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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사랑으로 일치된 천주성삼-성삼주일(2017-06-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6-11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사랑으로 일치된 천주성삼 - 성삼주일(2017-06-11)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왜 교회에 옵니까? 성영(聖詠)의 저자가 노래하듯이 천주님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며, 천주님을 보고자 함입니다. “나 주께 한 가지 청(請)이 있어 그를 찾사오니, 곧 나의 온 평생 주의 집에 거처하며, 주의 자애를 누리기 위함이라,“(성영26:4) “내 마음은 당신께 말씀 아뢰고, 내 얼굴은 당신을 찾나이다. 주시여,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성영26:8)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님을 보고자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천주님에 관하여 우리에게 충분히 말해줍니까? 누가 천주님이 어떤 분인지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모든 언어들은 천주님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너무나 제한되어 있습니다. 현자(賢者)는 말했습니다: ”가능한 한 힘을 다하여 야훼를 현양하라. 그분은 모든 찬미를 받으시기 합당하나니. 너희가 온 힘을 다하여 야훼를 현양할 적에 피곤치 않으리라. 그 멀리 갈 수 없으리니..“(Eccli. 43:33-34) 설령 여러분이 아우구스티누스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나 교회박사들에게 묻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말씀하시길: 우리는 천주님의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고, 그분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다 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천국에 가서 천국에 계신 성인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들 역시 또 같은 답변을 할 것입니다. 천주님은 우리 위에 계시고, 우리가 그분의 위대하심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설령 천신들에게, 심지어 케루빔과 세라핌에게 물어본다 해도 천신들 역시 천주님의 완전하심을 완벽하게 표현할 능력이 되는 천사의 말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모든 천신들보다 위에 계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묻는다 하여도, 성모님 또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 역시 천주님의 아름다움과, 탁월하심 그리고 완전하심을 표현할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단다.


그리고서 성모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의 아들에게 귀를 기울이거라. 왜냐하면 성자께서는 성부의 말씀이시니라. 진정으로 오직 그분만이 천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게다가 그 분께서는 천주님이시기 때문이란다. 영원토록, 천주성부 한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그분의 모든 본질과 완전성을 총체적으로 표현하시니, 천주님의 이 말씀은 완전한 천주이시요, 바로 성부이신 분이 성부는 어느 분이신가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기에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것을 잘 알게 될 때, 이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농사에 대해 잘 알고, 목수는 목공 일에 대해 잘 알며, 요리사는 조리법에 대해 잘 알고 자수를 놓는 이는 자수를 잘 놓습니다. 등등…. 천주님은 최고의 지성입니다. 모든 사물을 아시고, 특히 모든 조성된 사물을 아시며, 그분 자신을 완벽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천주께서는 천주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의 완전한, 영원하고도 전능하신 말씀으로 본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비롯됨에 말씀이 계시고, 말씀이 또 천주께 계시니, 말씀이 곧 천주시더라. 이 말씀이 비롯됨에 천주께 계신지라. 만물이 다 저로 말미암아 조성함을 받았으니, 조성함을 받은 것이 저 말씀을 말미암지 않고 된 것은 도무지 없느니라. 저 말씀에게 생명의 빛이 있으니, 이 생명이 곧 사람의 빛이라.“(요왕1;1-4)


“아무도 천주를 보지 못하였으되, 성부의 품에 계신 독생 성자는 친히 설명하시니라.“(요왕1:18) 그리고 성부께 대해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성 요한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들이 듣고 또한 너희들에게 전하는 보고는 이것이니, 곧, 천주께서는 빛이시며, 그 안에 조그만한 어둠도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니라.“(요안1서1;5) 천주님은 빛이지만 태양에서 오는 물질적인 빛이 아니라, 영적인 빛, 즉, 천주는 최고의 지성이시며 최고의 진리입니다. 주제를 아는 것과 알려진 객체를 사이에 존재하는 이중성이 없는 것입니다. 천주 본질에 대한 단순성에서 천주님은 최고의 지성이요,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천주 지혜의 말씀으로서 지성의 방식으로 인하여 천주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발하십니다.


토마스 성인은 아름다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다: 천주님의 말씀은 차가운 지적인 말씀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천주의 말씀은 “사랑을 호흡하는 말씀”이다. 성자는 성부께서 어떤 분인지를 표현하는데, “천주는 사랑”(요안1서4:16) 이며, 그러므로 성자 친히 사랑의 말씀, 사랑을 호흡하는 말씀입니다! 성부의 사랑에 대한 완벽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시고, 성자께서는 성부를 사랑하시며, 천주 사랑의 불꽃으로서 사랑의 공통적인 용광로로부터 성신을 발합니다. 성신은 사랑으로 인하여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합니다.(성비오10세 교리문답) 천주 안에서 어떻게 지식이 사랑과 분리될 수 없는가를 보세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천주를 알지 못하느니, 대저 천주는 사랑이신 연고니라.“(요안1서4:8)


그분의 첫 번째 서간에서 성 요한은 천주께 대한 두 가지 정의(定義)를 주는데, 그것은 천주성삼 생명 안에서 깊은 통찰력(洞察力)을 우리에게 줍니다. “천주는 빛이니라.”(요안1서1:5)와 “천주는 사랑이시니라.”(요안1서4;16)입니다. 천주께서는 빛이시니라, 즉, 최고의 지성이며 천주성자께서는 지성의 방법으로서 성부로부터 발하시고, 천주께서는 사랑이시니, 즉, 최고의 사랑이며 성신은 사랑의 방법, 자비의 방법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십니다. 이것이 영원으로부터 오는 천주의 생명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사랑은 주고 사랑은 일치시킵니다. 참으로 “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 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요왕3:16) 사랑은 주는 겁니다. 천주 당신 친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 주신 자시니,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않으리요?“(로마8:32) 사랑은 희생에 이르도록 하기까지 줍니다. “누가 그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요왕15:13) 그리고 사랑은 일치합니다.  “성부여, 너 내게 주셨던 저 사람들을 네 이름을 위하여 보존하사, 저들로 하여금 우리와 같이 하나 되게 하소서…. 저 모든 이로 하여금 하나 되어, 마치 성부 내게 계시고 내가 성부께 있음과 같이 저들이 또한 우리게 일합(一合)하여 있어…. 내가 저들에게 있고 성부 내게 계셔, 저들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 되게 하시며, 또 세상으로 하여금 너 나를 보내신 줄을 알게 하시고, 또 너 저들을 사랑하시기를 나를 사랑하심 같이 하시는 줄 알게 하심이라.“(요왕17:11, 21,23)


자, 사랑의 이 두 가지 면을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신비 안의 최고 수준에서 보게 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에 그래서 “성부, 성자를 사랑하사 모든 것을 그 손 안에 맡겨 주셨은 즉,“(요왕3:35) 성부께서 성자에게 풍성히 주시기에 성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부께서 가지신 것 무엇이든지 모두 다 내 것이라.“(요왕16:15) 성부께서 가지신 모든 천주성을 성자에게로 돌리고 그처럼 참으로 성부와 성자는 완벽하게 동등하십니다! 이처럼, 성부와 성자는 저들의 천주성을 성신과 완전하게 교통하십니다. 그래서 천주 안에서 사랑을 주고, 여러분은 성 삼위를 가집니다. 그리고 사랑은 일치합니다. 사랑은 주고 일치하는 것이기에 여러분은 한 천주 안에 세 위가 계시는 천주님의 본질에 일치합니다.


어느 날 교리공부 시간에, 제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천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주께서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어린 아이 하나가 매우 훌륭한 대답을 했습니다: “천주님은 우리를 생각하고 계셨어요.” 예.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생각하셔야 할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요? 모든 창조된 사물 위에 천주께서는 천주를 생각하시고, 하나의 완벽하고도 영원하며 전능하신 말씀 안에서 천주를 말씀하시고, 이 말씀과 함께하여, 천주께서는 영원하신 사랑의 영을 호흡합니다! 저 최고의 천주 생명 안에서 천주님은 거대한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 있는 작은 행성 위에 사는 매우 작은 피조물인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성 요한은 놀라, “성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너희는 볼지니, (곧) 우리는 천주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고 또한 사실로 그렇게 되었느니라.“(요안 1서3:1)


그리고 성 요한은 계속하길: “우리에게 대한 천주의 사랑은 천주 우리를 당신 독생 성자로 인하여 살리시고자 저를 세상에 보내신 여기에 나타났느니라. 사랑이란 이것이니라. 곧 우리가 천주를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천주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 당신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제(贖祭)로 보내신 것이니라. 친애하는 자들아. 천주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여야 하리로다. 어느 때를 물론하고 아무도 천주를 보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천주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이며, 이에 저들에 대한 우리 사랑이 우리 안에 완전하니라. 우리는 천주 우리를 당신 성신에 참여케 하심을 인하여 우리가 천주 안에 머무르고, 천주 또한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것을 인식하는 도다. 그리고 성부 당신 성자를 세상의 구속자로 보내셨음을 우리는 목격하였으며, 또한 이를 증거하노라. 무릇 예수 천주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자는 천주 저 안에 머무르시며 저도 또한 천주 안에 머무느니라. 우리야말로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신 천주의 사랑을 인식하고 믿은 자니라. 천주는 사랑이시라. (그런즉) 사랑에 머무른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천주 또한 저 안에 머무르시니라.“(요안 1서4:9-16)


독생 성자이신 그분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나요? 여러분이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의인의 영혼 안에 천주성삼께서 거처하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 이르시길,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 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그러나 성신은 다른 두 위격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분들 역시 의인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가져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하는 자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성부께 사랑함을 받을 것이요, 나도 저를 사랑하고, 또 저에게 나를 나타내어 보이리라.... 누 만일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준행할 것이니, 성부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또 우리 등이 저에게 와 한가지로 거쳐하려니와,“(요왕14:21,23) 여기서 ”우리“는 즉,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성부, 성자, 성신입니다!


신앙의 베일을 통하여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현실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하여 가지신 천주의 사랑을 인식하고 믿은 자“(요안 1서4;16) 이지만 아직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실제를 경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차원은 영적 차원인데, 우리가 이걸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 수준에 있어서 우리 마음으로 이를 인정하고, 초자연적 수준에서는 신앙을 통하여 이를 이해합니다.  


우리 영혼 안에서의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성삼의 거하심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테살로니카 전 4;13) (일반 세속) 사람들처럼 우리가 처신할 수 없게끔 합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생활을 살아갈 수 없고, 이 지상생활에서 천주님의 자녀들로서 천국의 생활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 성인은 이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위대하고 존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주심은 이 너희로 하여금 이를 인하여 세속의 육감적 쾌락과 및 부도덕함을 피하여 천주성에 참여하는 자 되기를 위함이니라.“(베드로 후1;4) 성인께서는 어떻게 결론을 끌어내는가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세상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분명한 육신의 부패로부터 도망가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도 같은 말씀을 하시니,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받았으니, 영육의 모든 하자(흠)에서 우리를 조촐하게 하며, 천주께 대한 경외심을 가져 나날이 더욱 완전한 성덕에 향상키로 노력할지어다.“(코린토 후 7:1)


우리는 우리 영혼에 거하시는 천주이신 손님들께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이는 침묵을 요구합니다. 침묵 가운데, 영혼은 영혼 자체를 천주께로 훨씬 쉽게 끌어올리고, 더 쉽게 묵상하게 하며, 외부적 사물을 잊어버리고, 영혼의 비밀 속에서 천주성삼께 대해 주의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너는 기구할 때에 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히 네 성부께 기구하라. 은밀한 데서 보시는 네 성부 네게 갚으시리라.“(마테오6:6)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는 어린아이였을 당시에 침대 뒤에 숨어서 비밀히 침묵 속에서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천주성삼에 관한 교리로부터 아주 중요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천주성삼을 거부하는 자는 천주님을 진정으로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시길, “성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되, 성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어 보지 못하고, 오직 천주의 의노(義怒)를 제 신상에 당하느니라.“(요왕3:36) 그래서 우리는 천주성삼을 믿지 아니하는 이들, 유대인,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 등의 이교도들의 개종을 위해서 전교를 해야 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는 우리가 지니는 가장 위대한 보물이고, 이를 주게 될 때 잃지 않으며, 반면에 주면 줄수록 더 가지게 됩니다! 친구, 이웃, 그리고 따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 신앙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 하여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를 현양케 하라.“(마테오5:16)


천주성삼의 지극히 아름다운 지성소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를 도우시어 천주성삼 안에서 우리가 신앙을 지키도록, 저 신앙으로 살아가며 많은 이들에게 이를 전하여서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그 천국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성삼을 영원히 얼굴을 맞대고 뵙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