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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5계명 - 살인하지 말라(2016-03-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16





제 5계명:살인하지 말라 - 고난주일(2016-03-13)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천주로부터 오는 생명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부모님께 대한 공경을 언급한 후에 그 다음 계명은 우리에 인간의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하라고 명하십니다;”살인하지 말라”(출애굽20:13) 왜 우리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목숨이 천주님 작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으뜸이자 지극히 고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주님의 모습을 닮은’(창세기1:2) 가장 고귀한 천주님 피조물을 파괴하는 것은 말할 것 없거니와 해를 끼쳐서도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생명을 지은 것이 아니라 천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자기 생명을 적절히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지극히 비통한 죄이며 자기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죽을 때조차, 심각한 질병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것이 짜증나더라도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하고 안락사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자살입니다.


 우리 이웃을 존중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무엇이든지 남이 너희게 베풀기를 원하는 것을 너희도 남에게 베풀라. 이는 법률과 선지자들의 뜻이니라.“(마테오7:12) 우리 이웃이 우리의 생명을 존중해주길 원하고 우리도 저들의 생명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무죄한 이를 살인하는 것은 항상 심각한 대죄입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현대 세상은 특히 낙태로써, 심지어 안락사로써 이러한 살인이 점철되어있습니다. 낙태는 특히 매우 비탄할 죄이니 왜냐하면 세 가지 악화시키는 환경으로써 천주님의 제4계명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태는 죄 없는 어린 아기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제5계명도 거스르는 것입니다.


 부모는 반드시 자기 자녀를 돌보는 데에 있어서 반대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태는 제4계명(부모공경)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낙태는 생명의 전달이라는 궁극적인 파괴이기 때문에 제 6계명에도 거스르는 것이고 제 1계명에도 반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어린 아이로부터 성세(聖洗)를 빼앗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대죄에 있어서 세 개의 첨가된 악화시키는 환경이 있습니다. 실제로 무죄한 희생자일수록 더 악한 살인이 되니, 배 속에 있는 아기보다 더 죄 없는 자는 누구인가요? 또한 연약한 희생자일수록 더 악한 살인이 되니, 배 속에 있는 아기보다 더 연약한 자는 누구인가요?


 마지막으로, 살인이 더 잔인할수록 그 악함도 악랄한 것입니다. 낙태는 아기를 흔히 잘라내거나 다른 악랄한 행위가 포함되는 데 만약 (신체를 절단하는)이 낙태수술을 성인에게 행한다면 그 잔인함으로 인해 세상에 충격을 줄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흔히 이루어지는 신체적, 정신적 해악이 어머니와 아버지 자체에게도 가해집니다. 이와 같은 낙태 죄에 대해서 교회는 몇 가지 심각한 처벌(파문)을 주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도 천주님의 자비는 비록 가장 악한 죄보다 더 위대하시니, 그래서 이와 같은 죄악에도 자비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정한 회개와 보속 그리고 삶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이에 대한 배상으로서의 좋은 방법은 생명 옹호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것입니다. 또한 낙태의 죄에 떨어진 모든 이들을 위해 회개의 은총을 얻기 위한 신자들의 많은 기도와 배상도 필요합니다.


 제 5계명은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과 낙태된 아기로부터 나온 신체 일부를 밀매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분명하고, (실험관 아기로써)계획적으로 부모가 되려고 하는 행위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신체를 파는 낙태 클리닉과 실험용으로 신체 조직을 파는 실험도 지극히 극악한 죄악입니다. (돈으로 인해 부패한)정치가들이 이와 같은 일이 허용할 때, 그 정치가들에게 절대로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을 찬성하는 정치가는 저들의 법이 허용하는 이 모든 죄악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저러한 정치가에게는 투표해서는 안 됩니다.


 제 5계명이 사형제도를 금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반대로, 구약은 매우 분명하게 한 나라의 합법적인 당국이 사법권을 가지고 사형제로서 더 큰 죄악을 벌할 권한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구약에는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 신성모독, 살인 그리고 많은 다른 범죄들은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신약에서는 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와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주님은 냉혈한 살인과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 교회의 전체적인 전통은 사형제를 찬성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명하기를, 의사가 몸을 구하기 위하여 악성 종양을 제거하듯이, 만약 개인이 죄를 짓고 공동선익에 위협이 된다면 그 공동선익을 위하여 합법적인 당국은 위험한 그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싱가폴에서는 마약밀매에 대해 사형제도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제 5계명은 합법적인 방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정당방위가 위협을 능가하지 않을 경우에만 합법적인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개인과 국가에게도 적용됩니다. 심지어 전쟁에서도 정당방위가 적용되는데 이웃나라에 침략해서는 안되고 자기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전쟁을 해서도 안 되며, 탐욕에 의한 전쟁은 그 자체가 큰 악이며 죄악을 저지른 인류에 대한 천주님의 큰 벌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많은 죄를 유발하기도 하고 특히 증오심을 일으키며 심지어 합법적인 전쟁인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적절한 해결책을 존중해야 하고 증오를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적인 복수(앙갚음)은 제 5계명을 거스르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복수가 정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일에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만약 자기 이웃에 의해 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가 직접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판단을 받기 위해서 법정에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제 5계명은 살인을 금할 뿐만 아니라 신체부위를 절단하다든지 이웃에게 해를 끼치거나 신체 일부를 파는 것 조차 금지합니다. 그래서 마약 사용은 신체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제5계명에 거스르는 엄중한 죄입니다. 강하게 하고 중독성을 빠르게 하는 다른 약물도 또한 1차 사용목적을 넘어 비통한 죄가 됩니다.


 신체절단의 전형적인 예가 불임수술인데 영구적인 수술뿐만 아니라 피임 같은 ‘임시적인’ 수술도 포함됩니다. 이는 아기를 가지는 자연적인 능력을 파괴하고 일시적 피임 그 자체가 불임수술의 종류이며 제5계명에 의해 금지됩니다. 이와 같은 불임수술은 그러므로 2가지 죄가 되는데, 불임수술이기 때문에 제 5계명을 거스르는 것이요, 생명 전달의 힘을 남용하는 동기이기 때문에 제 6계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현대 세상에서 의사들은 흔히 첫째나 둘째를 낳은 후의 여성들에게 불임수술을 시행하는데, 훌륭한 어머니들은 천주님께 충직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압력에 저항해야만 합니다.


 술 취함 역시 제 5계명에 의해 금지되니, 신체적 해악뿐만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이성의 사용을 빼앗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비탄한 일입니다. 이 같은 경우, 만취를 피해야 하고 반취 역시 피해야 하며, 술을 너무 마시기 보다는 적게 마심으로써 온전한 상태를 유지해야 됩니다. 특히 과거에 이와 같은 죄에 빠졌던 사람은 체계적으로 안전하다 라고 생각되는 한계보다 더 적게 마심으로써 과거의 죄를 배상하도록 해야 하고 다시 술 취하는 위험을 회피해야만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시는 장소, 즉, 술집 같은 곳조차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며 술 구매조차도 피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이르신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는 심판 받을 죄인이라 함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네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는 심판 받을 죄인이요“(마테오5;21-22) 그래서 우리 주님은 분노조차 제5계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가르쳤고 대체로 이것은 대죄는 아니지만 대죄가 될 수도 있으니, 특히 증오와 더불어 신체적인 해를 끼쳤을 때 대죄가 될 수있습니다.


 제 5계명은 가족간의 폭력을 엄격하게 금지하며 이는 신체적인 폭력과 언어폭력 금지 합니다. 자녀들을 훈육하고 교정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지혜의 온유함’(야고보3;13)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분노로써 자녀를 교정해선 안되고 사랑으로 해야 하니, 이것이 아이들에게 매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고 자녀를 야단치기 전에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교리 가르침에서 뜨리덴틴 공의회는 제 5계명이 적극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살인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내 이웃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명령하며 특히 받은 모욕을 용서하고 인내, 온유 그리고 자애로움을 실천하라고 명령합니다.


 거룩한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네 예물을 제대 앞에서 드리려 할 때에, 만일 네 형제가 너를 거슬러 무슨 혐의가 있는 줄을 거기서 생각하거든, 거기서 네 예물을 제대 앞에 머물러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하고 이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네 원수와 한 가지로 길에 있을 때에 바삐 사화(私和-화해)하라. 두리건대, 네 원수가 너를 법관에 부치고 법관은 너를 옥졸에 부치매, 네가 옥에 갇힐까 하노라.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너 호리(毫釐)라도 다 갚기 전은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테오5;23-26) 성 어거스틴은 천주께서는 우리의 선물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성인은 매우 단순하게 푸십니다:”악으로서 이기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로마12:21) 그리고 다시 ”너희는 서로 친절하게 하고 긍련히 여길 것이며, 또한 천주 그리스도 안에 너희를 용서하셨음과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할지니라.“(에페소4;32) 베드로 성인께서 말씀하시길,”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담을 악담으로 갚지 말 것이라, 오직 그와 반대로 축복할 것이니, 대저 너희는 축복을 상속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음이니라.“(베드로 전3:9)


 부당한 대우(모욕)를 용서하는 가장 커다란 격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례이니,”저는 악담을 당하실 때에도 악담을 하지 않으셨으며, 고난을 당하실 때에도 위협을 하시 않으시고, 오직 의로써 심판하시는 이에게 당신 사정을 맡기셨느니라.“(베드로 전2:23) 십자가 위에서 적을 위해 기도까지 하시면서 “성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루까23:34)

 복수나 분노로 인해 유감을 받을 때, 우리 마음 속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많이 반복하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됩니다.”성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왜냐하면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이 거룩한 말씀은 우리 마음 속의 소동을 가라앉히고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성 야고보 역시 “말에는 신중할 것이며, 분노에 급하지 마라“(야고보1:19)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 천천히, 말을 천천히 하고, 호흡도 천천히 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통제할 때까지 마음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아이들의 교정을 위해) 여러분들은 엄격한 방법으로 말을 하겠지만 여러분을 완전히 통제하면서 말을 천천히 하면서 과도한 말을 쓰지 않도록 하면서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신체적인 해악에 반대하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대해 자비의 실천을 요구하십니다:”나 굶주릴 때에 너희가 네게 먹을 것을 주고, 나 목 마를 때에 내게 마실 것을 주고, 나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집에 대접하고, 나 헐벗었을 때에 나를 입히고, 나 병들었을 때에 내게 문병하고, 나 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찾아보았음이라……나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미소한 형제 중 하나에게 베풀 때마다 곧 내게 베푼 헴이라.“(마테오25:35-36,40) 이와 같은 자비의 실천은 제5계명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 배상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주변사람들의 생활을 존중하고, 용서의 덕을 실천하고, 온유하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복되신 동정마리아께, 모든 어머니의 모범이신 온유하신 동정녀께 기도합시다. 자비의 모친이여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오 주 예수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사 우리의 마음을 네 마음과 같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 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