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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위 사제로 오시는 천주 성자 - 예수 성탄 첨례(2015-12-2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8



고위 사제로 오시는 천주 성자 - 예수 성탄 첨례(2015-12-2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무일도)조과 기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목자들이여, 무엇을 보았나? 말해주오. 지상에 나타나신 이 누구이신가? 새로운 탄생을 우리는 보았고, 주님을 찬미하는 천신들을 보았노라!” 목자들이여, 그 아기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그 아이에 대해 천신들이 너에게 한 말은 무엇이뇨? 천신들 이르되: “구세주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오늘 다위 읍내에 탄생하시니라.“(루까2:11)

구세주입니다! 그분은 모든 우리의 비참함, 가장 큰 죄로부터 우리를 도우실 분입니다! “저 자기 백성을 그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라.“(마테오1:21)천주님은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죄에 빠진 것에 포기하지 않으셨고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 가정문제, 경제 문제 심지어 정치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니,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의 뿌리에는 교만함, 이기심, 욕정, 시기, 질투, 증오, 폭력, 탐욕, 사기, 불공정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모든 우리 인간의 악의 뿌리이며, 죄가 고통으로, 궁극적으로는 사망으로, 그래서 영원한 형벌로 이끕니다. 이 구세주가 죄와 이에 따른 모든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하며, 그래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생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면 구세주(救世主)는 누구이며 과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는가요? 저 구세주는 “그리스도 주님”입니다! 영어로  “Lord”, 라틴어로는 “Dominus”로서 성 루까의 그리스어 “Kyrie – κύριος” 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그리스 단어가 천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 “야훼 Yawhe”(네 히브리 문자: iod, he, waw, he: “יְהוָ֧ה”로 쓰여진)를 번역하기 위해 구약에서 끊임없이 쓰인 단어임을 아실 필요가 있으니, 천주께서는 출애굽기에서(출애굽3;14-15) 산정(山頂)에 모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천신들은 목자들에게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전합니다. 이 아이가 천주님이다, 그분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은 진정 우리를 구원할 권능이 있도다. 아기 예수는 참 천주요, 영원하신 성부의 영원하신 성자이십니다. 성부와 성신과 함께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며, 모든 사물이 그로 인해 조성함을 받고 그로 인해 조성되지 않는 것이 없는(요왕1:3) 성부 지혜의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요, 만들어진 기름으로써가 아니라 천주성을 인성에 부음으로써 받은 것입니다. 그분의 인성은 그분의 천주위격으로 인해 모두 스며들었습니다. 그분 몸의 모든 세포, 그분 영혼의 모든 기능은 바로 천주성자에,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일체의 제 2위격에 속해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참으로 “거룩함 속에 거룩하신”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을 위해 성서에서 구약의 제대에 관해 쓰인 대로 모든 거룩함의 원천입니다:” 이를 만지는 자 모두 거룩해지리라“(출애굽29:27) 신앙과 겸손함으로써 우리 주 예수께로 다가가는 모든 이들은  목자들과 삼왕(동방박사)들처럼 성화되고 조촐해지고 치유됩니다

이 갓난 아기 안에 비추는 대조(對照)됨을 묵상합시다: 주님은 영원이시며 그러면서도 갓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천주 지혜의 말씀이고 그래도 아직은 갓난 아기 입니다. 말하지 못하는 아기입니다. (infans의 라틴어 어원은 말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면서도 아직은 아주 연약한 아기입니다. 무한(無限)하신 천주이시면서 아직은 작은 아기입니다. 온 세상을 소유하시면서도 아직은 그를 환영해줄 집 한 채 없이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그분은 참 천주이자, 참 사람이며 천주와 사람을 연결해 주는 다리, 즉 고위 사제입니다: 라틴어로”pontifex”는 “다리를 만드는 자 pontum facere”라는 뜻입니다.

인자(人子)가 되신 천주성자의 신비는 성 육신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한 위격에 일치된 두 본질을 지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이니, 천주성과 인성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두 번째인 천주 성자의 한 위격(位格)일치 안에서 일치되어있습니다. 그 본질(本質)은 “이것이 무엇이냐?”하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 위격은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요? 그분은 천주 성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인가요? 그분은 참 천주이자 참 사람입니다.  그분 안에서 “하나의 누구가 있고 두 개의 무엇(본질)”이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안에는 하나의 본질이 있고 세 개의 위격이 있습니다. 하나의 무엇과 세 개의 누구가 있습니다.  성부도 천주요, 성자도 천주요, 성신도 천주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로 어우러져 세 분은 오직 한 천주이십니다. 한 천주 안에 세 위격이십니다.

만일 천주 성자께서 지상에 내려오신다면, 이는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일 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주님을 무시할 수 없으며, 냉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너무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고 그분께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받아드려야 하고, 믿어야 하며,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다른 이는 없습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성부께 오지 못하리니“(요왕14:6)

“나는 교회 갈 필요가 없어 천주님은 모든 곳에 계시니, 내가 가고자 하는 곳마다 내 나름대로 천주님께 기도할 수 있어.”라는 반복하여 듣는 흔한 오류가 있습니다. 자, 천주께서 모든 곳에 계신 것은 맞지만 결론은 이를 따르지 않으니,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성 육신을 부인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천주께 갈 수가 없습니다. 천주 친히 주님께 오셔서 제정하신 길, 그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그 길을 우리가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길이며, 천주님께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목동처럼 행하고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경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삼왕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으니, 먼 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와야 되며 인성 안에 계신 주님을,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현양할 필요가 있으니 왜냐하면 주님이 또한 천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이자, 그러나 또한 천주이십니다. 인간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동안 천주께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숙소를 닫은 이들처럼 천주께 마음을 닫는 것이고 저들이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와서 그분을 통하여, 성신의 일치 안에서, 성부께 올 때까지 그들은 결코 천주님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일에 하늘로 가셨던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어떻게 지금 그 분을 찾을 수 있나요? 주님은 종도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혈우병이 있는 여인이 뒤에 숨어 나오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 가장 자리를 만지자,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은 심지어 그분의 옷자락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칠 성사를 제정하셨는데, 이 성사들은 적절한 표지를 지니며, 은총이 오고 가는 도구입니다. 마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은총을 주시는 천주이심을 보여주는 도구처럼, 성사들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을 주시는 도구입니다. 여러분이 글을 쓸 때, 손은 여러분의 지성에 대한 도구이고, 펜은 여러분 손의 도구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손처럼)”함께 결합된 도구”이며, 성사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은총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펜과 같은)”외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성 요한이 묵시록에서 말씀하시듯이, 진실로 성세로 인하여 어린 양의 성혈로써 우리 영혼을 닦습니다. 그래서 성유(聖油)로써 견진성사(堅振聖事)때에 우리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성신강림절 종도들에게 행한 것처럼 성신의 불로 타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병자에게 바르는 종부성사(終傅聖事)의 성유는 영혼과 때때로 신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해나 제헌시의 사제의 말은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요, 빵을 당신의 몸으로 변화시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 바로 그 인성 안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성사보다도 복된 성사는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 영혼과 천주성이 담긴 성체성사입니다. “이는 주의 몸이다”(요왕21:7)라는 참 예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의 구유 안에 현존하셨고 후일 이집트에서, 나자렛에서, 또는 후일 갈렐리아와 유대아의 땅을 걸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계셨듯이, 그리고 현재 천국에서도 계신 것처럼 제대 위에도, 감실 안에도 현존하십니다. 이는 같은 예수요, 참 천주이시며, 참 사람이시며 그분에게 다가오고 그분을 헌신적으로 받아드리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실 강력하신 분이십니다. 이 복된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천주님의 성 육신화된 말씀을 소유(所有)합니다. 그분이 필요없다 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떠나 살거나 다른 곳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다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받을 필요가 있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를 받아 모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천주 그 분을 참으로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천주 성자이신 예수를 찾습니다. 이 지극히 놀라운 선물에 대해서 영원이란 개념은 천주께 고마워하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성부는 영성체할 적에 우리 각자 모두에게 성자를 전적으로 온전히 주십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받으면 -우리의 공로 없이- 놀랄만한 보화를 우리 차례가 되어 주님을 우리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테오10:8) 일단 저 목자들이 예수님을 발견했으면, 주변에 가서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에 대해 말했습니다:”모든 사람도 목자들이 말한 바 이 사정을 듣고 기이히 여기며,“(루까2:18)

영적 보화는 너무나 귀중하여 그것을 주게 될 때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보화를 주면 줄수록 더 많이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사랑은 크나큰 귀중한 보화입니다: 친구들과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세속적인 보물은 사람들을 분열시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동시에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보화는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깊게 하니,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웃에게 예수님을 알려야 하고 예수님 또한 여러분 안에서 살아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았을 때, 그들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여러분이 완벽하게 “성자의 모습에 따라 순응할 때, 그 이웃들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니, 그들이 여러 많은 형제들 가운데 갓 태어난 자들”(로마8:29)이 될는지 모릅니다. 이는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 진실이지만 특히 사제에게 있어서는 더욱 더 진실입니다. 사람들이 사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사제들이 예수의 고귀한 생애를 닮아가고 사람들에게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사제를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소(聖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왜냐하면 더 많은 훌륭한 사제를 볼 필요가 있으니, 이 사제들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훌륭한 사제들이 필요하니, 이 사제들은 천국으로 가는 도상에서 사제의 모범과 제시를 보여주고 그들을 천국으로 이끌고, 신자들에게 교리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총으로 인한 성사, 그리고 특히 주께서 자신을 주시는 성체성사를 교우들에게 주니, 우리는 많은 훌륭한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몇몇 세속적인 사람들은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멸시하며 말합니다: “어찌 이 가난하고 비참한 아이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어.” 이것이 여관에 머물던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가난하고 인간의 비참한 처지에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유용한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주 성자이신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물건이란 우리 마음에 애착이 갈 가치가 없으며, 사랑 받을 만한 것도, 바랄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주 생생한 방법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니,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세속적인 물건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떼어내어야 하며, 심지어 그 물건으로부터 우리 전체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정신과는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세상”은 돈과 부를 사랑합니다; 천주의 성자이신 예수는 아무것도 없이 가장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은 쾌락과 안락을 사랑합니다. 천주의 성자이신 예수께서는 추운 겨울 밤에 오셨고, 이와 같은 혹독한 상황에서 다른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세상은 권력과 자기 의지를 사랑하지만, 천주의 성자이신 예수께서는 연약한 아기 예수로서 오셨고, 그분의 뜻을 행한 것이 아니고 성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조차 내려옴은 내 뜻을 준행하려 함이 아니라, 오직 나를 보내신 자의 의향을 준행코자 함이오.“(요왕6:38)

주님의 생애 시작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범으로 보여주신 세 가지 복음 권고인 가난, 정결, 순명으로 우리를 가르칩니다. 십자가 위의 생애 마지막 때에는, 훨씬 더 생생한 방법으로 이 세 가지를 가르칩니다: 그분은 부(富)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모든 사물로부터 벗어나, 심지어 십자가 상에서 적신으로 조차 있지 않았나요? 십자가에서 못박힌 예수보다 더 정결하며 쾌락으로부터 분리된 자 누구인가요? 예수께서 “죽기까지 순명하사, 십자가 상에서 죽음에 이르기 조차”(필리피2:8)순명한 자 누구인가요?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나요? 아, 예! 그분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으니, 왜냐하면 그분은 무한하신 선(善)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 자체는 크리스마스 때 놀라운 방법으로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기 예수께서 구유 안에 누워 계십니다. 그분 자신을 주어 우리를 먹이십니다. 십자가 상에서 성부께 제헌하셨던 몸과 성혈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살은 진짓 먹을 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요왕6:56) 그리고 그 분의 몸과 성혈로서,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이는 분명 영원한 행복의 시작입니다. 천국에서 성인들이 저들의 행복을 찾는 것은 영원히 천주님을 소유하는 것이며, 성부를 바라보는 것이며, 천주의 말씀이신 성자를 듣는 것이며, 영원한 사랑의 절정 안에서 성신의 사랑으로 타는 것입니다. 진실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하리니“(요왕6:55)

우리가 만드는 구유 안에는 단지 그분의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만, 성체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주께서 누워계신 구유입니다. 성체의 무한한 가치를 고마워하도록 합시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여, 예수 안에서 믿음을, 예수께 대한   사랑을 가르쳐주시어 그분께 충직하게 하도록, 주님께 상처가 되는 어떠한 것도, 죄도 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선업으로써 주님을 기쁘게 하고, 열성을 다하여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프랑소와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관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