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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사리오(묵주) 기도에 관하여- 성신강림 후 제21주일(2016-10-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0





로사리오(묵주) 기도에 관하여 - 성신강림 후 제21주일(2016. 10. 9)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10월은 로사리오(묵주)의 달입니다. 이 달은 특히 거룩한 묵주기도를 하게끔 독려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교회는 이달에 매일 묵주기도를 권하면서 신자들이 이 거룩한 습관을 연중 내내 지속하기를 원합니다! 교황 레오13세는 이러한 신심을 권장했으며, 많은 대사(大赦)를 부여했지만 그런 관습은 레오13세 교황 훨씬 이전에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성모님께서 친히 13세기에 거룩한 도미니코 성인에게 주신 것인데, 이는 회두와 거룩함과 죄를 이기는 수많은 은총의 수단과 심지어 참 신앙에 대한 적을 이기는 승리, 특히 레판토 해전, 비엔나 그밖에 다른 유명한 승리였던 이슬람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레판토 승리에 대한 기념으로서 교황 성 비오 5세께서 제정하신 10월 7일의 로사리오 축일은 처음 ‘우리 성모 승리 축일’로 부르다가 나중에 ‘성모님의 거룩한 로사리오 축일’로 부릅니다.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은 자기들이 본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성모님은 대답하시길, “나는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여인이다”라 하셨습니다. 파티마 발현은 1917년 10월 13일에 일어난 유명한 기적으로 그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는 거룩한 로사리오의 신심을 확산시키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왜 이 묵주기도의 신심을 매우 권장하나요? 왜 천주께서 친히 그분께서 수행하신 기적으로 이 묵주기도를 권장하나요? 왜냐하면 거룩한 로사리오 (묵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완전함과 영혼구령을 얻는 탁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심으로 구성됩니다. “그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으심이니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삶은, 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되신 천주의 아들께 대한 신앙 안에 사는 것이니라.“(갈라타2:20)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성자께서 친히 천국에서 내려오신 바로 그 목적입니다. “나는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또한 더 풍성히 얻기를 위하여 왔노라.“(요왕10:10) 저 ‘보다 풍성한 생활’은 영원한 생활, 영원무궁한 삶입니다. “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滅亡)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永生)을 얻게 하였으니,“(요왕3:16) 이것은 필수적으로 천주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구성됩니다. “만민이 너 하나이신 참 천주와, 너 보내신 바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이것이 곧 영생이라 “(요왕17:3)


천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지식이라면 매우 결핍된 지식이 되니, 왜냐하면 “천주는 사랑이시니라. 그런즉 사랑 안에 머무르는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천주 또한 저 안에 머무르시니라.“(요안1서4:16) 그래서 성 요한이 이르길,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천주를 알지 못하느니, 대저 천주는 사랑이신 연고니라.“(요안1서4:8) 천주님에 대한 저 지식과 사랑은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대한 천주의 사랑은 천주 우리를 당신 독생성자로 인하여 살리시고자 저를 세상에 보내신 여기에 나타났느니라.“(요안1서4:9)


묵상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바라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점점 더 예수와 일치시키고자, 주님의 죽음의 신비 안에서 그분과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길 바라는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부활의 신비 안에서 그분과 일치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천주의 의자임을 우리 정신과 한가지로 증언하시는도다. 의자(義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로마8:16-17) 여기에 모든 묵주기도 내용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천주님의 자녀”이고, 이는 환희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고통 받는다면’ 이는 고통의 신비 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기를’, 이는 영광의 신비입니다.


이와 같이 신경(信經)에서도 모든 묵주기도의 내용이 들어 있고 묵주기도 안에는 모든 신경이 들어있습니다. 진정으로 신경의 핵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입니다. “성신으로 강잉하사 동정녀 마리아께 나시고,” 이는 환희의 신비입니다.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내리사,’ 이는 고통의 신비입니다. ‘사흘 날에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으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사,’ 이것은 영광의 신비입니다. 신경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출생부터 곧바로 본시오 빌라로 치하의 고통으로, 환희에서 고통으로 가고 있음을 주목해보세요. (요즈음 현 교회에서 통용되는) 묵주기도에서의 ‘빛의 신비’는 없습니다. (홈피 QA 81번 ‘빛의 신비’에 대한 레네 신부님의 글이 있습니다)


주님의 성 육신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 묵상은, 특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 안에서의 묵상 안에서,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일치되기 위하여 하는 것이 모든 묵주 기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성모님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성모님은 이러한 진리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사정(事情)을 자기 심중(心中)에 품어 궁구(窮究)하시고...“(루까2:19) 그래서 성모님의 하자 없는 성심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진리에 대해서 적절한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자 없는 성모 성심은 성모님이 매우 깊이 궁구하셨던 저러한 이해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마리아의 하자 없는 성심 안에서 죄에 대한 증오와 죄에 대한 배상을 원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이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현대 세계는 죄에 대한 너무나 많은 혐오가 필요합니다. 현대 세계의 특징 중 하나가 죄에 대한 관념에 대한 거절입니다. 현대인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 누구도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 심지어 하느님조차도…“ 이것은 끔찍한 신성모독이며 지극히 지겨운 죄로 가는 문이며... 특히 낙태로 이끄는데, 낙태는 현대세계의 사악함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영보고지(領報告知)의 성 육신 그날부터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죄에 대해 절대적으로 ‘아니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게 되고 천주께는 ‘예’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 가운데 속죄의 희생제물로서 제헌하여 죄에 대한 배상을 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 또한 세상의 죄에 대해 하는 것이니, 이러한 죄는 오늘날 너무나 많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영보고지는 천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천주께서는 아담의 죄 이후에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으며 영보고지 바로 그날 그 약속을 실현하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복음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거룩하고 모든 것이 순수하며 모든 것이 정결합니다. 첫 신비에 있어서 어린 소녀 앞에 선 천신의 겸손, 종으로서, 주님의 종으로서 천주의 모친으로 막 선택 받은 그분의 겸손,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아들이 되신 천주 성자의 겸손,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자 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낮추셨느니라.”(필리피27)


천주님은 좋아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예수께서 마리아의 품 안에 있을 때처럼 우리와 함께 이러한 지극히 친밀한 결합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마리아 안에서 사신 것 같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미 영보고지에서는 성체에 아름다운 신비를 전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같은 은총을 받습니다. 마리아 안에서 사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께서 성모님을 변화 시키신 것처럼 우리를 변화 시키십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그 기도입니다. ”마리아 안에 사시는 오, 예수여, 오셔서 그대의 종 안에서 살으소서. 당신의 거룩한 영 안에서 당신의 전능하심의 충만한 안에서, 당신의 덕행의 진리 안에서, 당신의 완벽한 길 안에서 당신의 신비로운 교류 안에서 성부의 영광을 위한 당신의 영  안에서 모든 적들의 권능을 굴복하소서.”


엘리사벳을 방문함에 있어서 우리는 천주님의 사랑이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즉각 인도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천주 성자로 채워진 성모님은 즉각 적으로 자신의 사촌 엘리사벳을 섬기기 위해 갑니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예수님을 그 이웃에게 전달함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엘리사벳의 기쁨입니다.”나 어디로 조차 이런 복이 있어, 곧 오 주의 모친이 내게 임하셨는고...“(루까1;43) 엘리사벳과 태중에 있는 세례자 성 요한은 마리아 태중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에 의해 성화(聖化)됩니다. 엘리사벳과 자카리의 집이 마리아의 오심으로 인하여 성화되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도 가족의 묵주 기도에 의하여 성모님이 오실 때 성화됩니다. 매일 가족 기도는 모든 가정을 위한 그날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수많은 은총의 원천입니다.


예수 탄생에서 보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 세상에 반대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관의 문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닫혔고 그 결과로서 예수님의 축복을 못 받게 됩니다. 결코 우리 마음을 예수님께 닫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목동들처럼 계속 지켜보고 호수천신이 마리아의 품 안에 있는 예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을 따르도록 합시다. ”마리아와 요셉과 및 구유에 누인 아기를 만나“(루까2;16) 목동들은 마리아를 찾았기 때문에 예수를 찾았습니다. 성모님은 예수께로 우리를 인도(引導)하십니다. 성모님은 삼왕(三王)을 안내헀던 별과 같습니다. ”집에 들어가 영해와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나 엎디어 영해께 조배하고...”(마테오2:11) 성모님은 우리가 경배할 가치가 있는, 우리가 흠숭(欽崇)할 가치가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천주를 알지 못합니다. ”성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되, 성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어 보지 못하고, 오직 천주의 의노(義怒)를 제 신상에 당하느니라.”(요왕3:36)  


예수님을 성전에 드리심에 있어서 우리는 계명에 대한 마리아와 요셉의 순명을 경애합니다. 취결례(取潔禮)가 요구되는 계명으로부터 성모님을 깨끗하게 해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모세는 깨끗지 못한 계명 안에서 지극히 정결하신 동정녀, 동정녀 중에 동정녀를 포함하지는 않았습니다. 겸손으로부터 성모님 자신을 단일화하지 않기 위하여 성모님은 그 계명에 순종하고 계명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제물인 두 마리의 작은 새를 희생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신은 노인 시메온(Simeon)을 성전으로 이끌어서 시메온으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榮光)을 노래하게 하였습니다. ”외교인(外敎人)을 비추시는 빛이시요, 네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로소이다.“(루까2:32) 그러나 시메온은 마리아의 성심을 찌를 칼을 예언하였고 십자가의 신비로 성모님이 인도하게 됨을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성모님의 첫 번째 통고(痛苦)였습니다. 이 신비는 전례에서 노래하는 것과 같은 기쁨과 눈물이 혼재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잃고 찾으심은 십자가의 신비 속으로 더 인도하게 됩니다.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게 이같이 하였느뇨? 보라, 네 부친과 및 내가 애통하여 너를 찾았노라.”(루까2;48) 이것이 성모님의 세 번째 통고입니다. 이것은 성모님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헤롯과 같은 박해(迫害)는 아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고통이십니다. 주님은 부모와의 동행에서 이별했습니다. 주님은 성모님의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모님은 예수님을 꾸짖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 부(父)의 일이 있는 곳에 나 마땅히 있는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루까2:49) 그리고 우리 주님의 대답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양친이 그 이르신바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루까2:49) 그러나 성모님은 그 교훈에서 배웠습니다. 성모님의 아들이 성모님에게 지극히 고통스러움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후일 성모님께서 주님이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성모님은 다시 아들에게 “왜?” 라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그 이유를 아셨고 주님이 성부의 일에 관여함을 알았으니, 그것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환희의 신비는 우리를 고통의 신비로 안내합니다. 고통의 신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그가 저들의 죄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려 함이라”(마테오1:21) 첫 고통의 신비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체적 고통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원(山園)에서 주님은 인간의 영적인 모든 죄의 끔찍함에 너무나 압도되어 이것이 주님을 진정한 고뇌로 이끌고, 이것이 너무나 심대하여 피땀을 흘렸습니다. 오, 주여,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죄의 진정한 끔찍함, 우리 과거 죄에 대한 진정한 멸시, 인간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가 당신께서 행하시는 대로 죄에 대한 배상을 하기 위함이니, 만약 오직 우리가 천주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 수 있다면 이 죄를 배상하기 위하여 십자가 희생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을 알 수만 있다면! 그리고 예수께서 온전히 성부의 계획  안으로 들어가신 것을 안다면, 주께서는 죄에 대한 배상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고통을 받고자 원하십니다. 보다 완전하게 고통을 받기 위하여 당신의 천주성을 감춥니다. 성모님 또한 죄를 미워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티 없으시고 죄 없이 무결하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깨끗이 해야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것은 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눈  앞에서 우리 주님의 수난을 끊임없이 보게 된다면 결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감히 우리가 주님의 고통에 고통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복하여 우리 눈 앞에서 보게 되는 이 거룩한 수난 안에서 우리에게 가져오는 거룩한 묵주기도는 죄를 피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는 아주 커다란 도움입니다.


기둥에 묶여 편태(鞭笞)를 받으심은 죄에 불결함에 대하여 특히 반대가 됩니다. 사람들이 저들의 육신을 위해 희희낙낙하고 우리 주님의 몸은 모든 저들의 불결함에 대한 배상을 하기 위하여 채찍으로 인해서 끔찍하게 찢어졌습니다. “신앙의 근원이신 자시며 (또한 그를) 완성케하시는 자이신 예수를 거울로 삼아 우러러 볼지니라.”(헤브레야12:2) 거룩한 옷을 벗기심에서 편태 받은 표시는 지극히 뚜렷합니다. 교회박사들은 100대 이상의 편태 표시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그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다시 주님께 범죄함으로써 이러한 고통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안됩니다. 말도 안 됩니다. 파티마의 성모님과 함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순수함에 거스르는,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으로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죄악인 이러한 모든 죄악에 대해 배상을 하도록 합시다.


가시관을 쓰심은 특히 교만의 모든 죄에 반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높으시고 최고의 지혜이신 분을 바보처럼 다룹니다. 특히 저들은 주님의 왕권을 조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진정 왕이시고 왕 중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의 계명에 복종하기를 거부합니다. 특히 현대인은 사람 위에 그 어떠한 계명도 거부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모든 계명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천주로부터 벗어나고자 원하며 왕이신 그리스도를 조롱합니다. 현대인의 교만은 너무나 멀리 지나쳐서 천주님을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낙태의 권리, 부자연스러운 악 (동성애)을 행할 권리 등등…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수난 속에서 특히 가시관을 씀으로써 그분의 겸손으로 이러한 교만에 대한 배상을 하러 오셨습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겸손에 대한 사랑을 행하게 하시고 주님의 겸손을 관대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겸손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위대한 덕행입니다.”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으니....“(루까1:48)


십자가를 지고 가심은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인내심과 불굴(不屈)의 의지를 가르칩니다:“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니, 끝까지 항구(恒久)한 자는 이에 구령하리라.“(마테오10:22 ) 성모님과 성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과 함께 우리가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합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죄 없으시고 ‘푸른 숲’와 같은 그 분은 구속의 신비를 수행하고 계시고, 그분의 희생으로서 영원한 영광을 얻고 계신 그 분을 위해 너무나 많이 울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위해 울고, 죄인들의 죄에 울고, 우리 자신을 위해 울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죄야 말로 진정한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란 모든 악의 뿌리 입니다. 죄는 모든 비용을 치우어서라도 반드시 피해야 할 유일한 악 입니다. 만약 무지로 태어났다면 신체적 고통은 구속의 원인이 됩니다. 치명자들은 죄를 짓기보다는 오히려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단호한 결심을 새롭게 합시다.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읍시다.


십자가 위에서의 3시간과 십자가 위에서의 주님의 죽음은 모든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숭고 하고 장엄한 순간이었습니다. 최고의 희생은 지극히 거룩한 성 삼위께 제헌되었고 천주님은 그분이 마땅히 받을 만한 것으로서 영광이 되었습니다. 영혼들은 하자 없는 양의 성혈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천주 성자는 그분 친히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분의 신비체인 몸의 일원으로서 수 백 만 명의 성인들을 성화시켰습니다. 악마는 사라지고 풍성한 구원으로 인해 배상 되었습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희생의 결과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바로 전날에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제정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친히 주님은 지극히 거룩한 하자 없는 양으로서 그분의 사제 직분으로 자기 자신을 제헌하기를 계속하시고 그 분의 몸과 성혈로 우리를 먹이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에 의해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서 완벽하게 주님과 일치가 되고 새 이브가 되었으며 모든 산 자의 모친이 되었고 이 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어머니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성모여, 저 위대한 신비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주소서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제3일 날,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부활하신 날 죽음을 이긴 승리는 성 금요일의 죄를 이긴 승리가 뒤따릅니다. 주님의 부활은 당신의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그 분은 종도들에게 너무나 많이 나타나셨고 종도들이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될 수 있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증거를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종도들은 알았습니다. 만약 자기들이 죽는 날까지 주님께 충직한다면, 주님과 함께 다시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세에 의해 주님의 부활에 일치되어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었으나, 저 살으심은 천주를 위하여 살으시니라.”(로마6:11) 그리스도께서 나임(Naïm)의 과부의 외아들을 죽은 자로부터 그를 부활시킨 후에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듯이, 마찬가지로 주님은 당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도 자신을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성모님 역시 과부였으며 유일한 아들을 잃어버린 분이었습니다. 나임의 과부를 위해 한 것만큼 자기 어머니에게도 했습니다. 


많은 발현 후에 주님은 부활 후 40일날 천국으로 영광스럽게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성부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천신들은 그분께서 가신 그대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이라고 확신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오, 성모여 우리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성부의 강복하신 자들아, 세상 배포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를 와서 차지하라.”(마테오25:34) 우리가 항상 절대 적으로 죄를 피하고 다음과 같은 말씀인 지극히 끔찍한 말씀을 피할 수 있도록 하소서. “앙화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악신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로 가라.“(마테오25;41) 천국에서 성 스테판에게 나타나시고 그로 하여금 죽을 때까지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은 모든 치명자들을 독려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독려하여 거룩한 삶을 살도록, 모든 계명을 충직하게 지키고 심지어 죽을 때 까지 신앙의 삶을 살도록 독려하십니다.


종도들은 성신강림 날에 성신께서 오실 때까지 9일간 자신들을 준비 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신은 당신의 은총으로 특히 사랑으로 종도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마치 우리 주님께서 전하신 것처럼 종도들은 천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그 사랑으로 온 세상을 불을 붙이고자했습니다,“나 세상에 불을 놓으러 왔으니, 불붙는 것 외에 나 원할 것이 무엇이리요?“(루까12;49) 성모성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일원, 교회의 모든 일원을 포옹할 만큼 확대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이제 우리의 모친이요, 우리 구원보다도 더 큰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성신으로, 특히 천주님을 위해 모든 사물 위에 천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우리가 우리 주변에 전교자(傳敎者)가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 주변에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 있어서 그와 같은 사랑에 불을 붙이기를 원합니다. 


성모님은 티 없이 잉태되셨습니다. 그분은 악마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천주님과 최소한의 불일치 없이, 항상 성신에 충직하면서 하자 없이 사셨습니다. 보상의 시기가 왔습니다. 죄를 알지 못한 성모님은 죄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무덤 속의 부패도 알지 못했습니다. 천주성자께 생명을 주신 성모님은 성모의 영혼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몽소승천으로써 몸으로도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천주님의 보상이 모든 노력에 가치가 있으며, 어떠한 세속적 기쁨보다도 분명히 우위에 있다는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성모님의 몽소승천에 관한 위대한 신비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지나가는 세속 사물 위에, 세상의 떠나가는 기쁨 위에 놓으시고 우리의 영신을 천국에 고정하게 하소서!


성모님께서 여왕으로서 왕관을 받으시고 성모님의 천주성자께서는 모친께 우리 유익을 위해 강력한 권능을 주시니, 우리로 하여금 이곳 지상에서 성모님의 중재로, 그리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위함입니다. 성모님은 모든 천신을 관장할 권능이, 성모님의 위임 처분으로 집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지극히 행복합니다. 천신 모두는 성모님께 부여된 은총과 영광이 가득하심을 찬탄합니다. 천신들은 성모님의 기사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고 성모님의 기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섬김에 있어서 주님께서 왕이시므로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예수이십니다. 우리가 이곳에 살다가 성모님과 함께, 그리고 모든 성인들과 함께 영원히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영원무궁하게 천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하소서!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신앙의 모든 핵심적인 신비에 관해 우리가 묵상함으로써, 거룩한 묵주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깊이 알게 해줍니다. 묵주기도는 두 개의 지극히 아름다운 기도로 필히 이루어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모든 기도 중에 가장 으뜸인 천주경은, 이 기도에서 우리가 천주님을 기쁘게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질서정연하게 간청합니다. 그리고 성모송 또한 성서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데 전반부와 후반부가 성인들에 의해 놓여진  것입니다. 이 기도들은 신비를 묵상하는 동안 영혼의 호흡과도 같습니다. 묵주기도를 반복하는 것은, 호흡의 반복이 우리 몸의 생명을 위해 필수적인 것처럼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묵주기도를 잘하는 것은 우리가 마리아의 하자 없는 성심 안으로 점점 더 들어가게 하며 그 거룩한 길을 통하여 예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 안으로 들어가게 하니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한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로사리오 기도를 사랑하도록, 묵주기도와 살도록, 특히 하자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으로 우리 가족에게 묵주기도를 퍼뜨리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도록, 그리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게 하소서!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