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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은 만민이 귀중히 여겨야 (2017-07-0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09



혼인에 관하여 (2017-07-08)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지난 번 행한 성사에 관한 가르침, 혼배성사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합니다. 혼인은 거룩한 가정 안에서 자녀들을 낳을 목적으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평생 결합하는 것입니다. 혼인의 결합은 아담과 에와(이브)의 바로 그 결합부터 존재하였는데, 에와(이브)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생기자마자 이 거룩한 결합 안에서 아담과 함께 일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내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고, 제 아내에게 결합하여 한 몸이 되니라,“(창세기2:24)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명하길, 에와(이브)는 아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러기에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아담의 발끝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이는 남성이 여성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고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옴은 그들이 서로 충직하게 사랑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이삭과 레베카(리브가), 토비아와 사라의 결혼과 같은 유명한 결혼을 보게 되는데 이들 결혼은 라파엘 대천신의 인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결혼입니다.


혼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나(Cana)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시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으로써, 그 혼인을 성화(聖化)시킴으로 인해 주님에 의하여 성사의 수준으로 올라간 신앙의 교리입니다. 실제로, 저 기적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성체를 의미합니다. 즉, 포도주가 주님의 성혈로 변화됨은 우리 주님께서 성 목요일 날 생애의 마지막에 실행하신 것이요, 이 거룩한 성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이라는 바로 그 성사를 뜻하는데, 이는 나중에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혼인 그 자체는 결합된 생활의 시작이 되는 계약이니, 결혼식은 짧으나 그 혼인의 결과는 온 평생 지속됩니다. 혼인은 배우자 간에 ‘동의의 교환’으로 구성되는데, 즉,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 계약으로 인하여, 남편과 아내는 ‘혼인의 행위’에 대해 상대편의 몸에 대해 완전한 권리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교회의 언어는 항상 절제함을 갖는다 함을 (우리가) 놓치고 있다는 걸 주목하세요. 바오로 성인은 이르시길, “아내가 자기 몸에 대하여 처리권이 없고, 오직 그 남편에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도 또한 자기 몸에 대하여 처리권이 없고 오직 그 아내에게 있느니라. 서로 (상대자의 권리를) 침범하지 말지니라. 너희는 오직 기구(祈求)에 전심하기 위하여 상호간의 동의로써만 서로 얼마 동안 별거하는 것은 (좋으나) 후에 다시 동거할지니, 만일 그러지 아니하면 너희 무절제함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인성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당하리라.“(코린토 전 7:4-5)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자녀들이 거룩한 혼인 안에서 태어나도록 천주께서 그렇게 혼인을 제정하셨는데, 왜냐하면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하고 또한 부모의 유익에게도 필요하니, 훌륭한 자녀들은 훌륭한 부모의 가장 좋은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혼인 밖에서 자녀를 낳는 것은 옳지 않으니, 이는 자녀에게서 저들의 아버지를 빼앗기 때문입니다.


온 생애 동안 지속되는 결합은 자연스런 혼인에 의한 것인데, 이 혼인은 불가해소성입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천주 결합하여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지니라.“(마테오19:6) 이것은 특히 자녀들의 유익에 있어서 요구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인간과 다른 동물을 비교해볼 때,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어른으로 성숙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새나 토끼 등 많은 동물들은 일 년도 안 되어서 성인으로 큽니다! 사자와 같은 더 큰 동물들은 2,3년 걸리는데, 이는 매우 희귀한 사례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10년이 지나고도 성인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란 맹목적으로 본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해 인간이 이끌려야 한다는 점이고,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 생활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위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그 지점에 이르도록 배우며, 지성을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자녀들은 성장하는데 있어서 수십 년간 부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부모는 더 많은 자녀를 갖게 되고 막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부모는 자녀들에게 충실함이라는 좋은 모범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 몇 년뿐만 아니라, 온 생애 동안 함께 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이혼이 허용되었는데, 우리 주님 이르시길, “너희 마음이 완악(頑惡)함 때문에 모이세가 너희게 아내 버리기를 허락하였으나, 당초(當初)부터는 그렇지 아니하리라.“(마테오19:8)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주 깨끗한 상태의 거룩함에 이르기까지 혼인을 복구하셨고 매우 엄격하게 이혼과 재혼을 금지시켰습니다. “누구든지 제 아내를 내어 보내고 다른 이를 취하는 자는 간음함이요, 장부가 내어 보낸 이를 취하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루까16:18) 예외적인 경우는 있는데, 즉, 가족 폭력, 폭행이 있을 때에는 주교에게 ‘별거’에 대해 허락을 요구할 수 있으나, 즉, 따로 살 수는 있으나 이것은 이혼이 아니고 재혼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본성으로 인하여 혼인은 배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인 밖에서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간음이고 통탄할만한 중대한 죄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세 가지 죄에 대해 크고도 공개적인 보속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배교, 살인, 그리고 간음입니다. 이는 이러한 죄가 참으로 통탄할 중죄임을 보여줍니다. 바오로 성인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대저 모든 음탕한 자와 정결치 못한 자와 탐욕 많은 자는 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천주의 왕국에 있어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잘 알고 또한 깨닫는 바니라.“(에페소5:5) 훌륭한 가정은 거룩함과 정결의 분위기를 가져야 하는데, 그리하여 자녀들이 이런 모든 덕행 속에서 꽃을 피우고 성장하는데 참으로 필요합니다.


본성에 의해서 혼인은 자녀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래서 혼인의 자연스런 효험인 (자녀출산이라는) 혼인의 행위를 좌절시키면 안 됩니다. 모든 피임의 형태는 천주님의 계명에 거스르는 것이고 중대한 죄입니다. 더 나쁜 것은 낙태인데, 이 낙태는 생명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고 네 가지 대죄와 세 가지를 악화시키는 환경에 관련됩니다. 생명전달을 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제 6계명을 거스른 것이고, 무구한 생명을 죽임으로써 제 5계명을 거스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위반하는 궁극적인 자녀 학대로서 제 4계명을 범하는 것이고, 제 1계명에도 어긋나는 것이니 이는 자녀에게서 성세를 빼앗기 때문인데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하는 중대한 의무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악화시키는 환경은 무죄한 자를 죽일수록, 그 살인은 더 악하기 때문입니다. 희생자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그 살인은 더 악한 것이 되고 더 잔인한 것이 됩니다. 태중에 있는 아기보다 더 무구(無垢)한 자가 누구이며, 이 아기보다 더 연약한 자가 누구입니까? 어른에게 행해질 것이 뱃 속의 아기에게 행해진다면 소름끼치는 참혹한 그 잔인성에 절규가 있을 것입니다.


혼인은 정결에 거스르는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해 허용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혼인의 행위는 혼인 내에서 훌륭하고 거룩한 것이지, 이를 왜곡하는 것은 심지어 혼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도 잘못된 것입니다. 동성애라는 모든 형태는 혼인 일지라도 참으로 통탄할 죄입니다. 바오로 성인 이르시길, “혼인은 만민이 다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며, 또한 부부된 자의 침소는 더럽히지 말아야 할지니라. 대저 천주께서는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리로다.“(헤브레야13:4)


혼인의 으뜸가는 유익이란 그래서 자녀를 갖는 것이고 혼인의 축복이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입니다. “네가 너의 자녀들을 보리라.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들을 보리라. 삼대, 사대에 걸쳐보리라. 그리고 너의 씨앗이 이스라엘의 애훼에 의해 축복받으리니, 그가 영원토록 통치하시리라.“(토비트9:11) 그렇지만 자녀에게 생명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자녀에게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자녀에게 훌륭한 가톨릭교육을 주는 것은 부모의 커다란 임무인데, 신체적, 지성, 절제 발달에 따른 자연적 수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성세로써 영적인 생명을 전달해야 하고 저들이 가장 부드럽게 받아드리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 안에서 저들을 교육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행 속에서, 특히 자비와 정결 속에서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훌륭한 자녀들은 훌륭한 부모들에게 최고의 보상인데 그러나 이를 이루려면 노력이 요구됩니다!


혼인의 두 번째 목적은 상호간의 지지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혼자 사는 것은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세기2;18) 그리고 현자는 설명합니다:“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지만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 없는 이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으리라.”(전도서4:9-12)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큰 위안이고 지지해주는 것입니다. 이 상호간의 사랑은 자연 수준에서 혼의의 사랑을 가장 깊은 친교로 만들어줍니다.


혼인에서 이루어지는 충실함은 해가 거듭되면서 이 친교를 깊게 해줍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결혼 50주년 (금혼식) 기념일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애들아, 너희가 결혼 50주년에 도달했을 때에, 그 기쁨은 결혼 초기보다는 똑같지는 않지만, 만약 너희들 생애를 되돌아보고 충실하게 50년을 산 모습을 회상한다면 그 기쁨도 적지 않은 것이란다.”


혼인의 세 번째 좋은 점은 성사입니다. 이것은 가톨릭 혼인 안에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인 가톨릭교회의 결합을 뜻합니다. 이 신비로운 결합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의 모범이요, 각 결혼한 부부에게 많은 은총의 원천입니다. 참으로, 혼인의 이 신비로운 차원은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화시키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의 결합은 영원하기 때문이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죽음조차도 이를 해소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이 결합은 지극히 거룩하고 정결한 것이고 모든 거룩한 사랑의 원천입니다. 이 결합은 혼인의 열매인 수많은 성인들과 함께하는 영적으로 다산(多産)인 것입니다.


이 모범은 참 사랑이란 자신을 희생한다는 선물이 되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그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셨음과 같이 할지니라. (저 당신을 희생하심은 생명의) 말씀을 인하여 그 (교회를 성세의)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사 써 거룩하게 하시기를 위하심이며, 그를 당신을 위하여 흠점 없고 주름살 없고 또한 그런 것의 그림자도 없는 영화로운 교회를 만드사 써 그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기를 위함이시니라. 이와 같이 장부된 자는 그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할지니라.“(에페소5:25-28)


아담의 열린 옆구리로부터 만들어진 에와가 아담과 혼인하듯이, 십자가에 위의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태어난 교회는 바로 그곳에서 주님과 혼인하였습니다! 성심으로부터 흘러내린 물과 성혈은 십자가 위에서 열렸을 때 교회가 모여지고 성화됨으로 인한 성세와 복된 성사를 의미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계신 성모님은 온 교회를 상징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주님은 성모님을 ‘어머니’가 아닌 ‘여인’으로 부르고, 성모님에게 아이를 주십니다.“ “여인이여, 이는 네 아들이니다.“(요왕19:26) 복음서는 이를 ‘요한’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제자’라 부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사이의 거룩한 결합에서 태어난 모든 사랑스런 제자들인 것이고 이것이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신비, 많은 자녀들, 모든 성인들을 지극히 많이 생산한 신비의 결혼입니다.


만약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간의 실제적 혼인이라면, 그러면 미사에서 저 희생제사의 피 흘림 없는 갱신은 모든 가톨릭 결혼에 있어 혼인의 은총을 지극히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제대 아래 그곳에서 혼인한 배우자들은 서로 간에 자기들의 선물을 새롭게 합니다. 그들은 자기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의 결합으로부터 충실함의 은총, 상호 사랑의 은총,  저 부부가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은총을 끌어냅니다.


혼인에 관한 재료와 형상은 배우자간에 교환된 동의입니다. 그래서 성사의 관리자는 배우자 지신들입니다. 저들은 서로 결혼합니다. 사제는 그곳에서 저 부부를 강복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저들의 계약을 증언합니다. 또한 거기에는 두 명 다른 목격자인 증인들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나 혹 세 사람의 입으로써 모든 사정을 증거께 하라.“(마테오18:16)


참으로 한 가정의 기초가 되는 혼인은 사회의 기초를 쌓는 것인지라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세속 사회 및 교회 양쪽 사회에 있어서 공적인 선입니다. 그럼으로, 국가의 권위 그리고 특히 교회의 권위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세속 국가는 혼인을 보호하고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모든 자연스럽지 못한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을 동등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혼인의 견고한 보호자가 되어왔습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완전하게 보호하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모든 개신교 종파들은 이혼을 받아드리는데, 이는 놀랄만한 일이 못되니, 왜냐하면 이 개신교파들은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와 이혼하였고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혼인에 관하여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특히, 혼인과 가정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당을 설정합니다. 조당(阻擋)이란 혼인의 유효성 또는 적법성을 막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발기불능, 혈족관계, 예전에 행한 결혼, 사제서품, 특정한 범죄들은 혼인의 유효성을 가로막는 조당입니다.


성사의 결과는 이중적입니다. 첫 번째 결과는 혼인의 결합, 죽을 때까지 온 생애에 걸친 영적인 결합입니다. 저 결합은 부부가 서로 교환하는 반지로써 나타납니다. 저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결합을 뜻하고 두 번째 결과의 원천인 은총입니다. 잘 받아드린 혼배성사는 혼인 생활을 통하여 많은 실제 은총, 성화의 은총을 증가시키고, 배우자로 하여금 천주께서 주신 임무를 가정에서 실현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은총을 풍성하게 받아드리기 위해 지속되는 하나의 커다란 수단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도, 매일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규칙적인 기도가 핵심입니다. 짧은 기도일지라도 매일 기도하는 것이 묵주기도 전체를 어쩌다 한 번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하루에 오직 한 단만을 바쳤는데, 우리가 크고 나서는 아버지는 사순절 기간 때에 두 단을 더 붙여서 했고, 그 다음 해는 세 단으로 늘렸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묵주기도 전체를 바쳤습니다. 저 가정의 기도는 성사의 은총을 풍성하게 계속해서 받는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젊은이들은 신앙과 정결로써 훌륭하고도 거룩한 혼인을 위해 자기 자신들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거룩한 결혼을 위한 준비에 있어서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혼인하기 전에 정결과 동정성을 지키는 것은 앞으로 있을 완벽한 충직성에 대한 준비이고, 그래서 이것이 커다란 기쁨과 평화의 원천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수준에 있어서,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도 결합을 줍니다. 그래서 배우자들은 생활의 목적, 자녀 교육의 목적, 저들의 생활에서 진정한 흠숭에 대한 개요(槪要)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많은 기도가 필요하니, 그리하여 주님께서 젊은 토비아에게 훌륭한 아내를 찾도록 직접 도우신 것처럼 주님을 여러분을 지도하실 것입니다. 


결혼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저들이 충직해지도록, 천주께 충직하고 부부 상호간에 충직하도록, 그리하여 저들이 진정한 생활과 진정한 사랑에 관한 풍성한 은총으로 받도록 하여 충직하게 마리아와 요셉을 본받음으로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아멘


예수와 마리아 안에서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