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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세성사(聖洗聖事)에 관하여(2016-10-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0


성세성사(聖洗聖事)에 관하여(2016-10-8)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세는 칠성사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이 성세를 받지 아니하면 다른 성사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세성사는 다른 성사로 들어가는 문, 특히 성체성사로 가는 문입니다. 이미 성 유스티노는 이르길: ”이 음식은 우리 사이에서 "성체-Eucharistia" [Εὐχαριστία = the Eucharist]라 부르는데, 그 누구도 이에 참여할 수 없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 그리고 죄의 사함에 대해서 씻김을 받고 새로 태어난 사람과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주님이 성체 안에) 살아계심을 믿는 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 참 신앙, 성세 그리고 은총상태에서의 생활이라는 거룩한 성체를 모시는 이러한 조건은 오늘날이나 교회 초창기 시절에도 같았습니다.


성세는 (새로운) 탄생이기 때문에, (영적인) 생명의 탄생이기에 (다른 성사보다) 맨 앞에 있습니다! “진실히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누 만일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천주의 나라를 보지 못하리라.“(요왕3:3) 저 새로운 탄생은 ‘물과 성신’에 의한 것입니다.(요왕3:5)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시작입니다. 성세 때에 받은 새 생명은 천국에서 활짝 핍니다. 여기서는 잃어버릴 수는 있겠으나 천국에서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같은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요단강(the Jordan)에서 성세를 받았을 적에, 물을 축성하시면서 성세를 제정하셨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성세를 받으신 후에, 천국이 열리고 성부의 음성이 들렸으며, 성신께서는 눈에 보이는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는 성세에 의해 우리가 천주님의 자녀가 되고 성신의 성전(聖殿)이 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성세를 주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종도들에게 성세를 주고 성 요한이 말하는 것처럼(요왕4:1-2) 그 종도들이 다른 종도들에게 성세를 줍니다. 요한 종도는 최초로 성세 받은 두 명의 종도 가운데 한 명인데,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 친히 주신 것 같습니다.


성세에 쓰이는 재료 (물)는 자연수, 혹은 오히려 자연수에 의해 씻겨지는 것입니다. 세 가지로 행해지는데, 교회 초창기 때처럼 물속에 잠기거나, 혹은 신체 위로 흐르는 방법으로 물을 붓거나, 혹은 (진정으로 씻겼다고 할 정도로 충분한 양으로 뿌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닦을 필요가 있다면, 목욕을 하거나 수도 물로 닦거나 샤워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성세를 하는 흔한 방법은 훨씬 실용적인 방법인 물을 붓는 방법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특히 추운 지방에서는 오히려 위험한,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위험한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재료는 죄로부터, 그리고 죄의 벌로부터 영혼을 닦아내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성세가 분명히 이를 나타내지만 그러나 또한 단지 물을 붓는 것도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매장(埋葬) 의식에서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꽃을 놓기도 하고 혹은 관을 완전히 덮지 않으면서 그 위에 흙을 조금 올려놓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세를 받은 우리가 다 그의 죽음 안에 세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우리는 저의 죽음 안에 받은바 세(洗)로 말미암아 저와 함께 묻혔노라. 대저 이는 그리스도 성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재생하여) 새 생명을 가지고 거닐으기를 위함이니라.“(로마6:3-4)


성세가 유효해지기 위해서는 피부 위에 물이 흐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한 사례를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는 한 젊은이가 자신은 개신교 목사인 삼촌에 의해 세례를 받았는데, 그 목사가 말하길 물을 손가락에 담가서 그 손가락으로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였다고 청년은 제게 말했습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진흙 속으로 떨어지면, 물에 적시던 한 손가락으로 흙이 묻은 피부에 십자가 표시만을 한다면 여러분이 깨끗해질까요? 결코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목욕하던지 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최소한 물을 받아서 닦아내야 합니다. 성 알폰소께서 자신의 도덕신학( Moral Theology)에서 분명히 언급하시길, 저러한 사례의 경우에는 그 사람은 조건부로 새로운 성세성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하신 것은 흥미롭습니다.


‘재료’의 의미는 성세의 ‘형상’ (언어)에 의해 깨끗해집니다. 이 형상은 복음서에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며 저들에게 세를 주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고…“(마테오28:19)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를 부르는 호소 (기도)는 성세란 단지 몸을 씻는 것이 아닌 신성한 씻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와 죄에 비롯된 벌이 성세 받은 영혼에서 완전히 제거되었음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권능에 의해서 입니다. 또한 사제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를 경배하면서 물로 세 개의 십자가를 만들면서 물을 붓습니다.


우리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러한 제대로 된 성세의 ‘형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개신교인들은 종도행전(사도행전)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인하여 세를 받아라.”(종도행전19:5)합니다. 그리고 개신교인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세례의 형상은 “내가 너에게 주의 이름으로 세례하노라.” 말하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세례 형식은 명백히 무효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에 대해 반대되는 것이고, 마테오 복음에서 주님이 종도들에게 분명히 주신 가르침에도 반대되는 것이며, 교회가 생긴 이후, 교회의 보편적 관습에도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 루까는 종도행전에서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라고 말했나요? 무엇보다도 종도행전의 목적은 전례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 아니고, 성사를 어떻게 거행해야 하는가에 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와 바오로의 관리하에 복음전파를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둡니다. 이들 개신교인들에게는 성 루까의 말씀으로부터 지나친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둘째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다.” 의 표현은 ‘세례자 요안의 세례’와 대조할 의향입니다. 이것은 에페소의 경우에 있어서 분명합니다: 그 도시의 최초 종도들은 세례자 요안의 제자였고 분명히 성 삼위를 알지 못했던 아폴로(Apollo)라 부르는 한 사람에 의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저들이 성신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질문하기를,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를 받았느냐?” 저들이 대답하되, “요안의 세를 받았노라.“(종도행전19:3) 만약 그들이 예수께서 주신 성세 안에서 성세를 받았더라면 그들은 반드시 성신을 알았을 것이니, 왜냐하면 특히 그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성세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들이 성신을 모른다면, 그 의미는 분명히 그들이 ‘예수님의 세례’ 방식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세에 대해 적절한 형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개신교인들의 세례는 무효입니다.


그래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개신교로부터 개종한 이들에게는 저들의 첫 세례가 유효하다고 입증되지 않는 한, (사제가) 적절한 재료와 적절한 형상과 적절한 의향을 가지고 세를 행하면서 조건부로 체계적인 성세를 다시 주었습니다.


성사란 성사가 의미하는 바를 낳습니다. 그래서 성세는 영혼을 깨끗이 씻음을 의미하고 또한 영혼 씻음 행위를 완전히 이룹니다. 성세는 이전에 범한 모든 죄를 씻는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원죄뿐만 아니라 모든 대죄 그리고 소죄도 씻어냅니다. 또한 이런 죄로 야기된 모든 처벌도 면해줍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성세 후 바로 죽으면 연옥에서 보속을 행하지 아니하고 천국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죄의 세 가지 결과를 우리가 알고 있으니, 죄의 상처가 있습니다. 이 죄의 상처는 성세로 완전히 치료되지 않습니다. 성세는 치료 과정의 시작입니다. 상처에 바르는 약입니다. 다만 그 약이 완전한 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신자들의 협력이 요구됩니다.


성세는 세를 받은 속에서 성화(聖化)의 은총을 낳습니다. 죄가 씻겨나가는 것으로서 같은 현실의 긍정적인 면입니다. 어둠은 빛에 의해 쫓겨나갑니다. 죄는 성화의 은총에 의해 달아납니다. 성화의 은총이 주입되지 않으면 죄의 사함이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역으로 (악의 면에서 볼 때) 죄가 쫓겨남이 없이 성화의 은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정 성화의 은총과 악이 같은 영혼 안에서 함께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빛과 어둠이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능히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라.“(마테오6:24) 성화의 은총은 천주님의 생명 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 베로도 이르시길,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위대하고 존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주심은 이 너희로 하여금 이를 인하여 세속의 육감적 쾌락과 및 부도덕함을 피하여 천주성에 참여하는 자 되기를 위하심이니라“(베드로 후1:4) 천주님의 본성, 천주생명에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주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생명을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은 천주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세에 관한 또 다른 매우 중요한 결과는 성세가 영혼 위에 새기는 특성입니다. 성세에 의해 우리는 천주님의 자녀로서 표시됩니다. 저 특성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성세로 인해 가치 있게 살다가 천국에 가는 이들에게는 영광이 되고, 천주님이 없는 것처럼 살면서 자신의 성세를 더럽히고 지옥으로 가는 이들에게는 치욕이 됩니다. 저 특성은 생애를 통하여 실제적 은총의 놀라운 결과, 천주님의 자녀로서 값있게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은총입니다.


성사는 ‘성사를 곧 수행함’ (ex opere operato )으로써 작용됩니다. 이 의미는 사람이 저 성사를 받았다는 그 사실로 인해 그는 그 성사의 효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효력에 대한 조당 (장애)이 없어야 합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 도둑이 성세를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훔친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훔친 물건이 은총에 있어서 조당 (장애)이 되고, 그가 성세특성을 받는 것이 있지만 성화의 은총과 죄의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옛 죄에 신성모독의 죄를 첨가할 뿐입니다.

성세의 은총에 있어서 가장 흔한 조당은 참된 신앙인 가톨릭신앙에 대한 거절인 이단(異端)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의 세례가 은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조당을 두지 않는 아기는 예외입니다. 이와 같은 조당은 종도들의 신앙, 가톨릭신앙과 고해성사 등을 받아드리는 회두를 통해 제거됩니다.


성세성사의 보편적 관리자는 사제다; 사제는 교회가 제정한 모든 아름다운 전례로 ‘숭고한 성세’를 줄 수 있다. 다만 비상시의 경우, 어떤 신자든 혹은 가톨릭신자가 아닌 어느 사람도 성세를 줄 수 있다. 왜 그래야 하나? 천주께서 모든 이의 영혼구령을 원하시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사람이 누구나 성세 받을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가 출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서 성세 줄 수 없을 때, 비록 간호사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요청하여 적절하게 거행된 성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아기에게 성세를 줄 수 있다. 즉 간호사는 아기의 피부 위에 물을 부으면서,“내가 너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성세를 주노라.” 하면서 세를 준다. 어머니가 원하는 의향을 가지고 올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 의향만으로 충분하니, 왜냐하면 어머니는 교회가 의도하는 그런 의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이러한 성세는 유효하다.


올바른 의향...즉 교회가 바라는 의도가 또한 요구되니, 말과 전례의 그 중요성은 궁극적으로 그 관리자(사제)의 의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몇몇 개신교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만약 교회의 의도가 명백히 거부되면, 그 의향의 결핍은 그 성사를 무효로 만듭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설명하기를, 영국 성공회의 신품성사에 있어서, 희생을 뜻하는 사제직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에게는 올바른 의향이 없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의 서품은 무효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전례의 바로 그런 거행은 의향이 옳다는 보증입니다.


성세의 의식은 아름다우며 추가되는 은총의 원천입니다. 이 성사는 매우 중요한 질문과 답변으로 시작됩니다: 사제가 묻기를, “천주교회에서 무엇을 요구합니까?” 입문자 (예비자)는 대답하길, “신앙을 원합니다.” 사제가 묻습니다:“신앙은 무엇을 줍니까? 입문자: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결론을 내립니다: ”만약 생명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명을 지키세요.“ 이러한 짧은 문답은 성세의 전체적인 정신과 목적이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서의 영생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의 눈  앞에서 이와 같은 목적을 항상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눈물의 계곡에서 귀향을 살면서’ 이곳에 순례 중입니다: ”너희는 성도들 중의 한 신민(臣民)이며, 천주의 집안의 한 사람이니라.“(에페서2:19)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입문자는 참 교회로부터 참 신앙을 요구합니다: “천주교회에서 무엇을 요구합니까? 신앙을 원합니다.” 성세가 주고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성세는 제가 몇 주 전 설명한 바와 같이 성화의 은총과 더불어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이라는 주입된 덕행을 줍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명에 대한 순명이 요구됩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그래서 교회가 간곡히 권고하는 것입니다. “너 만일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계명을 지켜라.” 이것은 “선하신 선생이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오까?”(마테오19:16) 하고 주님께 묻는 젊은이에게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 만일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계명을 지켜라.”(마테오19:17)


(현대 가톨릭) 새미사의 성세는 많은 요소가 사라지고 억압되어 있고, 최초의 문답이 선택사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미사는 참 교회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혹은 최소한 이것 역시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제는 성신이 오심을 상징으로, 성신강림절의 강한 바람처럼 아이에게 입김을 불어넣으면 말하길, “약한 영아, 그에게서 떠나라. 그리고 성신을 받으라.” 그래서 전쟁이 진행됨을 보게 되니, 영혼을 위한 전쟁입니다. 천주님은 저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데, 악마는 주변에서 그를 속여서 멸망으로 인도하려합니다. 죄 때문에, 원죄와 실제적인 죄 때문에 성세를 받지 않는 것은 악마의 권능 안에 분명히 있으니, 이 악마는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합니다. 그리스도는 악마(惡魔)의 힘으로부터, 심지어 악령퇴치(퇴마)로 제거하면서까지 저 영혼을 데려오고자 합니다.


악령 퇴치란 악마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기 위해 천주께 단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께서 그와 같은 권능을 주신 그리스도의 관리자가 하는 (악마에게 내리는) 실제적인 명령입니다. 악마들은 이와 같은 악령퇴치 의식 앞에서 떨게 되고, 입문자의 영혼을 지배하는 권능을 상실합니다. 성세에 관련된 새미사의 의식은 모든 이러한 악령퇴치가 억제되고 오로지 악마를 거부하는 단순한 기도만을 합니다. 악마에게 떠나라는 명령은 더 이상 안합니다.


그러면 사제는 입문자의 이마와 가슴에 십자성호표시를 하고 말하길, “네 가슴과 이마에 십자성호를 받으라. 천국 교훈의 신앙을 받고 천주님의 성전이 되기 위한 합당한 행동을 지녀라.” 여러 차례의 십자성호는 입문자에게 흔적으로 남게 됩니다. 성사 전에 입문자의 가슴과 어깨 위에 성유를 바르면서 십자가를 사랑하고 이 십자가를 지고 갈 용기를 주게 합니다. 성사 후에 그 아이가 성신의 성전이 되었다는 표시가 되는 성유로 그 십자가는 머리 위에 새겨지게 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표시는 그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도가 되었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십자가로부터 모든 은총이 나오고 그리하여 그는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못 박히신 주님을 따라야”(루까9:23)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대, 이러한 많은 십자성호의 표시가 새미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입문자는 축성된 소금을 받으니, 이는 썩지 않음과 영적인 선한 맛을 상징합니다. 이 소금은 또한 ‘최초의 음식’이며 그로 하여금 ‘일용할 양식’(마테오6;11)인 성체를 갈망하게 합니다.


그러면 입문자는 사제의 영대 아래에서 교회로 들어가는데, 이는 유일한 참교회인 가톨릭교회로의 입문을 상징하고 교회 위계질서에 승복함을 나타냅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성세 전 예비자 교육 때 배운 신경(信經)을 고백합니다. 아이를 대신하여 대부모는 아이의 이름으로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그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신경을 가르치게 독려합니다. 진정으로 참 신앙이 으뜸이요, 가톨릭 신앙을 일치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연대입니다. 이것이 입문자가 온 생애동안 지켜야 하고 실천해야할 신앙입니다. 그러면 입문자는 천주경을 소리 내어 하는데, 이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범이니, 왜냐하면 가톨릭인의 생활이란 본질적으로 기도의 생활이고 천주님의 자녀로서 천주님과 친교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매일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후 사탄을 세 번 부인하고 신앙을 세 번 고백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마다 기억해야합니다. 모든 이러한 악마의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죄를 죄 짓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악마가 유혹할 때에는 이를 다시 새롭게 새겨야 합니다. “나는 사탄을 끊어버립니다. 나는 그의 일을 끊어버립니다. 나는 그의 기만을 끊어버립니다.” 나는 사탄을 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천주님을 단호히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예, 천주님에게로 가야지, 악마에게로는 안갑니다!


많은 다른 아름다운 기도가 있지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깁니다. 한 가지 추가할 것은 성세 후에 우리는 흰옷을 받는데, 이는 우리 영혼의 정결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의 심판 때까지 이것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즉 우리가 심판받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입니다.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처럼 성세의 무구함을 영혼 안에 간직하는 자들은 복됩니다!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받아야 되고 성총을 회복하기 위해 참된 보속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총을 잃어버리지 않으려하는 것이 더 좋고 천주님을 더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흰옷은 ‘결혼식 예복’을 의미하는데, 왕이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입어야할, 왕이 요구하는 흰옷입니다.(마테오22:11-12)  


마지막으로 성세를 받은 자는 불이 켜진 초를 받는데, 이 초는 신앙의 빛을 나타내고, 그의 영혼에 켜진 사랑의 불을 상징합니다. “불이 켜진 이 초를 받으라. 비난을 무릅쓰고 그대의 성세를 지키라.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라. 그리하여 주님께서 혼인잔치에 오셨을 때, 천국의 법정에서 모든 성인들과 함께 주님이 계시는 곳에 입장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라.“ 그래서 성세의 목적으로서 천국과 함께 시작되는 성세의식은 성세의 궁극적인 보상으로서 천국과 함께 끝납니다.


성세로서 우리는 천주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일원, 그리고 마리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모님은 자신의 자녀로서 모든 영세 받은 이들을 받아드리고 우리 각자 모두를 아주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그리하여 성모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합시다!


우리의 성세를 항상 기억합시다. 내가 성세를 받았기에, 이교도처럼 살 수 없습니다! 성세에 알맞게, 그리스도의 가치 있는 일원으로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덕행을 모방하며, ‘그분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가치 있게 살아서 영원히 성신과의 일치하는 가운데 성부의 영광으로 들어가도록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