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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님의 자비를 얻기 위하여 - 성신강림 후 제6주일(2016-06-2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05



천주님의 자비를 얻기 위하여 - 성신강림 후 제6주일(2016-06-26)



'나 백성을 불쌍히 여기노니 대저 저들이 이미 삼일동안에 나와 함께 있으되 먹을 것이 없음이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유명한 기적을 복음서에서 우리는 읽어보았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하신 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듣고자 4천 명 정도의 백성들이 3일 동안 광야에서 있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이 자기를 잊어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서 예수님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이 먹지 않고 돌아간다면 도중에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이다.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도 있다.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하시면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부탁받지 않고, 당신 스스로 기적을 일으켜 4천명의 백성을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지난 5월 우리 어린 친구가 첫 영성체를 했지만, 이 기적은  성체성사의 전조, 예고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항상 자비하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님의 자비가 무엇인가? 천주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고 특히 6월, 예수성심성월에 예수성심으로부터 자비를 얻기 위하여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먼저, 천주께서 자비하시다는 것을 묵상합시다. 성 요한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주님은 사랑이시다” 예, 천주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천주님의 사랑은 특별한 성격을 가집니다. 천주께서는 우리 약한 사람을 사랑하시므로 자비의 성격이 있습니다. 천주께서 가진 사랑은 바로 자비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에 우리가 천주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에게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천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천주께서 매우 선하시고, 매우 자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긍련히 여기시어 우리가 그냥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천주님의 사랑이 자비의 사랑이라는 것은 즉 ‘우리가 가지는 좋은 점은 하나도 없고, 모든 좋은 것은 천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모든 것을 천주 속에서 모든 것을 발견해야 하고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미사 중의 기도입니다.


‘만선만덕을 온전히 갖추어 계시는 만군의 천주,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종’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것도, 우리의 신심생활을 향상케 하는 것도, 우리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것도,  다  천주님 속에 있고  천주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천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주님의 자비사랑의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 바오로께서 오늘 서간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묵은 사람이 저와 한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혔음은 죄의 육신을 멸하여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함임은 우리는 아는 바이니 대저 죽은 사람은 죄를 벗어버렸음이니라. 우리는 믿느니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와 한가지로 죽었으면 또한 그리스도와 한가지로 살리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수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받으시고, 그리고 천주님을 위하여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을 양식으로써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고 우리가 모든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신경 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에게 자비하신가, 긍련히 여기시는가를 생각합시다. 복음을 보면 2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주님을 기적을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말하길 ‘광야에서 어떻게 빵을 얻었다가 저들을 배 불리까? 우리는 못한다.’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4천명의 백성들은  자기를 잊어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라 왔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태도를 보고 예수님은 긍련히 여기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신다.’ 천주께로 우리가 이끌음을 받는 것은 우리가 약한 자이기 때문에 강해지도록, 우리가 잘못하기 때문에 잘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되도록, 우리가 쓸모없는 자이기 때문에 도와주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죄를 범해도 주님의 사랑을 제한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는 죄인이다.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라. 그러나 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이십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죄가 없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자임을 인정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이웃사람에게 자비할 것’을  원하십니다. 만약에 이스가리우스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을 신뢰하였다면. 만약에 주님의 사랑을 믿었다면 아마 유다도 모든 성총을 얻을 수 있었고 천주님의 자비로 큰 성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녀 소화 테레사는 말씀하시길 “천주님께 가장 기쁨을 드리는 것은 내가 작은 것을 사랑하고 내가 가난한 것을 사랑한 것을 보시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의 무한한 자비에 기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결심을 세워야합니까? 우리는 자주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도울 수 없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나를 고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비참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대신에 ‘나는 혼자로 해야겠다.’ ‘나는 예수 그리스 도 밖의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는 내 힘으로 고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러나 더 큰 힘으로서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 속에서 모든 좋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오늘은 이제부터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너무 인간적이요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 그 대신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했다면 얼마나 큰 성총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과를 보여야 한다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소홀히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구원 사업을 십자가로써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위하여 우리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모든것에 감사하면서 더욱더 예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에 기도합시다.


성모님은 항상 이처럼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께 의탁합시다.


'나 백성을 불쌍히 여기노니 대저 저들이 이미 삼일동안에 나와 함께 있으되 먹을 것이 없음이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