었더라면, 주께서 보내신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드림으로써 구속하시는 희생, 즉 주님과 일치가 될 수 있고 과거 불순명에 대해 보상하게 됩니다. 회두하는 고통은 우리 영혼의 구속으로 가는 열매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천주께서 많은 고통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 고통을 온순하게 받아드린다면, 회두의 고통으로써 감내한다면, 우리가 죄악의 빚에 대해 충분히 배상(賠償)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그리고 나서 우리의 고통이 무구한 고통의 값어치를 얻기 시작한다고 가르칩니다.

 

아기 예수 테레사를 보십시오, 이 분은 한가지 도덕적인 죄도 범하지 않았고; 아주 가벼운 죄를 빨리 보상했으며 폐결핵의 온전한 고통을 겪었으며, 자비로운 예수 사랑에 대해 희생으로써 자신의 몸을 바쳤을 때, 무구(無垢)한 자의 고통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엄청난 성총(聖聰)을 받고 나서 전교의 후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실제로 무구한 자로서 겪는 고통은 아주 훌륭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은 다른 많은 영혼의 구원에 있어 열매가 됩니다. 테레사 성녀처럼, 영혼이 죄가 없을수록, 더 많은 영혼이 이와 같은 희생으로부터 은총을 받습니다.

 

우리 성모님은 온전히 무구하십니다. 최소한의 아주 작은 죄도 없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완벽하게 일치된 성모님의 고통은 공동 구속자로서 모든 이들에게 결실이 됩니다. 성모께서는 진실로 새로운 에와이며, “산 자들의 모친”(창세기 3:20)이며 그리스도의 삶, 영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친이십니다:”저 말씀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이 곧 사람의 빛이라“(요왕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년간 숨어 사셨습니다. 3년 반 공생애(公生涯)를 보냈지만, 십자가에서는 단지 3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 시간에 예수님 전 생애 중 가장 보람된 순간이니, 세 시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의 생애 마지막 기간, 노화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기간 동안 – 이때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일치된, 진정한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보냈을 때 - 이 기간은 사람의 생애 중 가장 결실을 맺는 보람된 순간이며, 자신 과거의 죄악에 대한 구속을 이룰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과 일치된 우리의 충실한 고통으로 인하여 가족, 자녀, 손자, 심지어 친구, 친척, 그리고 많은 다른 영혼을 위한 많은 은총을 얻게 됩니다.


 미사에 참여할 때에는 우리가 십자가 곁에 있는 것처럼, 우리도 제대 아래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성부께 드리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희생자로서 우리의 고통을 받아드리고 드림으로써, 그 분의 희생 속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 “그 연고는 육체의 원욕은 천주와 적대하느니 이 생명이 곧 사람의 빛이라“(로마서8:7)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과 함께 우리를 일치시킵시다. 공동 구속자이신 하자 없으신 성모님께서 강력한 중재자로써 우리를 도와달라고 간청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

 


Our Lady Co-Redemptrix (30th. March)


“Now there stood by the cross of Jesus,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of Cleophas, and Mary Magdalen” (Jn. 19:25). What have they done, to suffer so much? Isn’t this unjust?


But if we look upon the Cross itself, we see an even more astonishing scene: Christ is the Immaculate Lamb, “who by the Holy Ghost offered himself unspotted unto God” (Heb. 9:14).


Here we have a great mystery: the Innocent who suffers. Why God would let the Innocence One suffer? Is He unjust? Not at all! On the contrary, because He is just, He would not let the innocent one suffer without giving in compensation an exceedingly great reward, viz. the salvation of the world! This is how St Augustine explains the mystery of Redemption: it is the compensation which Christ acquired for by His Passion and Death on the Cross.


Now that is true for Our Lord Jesus Christ; this is also true for the Blessed Virgin Mary. She is also perfectly innocent; so God would not let her suffer except if He would give her an exceeding reward, becoming thereby Co-Redemptrix.


Indeed if one searches the Scriptures for the use of the word “immaculate”, one finds a surprising answer: to be immaculate is the condition required for the victim of the Sacrifice: the lamb must be immaculate, the calf, or any other animal offered in the temple must be immaculate. This is certainly in order to prefigure that the Victim of the perfect Sacrifice of Redemption, Our Lord Jesus Christ, will be the perfectly Immaculate Lamb. But this also puts the Immaculate Conception is the light of the Sacrifice-. Now the Church teaches that Our Lady is immaculate in view of the mystery if the Incarnation, in order to become a worthy receptacle for the Incarnate Word. This is true, but one should add that she is also immaculate in view of the mastery of the Redemption; she is immaculate in order to become one victim with Jesus crucified, thereby becoming Co-Redemptrix.


There is a double lesson for us: first it gives us a great confidence in the intercess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Indeed she has a certain right that her prayers be granted: she “purchased” us together with Christ, we belong to her! She has always done most perfectly the Will of God: her whole life was a total “fiat = yes to God” from the Incarnation to the foot of the Cross; in returns the Good Lord does not refuse her anything she asks!

Secondly she is a great encouragement when suffering hits us. Indeed there are three crosses on Calvary: Our Lord Jesus Christ’s cross, the cross of the penitent thief and the cross of the impenitent thief. There are three kinds of sufferings: the sufferings of the damned, the suffering of the penitents and the suffering of the innocents.


The suffering of the damned are those suffering that are wasted by our rebellion, because not only we deserved them by our sins, but we reject them when they come by the pride of refusing to acknowledge our sins; and some go so far as to blaspheme God for them: that does not diminish the sufferings, on the contrary. It is for them just a beginning of Hell here below. Some then commit suicide, which is the most foolish thing in the world, because they pass from an earthly suffering to an everlasting suffering. This is the ultimate consequence of rebellion against God, refusal of His Will to the end, disobedience to God. My dear brethren, let us never waste our sufferings that way!

The sufferings of the penitents are much better. See the generosity of Christ to the penitent thief. That thief acknowledged his guilt, he did an act of true contrition; then he publicly professed the Faith in Christ the King, begging for mercy – and he was ready to remain in Purgatory to the end of life (“Have mercy on me when thou wilt come in thy kingdom”, i.e. at the end of the world). But Our Lord Jesus Christ grants him immediate reward: “TODAY thou shalt be with me in Paradise!” Then he patiently offered his sufferings with Christ on his side, until his legs were cut off, and then he went straight to paradise. Thus when we suffer, we should always accuse our own selves first: we are not innocent; our sufferings, if faithfully united with Christ’s sufferings, have first an expiating value for our own sins. If in the past we have been disobedient to God, by accepting obediently the cross He sends us, we can become united with the Redeeming Sacrifice and make us for our past disobedience. The suffering of the penitent is fruitful unto the redemption of one’s own soul.


Now St Thomas Aquinas teaches that God gives enough occasions of suffering in our life so that, if with docility we accept them and offer them as the “sufferings of the penitent”, we can make up fully for the debt of our sins, and then our sufferings can start to get the value of the sufferings of the innocent. See for instance St Thérèse of the Child Jesus, who had not committed a single mortal sin; she had quickly made up for her venial sins, and then the whole sufferings of her tuberculosis, when she offered herself as a victim to the merciful love of Christ, became the sufferings of an innocent, and obtained an immense shower of graces, and she became the Patron of missions.


Indeed the suffering of the innocent is exceedingly more meritorious. United with Christ’s, it becomes fruitful unto the redemption of many other souls. The more innocent one is, like St Thérèse, the many more souls benefit from such sacrifice. Our Lady being perfectly innocent, without even the least venial sin, her sufferings, perfectly united with the Sacrifice of Our Lord Jesus Christ, are fruitful for all men as a co-redemption. She truly became the new Eve, true “mother of the living” (Gen. 3:20), of those who live of the life of Christ, everlasting lif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the world” (Jn 1:4).


Our Lord Jesus Christ spent 30 years of hidden life, 3 ½ years of public life, but only 3hours on the Cross; yet these three hours were the most fruitful of His whole Life, because by these three Hours of His Sacrifice, He redeemed the world. Often the last period of one’s life, often a period of suffering due to age and sickness, is also – when spent in a true Christian spirit of union with Christ crucified – such period is the most fruitful of one’s life, when one not only makes expiation for one’s past sins, but also obtains many graces for one’s family, children, grand-children, even friends, relatives and many other souls, by the faithful offering of one’s sufferings united with the Sacrifice of the Cross.


When we attend Mass, let us always remember we are at the foot of the altar as if we were at the foot of the Cross: Christ offers Himself to His Father for our salvation. Let us unite ourselves with Our Lady at the foot of the Cross, accepting and offering our own sufferings as a sacrifice with Christ’s, become one with Him in his Sacrifice, “suffering with Him so as to be glorified with Him” (Rom. 8:7). May the Immaculate Virgin Co-Redemptrix help us by her powerful intercession! Amen.


Fr. F.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