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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0계명 - 네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2016-06-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6-14





제10계명 -  네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 (2016-06-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계명, “네 이웃의 집, 하인, 하녀, 소, 나귀 등 그밖에 그가 소유한 것을 탐내지 말라...”(출애굽20:17)라는 제10계명에 도달합니다. 제 9계명처럼 이 계명은 우리의 내적 욕망을 통제하여 우리가 천주께로 향하도록, 탐욕, 욕심, 질투와 온갖 종류의 무질서한 애착을 벗어나 우리가 영적인 선을 향하도록 방향을 지시합니다.

 탐욕과 질투는 대죄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성인은 다른 대죄 가운데 이러한 죄를 올리고 이교도가 자기 시간을 헛되게 쓰는 부패상을 비난합니다. “각가지 불의, 악의, 음행, 간린, 악심으로 차고, 질투, 살해욕, 투쟁욕, 교활, 간계가 가득찬 자들이고“(로마1;29) 그리고 갈라디아 사람들에게는 바오로 성인께서 구원에서 배제(排除)되는 육신의 일 가운데 하나로서 질투를 비난합니다: “육체의 행실을 모르는 자는 없으리니, 음행, 부정, 파렴치, 음욕, 우상숭배, 마법, 원한, 쟁투, 질투, 분노, 당파심, 소란, 분열, 시기, 살인, 주정, 폭식 등이니리라. 이미 말한 바 다시 이르노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천주의 나라를 얻지 못하느니라.“(갈라타5:19-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각가지 간린함을 삼가하고 피하라. 대저 사람의 생명이 그 산업의 풍족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비유로써 저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부자 사람의 전답에 곡식이 풍성히 된지라. 속으로 생각하여 이르되, 내 곡식을 쌓을데 없으니, 어찌할꼬하며 이에 이르되, 이렇게 하리니, 곧 내  창고를 헐어 더 크게 짓고, 나의 모든 곡식과 재물을 거기 쌓을 것이요, 이에 내 영혼더러 이르되, <내 영혼아, 너 여러 해 동안에 쓸 바 많은 재물을 저축하여 가졌으니,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잔치하라>하리라 하더니, 천주는 저에게 가라사대, [미친 자야, 이 밤에 네 영혼(靈魂)을 거둘 것이니, 너 예비(豫備)한 것은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무릇 제 몸만 위하여 재물을 모으고 천주 대전에 재물이 없는 자는 다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시더라. 하시니라.“(루까12:15-21)

 처음 볼적에는 이 사람은 금지된 것을 전혀 않했습니다. 그는 도덕질도 않했고, 죽이지도 않했으며, 여러 가지 등등을 않했습니다. 그는 그저 성공한 농부이며, 선한 기업가였습니다. 그러면 뭐가 잘못인가요? 왜 주님은 그를 두고 “그대는 어리석다.” 라고 하셨나요. 왜냐하면 그는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재물을 사랑하며, 영원한 구원은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큰 교훈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물건에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세속적인 재물을 무척 사랑하고 있는지요? 그러면서 최고의 선이자, 지존(至尊)이신 천주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지요? 저들은 성공을 찾고, 성공과 한층 세속적인 성공을 찾으나 영원한 재물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이와 같은 자세가 잘못임을 보여주기 위해, 세속적인 물건이란 지나가는 재물, 임시적인 물건, 그리고 영원과 비교했을 때, 세속적인 재물이란 무가치하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적인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은 저 재물이 지나가는 물건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재물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릅니다. 왜냐하면, 저 재물들이 지나가고 나면 나중에는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연로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연로한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지나가는 재물을 즐길 수 없음을, 그리고 자기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날마다 늙어감을  생각 안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러면서 이와 같이 지나가는 재물에 애착을 갖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저들과는 달리)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잡을 수 있는 영(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정리는 영원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수학의 영원한 진리는 시간을 초월(超越)합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시간을 초월하고, 지나가는 재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씀하십니다: “천주께서는 천주 자신을 위해 우리를 조성하시고, 우리의 영혼은 천주 안에서 쉴 때까지는 불안하나이다.”(고백록.1:1)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이 유형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무형한 것이니, 대저 유형한 것은 변천되나 무형한 것은 영원한 연고니라.“(코린토 후4:18)

 둘째로, 세속적 재물과 물질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음을 생각합시다. ‘함께 나누는 정신’이 있다면, 그러면 그것은 오직 일부만을 소유하는 것이며,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동의 없이는 물건을 전적으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바나나를 가지고 그걸 먹는다면, 아이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바나나를 먹는 아이에게 바나나를 주면 어머니는 먹을 수 없습니다. 물질에 있어서 여러분이 준다는 것은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욕망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게 합니다. 세속물질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은 흔히 갈등, 시기, 사기, 그리고 온갖 종류의 악을 이끕니다. 바오로 성인은 경고합니다: “대저 재물을 탐하는 자들은 유감과 마귀의 올가미와 또한 사람들을 타락과 멸망에 침몰케 하는 쓸데없고 해로운 각가지 욕망에 떨어지느니라. 대저 온갖 악의 한 가지 뿌리는 재물에 대한 탐욕이니, 이를 탐구함으로써 신앙에서 멀리 방황하며 많은 고통을 자기에게 장만하는 자들의 수는 그리 적은 것은 아니니라.“(티모테오 전6:9-10) 그리고 성 베드로는 “저들의 눈은 간음에 대한 욕망과 죄악에 대한 허기로써 가득찼느니라. 저들은 건전치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그 마음은 탐욕으로써 세련되었느니, 실로 저주받은 자식들이로다.“(베드로 후2;14)하며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세째로, 부(富)는 흔히 중대한 죄가 되는 교만으로 이끌립니다. 부는 모든 걱정을 유발하며 평화와 소박한 기쁨을 빼았습니다.

 그러면 세속적인 성공을 향하여 아무런 관심과 노력도 해선 안된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으름과 의무에 대한 태만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도덕률에 거슬립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갖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직업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기업의 목표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 안에서 일지라도, 저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속적인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의 노력은 의무감에서, 봉사정신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세상의 탐욕이나 세속적인 물건에 대한 끝없는 애착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웃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받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에서 이웃에게 어떠한 봉사를 기여해야 하며, 우리가 공헌한 것으로 부터 수입을 받는게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봉사정신의 결과와 의무감에서 오는 것으로 이루어져야지, 점점 더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돈에 대한 갈증에서 오면 안 됩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러한 의무감과 봉사정신을 잘 보여 줍니다: ”도적질한 자는 이제 도적질 말고, 오히려 빈궁한 자들에게 시사(施舍)할 수 있기 위하여 자기 손을 움직이어 근로하여 써 재산을 이룰지니라.“(에페소4;28) 성인은 열심히 일할 것을 권고하나,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이행하고 그 위치에서 타인을 돕는 데에 있는 것 입니다!

 만약 우리가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질지니라.“(필립피2:5) 그러면 우리는 천국의 재물에 목말라하고 세속적인 재물로부터는 분리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심첨례때의  영성체 후송에서 행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세속적인 물건을 멸시하고 천국의 것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우리가 동시에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천국의 것을 사랑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세속적인 물건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아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은 친히 이 위대한 지혜를 가르칩니다: “너희는 보화를 땅에 쌓지 말라. 거기는 동록과 좀이 손상할 것이요, 또 도적이 파 가느니라. 오직 너희는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 거기에는 동록과 좀도 손상치 못하고 도적도 파 가지 못하느니, 대개 네 보화가 있는 곳에 곧 네 마음이 거기에 있느니라.“(마테오6:19-21)

 세속적인 일에 관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걱정, 근심을 피하라고 충고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의무는 다 해야하나,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한 현명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고, 걱정없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게 더음으로 주시리라. 또 내일 것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것은 내일에 자연 걱정될 것이니, 하루 걱정이 하루에 족하라.“(마테오6;33-34)

 이러한 자세에서 커다란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심이 과욕을 겸하였다면, 생활의 방도를 위함이 크리로다. 대저 우리는 아무 것도 못 가지고 세상에 왔느니, 또한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것은 의심의 여지도 없음이니라.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만 가졌다면 이러써 만족할 지니라.....그러나 천주의 사람인 자여, 그대는 이 모든 것을 피하고 오직 정의와 신심과 신앙과 자애와 인내와 양순을 구할지니라.“(티모테오 전6;6-8,11) “너희는 행실에 있어서는 탐욕이 없어야 할지며, 너희의 가지고 있는 그것에 만족할지니라. 대저 천주 친히 말씀하시되, [나 너희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요, 또한 버리지도 아니하리라]하셨도다.“(헤브레야13:5)

 제 9계명에 대해 설명한 바와 같이, 제 10계명을 준행하는 훌륭한 수단은 양심의 성찰입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의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어떤 목적에다 두고 행하는가? 돔 마미온 (Dom Marmion)은 아름답게 가르치길, 우리는 “천주께서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이것을 행하도록 원하시는 천주의 원하시는 방법 안에서, 왜냐하면 천주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천주께 여쭤보고 세속적인 탐욕을 피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세속적인 물건으로부터 분리된다면, 설령 우리가 그걸 잃었더라도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속적인 재물을 잃어버릴 때 몹시 화를 내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세속적인 일을 너무 사랑한다는 점을 분명이 보여 주는 것 입니다. 그와 반면에 구약에서는 거룩한 사람인 욥은 그가 어느 날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 심지어 집을 무너뜨리는 토네이도 돌풍으로 10명의 아이들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완전한 평온함을 유지 했습니다. 욥은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갈 지니라. 주시는 이도 야훼이시요, 거두시는 이도 야훼이시니, 야훼의 이름은 찬미받을 지어다.“(욥1;21) 과거에 부자, 아주 부자였지만 탐욕을 탐욕을 내지 않았고 그와는 반대로 자비로 가득찼습니다: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가난한 자의 아버지였도다.“(욥29:15-16) 그의 본보기가 보여주듯이, 탐욕과 거슬러 싸우는 좋은 방법은 의연금도 내고 시사(施舍)를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에 관해 주목할 게 있습니다: 새 미사 전례에 있어서,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세속적 물건에 대한 경시(輕視)’를 언급하는 것이 체계적으로 억압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성심첨례의 아름다운 영성체 후송이 억압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정신은 오히려 세속적인 것을 멸시하고, 복음의 권고인 가난을 실천하는 쪽으로 이끕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진복자로다.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요.“(마테오5:3) “너 만일 완전한 자 되고자 하거든, 가서 가진 바를 팔아 빈궁한 자에게 주라. 너 하늘에 보배를 얻으리니, 그제는 와서 나를 따르라.“(마테오19:21) 이것이 진정 제 10계명의 궁극적인 실천입니다. 보다 풍성하게 천국의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것을 멸시해야합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의 가장 커다란 보물은 복된 성사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커다란 값이 나가는 진주이며, 이에 관해 주님 친히 말씀하시길: “천국은 마치 아름다운 진주를 구하는 장수가 값진 진주를 만나매, 돌아가서 그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으니라.“(마테오13:45-46)

  천주님의 계명에 관해 이러한 생각 끝에, 사랑은 계명을 실현한다는 점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모든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물을 능가하여 어떻게 천주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우리 자신 처럼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냐를 설명합니다. 각각의 계명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계명은 사랑으로부터 나오고 우리가 그 계명을 실현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상호간의 사랑 외에는 아무에게도 무슨 책무를 지지 말지어다. 대저 가까운 자를 사랑하는 자는 법을 준행하는 자니라. 대저 <사음을 행치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을 말라. 망녕된 증참을 말라. 탐하지 말라>등의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과 같이 <남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이 한 마디에 총괄되었느니라. 사랑은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 그러므로 사랑은 법을 온전히 준행함이니라.“(로마13:8-10) 사랑이란 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자신보다 천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이란 “우리에게 베퍼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되는“(로마5;5) 것입니다.

 성인들의 모범, 특히 베들레헴에서 가난한 삶을 사셨던 성 요셉과 성모님의 모범은 우리가 신속하게 이러한 계명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더러 이러한 덕행의 실천과 계명에 대한 순명으로 이끌게 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자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심은, 내가 그 즐겨 하시는 바를 항상 행함이로다.“(요왕8:29) 우리가 항상 주님의 은총에 온순해지고, 그분의 계명을 준수하며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에 도달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