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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마르틴(St Martin)과 기도의 단계 (2017-11-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11


성 마르틴(St Martin)과 기도의 단계 (2017-11-11)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은 성 마르틴의 축일인데, 그분은 4세기 당시에 프랑스의 투르(Tours) 지역 주교였습니다. 처음 젊은 시절일때는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18세가 되었어도 교리문답을 하고 있었을 그 당시에 아몡(Amien, 파리 북서쪽의 도시)에서 벌거벗은 한 가난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커다란 군인 겉옷을 두 쪽으로 잘라 그 가난한 자에게 절반을 주었습니다. 다음 날 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잘라주었던 피복 조각을 입고 나타나서 말씀하시길, “마르틴아, 비록 네가 신앙의 초보자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너의 옷으로 나를 덮어주었구나.” 마르틴은 자기가 아직도 초보자이어서 주님께서 슬퍼하셨다는 것을 즉각 알아챘으니, 그래서 지체 없이 성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서는 거룩해지겠다는 큰 열망을 가지고 유명한 교회박사인 히러리(St Hilary) 성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퐈티에(Poitiers)로 갔고, 그곳에서 시종(복사)가 되었으며, 퐈티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도원에서 생활했을 때에는 대단히 거룩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에 마르틴은 퐈티에 북쪽에 있는 작은 지역인 투르의 주교가 되었는데, 근처에다가 작은 다른 수도원을 지었고 이교도 지역으로 상당히 많이 남은 시골 지역을 복음화시켰습니다. 시골 지역에 남아있던 이교도주의를 뿌리뽑아서 많은 지역을 교화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성인으로 만들었나요? 기도로 이루어진 매우 깊은 생활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었고,  하루를 많은 시간 기도하면서 보내길 사랑했습니다. 천주님을 갈망하였고, 기도로써 그 목마름을 표현했으며, 이를 채웠습니다! 저는 확신하건대, 우리 모두는 성인들께서 행하신 것처럼 기도하고자 하지만, 그러나 매우 건조하고 매우 빠르게 기도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 주님, 우리가 기도하게 가르쳐주세요!”(루까11;1)

성 마르틴의 생활에서 보듯이, 기도란 우리가 교회의 교리, 교리문답을 알고 있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마르틴 성인은 히러리 성인으로부터 배우기 위하여 퐈티에로 갔고, 이와 비슷하게, 베네틱토 자기 이후에 참으로 많은 거룩한 수도사들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던 성 베네딕토(St Benedict) 성인은 “lectio divina(천주님에 관한 독서)”로서, 거룩한 독서로서 기도를 맨 앞에 놓았습니다. 기도는 묵상의 독서인데, 우리가 거룩한 책을 읽을 때 그 책은 성경도 될 수 있고, 거룩한 성인들의 저작이 될 수 있으며, 성인들의 생활에 관한 것이나 또는 (교회의) 인정받은 열렬한 작가의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책을 소설 읽듯이 빨리 읽지도 않고, 신문을 읽듯이 대략 건성으로 건너뛰면서 읽지도 않으며, 과학서적을 공부하듯이 읽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성경, 거룩한 성인들이나 작가에 의해 가르쳐진 천주님의 진리로써 우리 마음에 음식을 먹이기 위하여, 살을 찌우기 위하여 거룩한 책을 묵상하면서 읽습니다. “사람이 음식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오직 천주의 입에서 발하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리라.“(마테오4;4)

여러분께서 성인들의 저작을 읽을 때에, 여러분은 이곳에서 조금, 저곳에서 조금 골라서 읽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성인들의 정신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친숙해지기 위하여, 성인들이 생각한 대로 여러분의 생각을 그분들처럼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하여, 성인들께서 사랑한 바와 같이 사랑하기 위하여, 성인들의 사고방식이 들어있는 이쪽 책, 저쪽 책 등 모든 성인들의 저작을 읽어야 합니다. 이 방법이 친교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같은 생각을 나누고, 같은 진리에 애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진리에 대한 같은 접근법을 가져야 됩니다.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독서의 목적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성인들과 친구가 되게 하여 그들의 정신이 여러분 안에서 살 정도까지 이르러야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께서 성인들 안에서 사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여러분 안에서 사셔야 됩니다. “천주의 성신께 격려되는 이는 다 천주의 자녀인 연고니라.” (로마 8:14).


여러분들은 때때로 여러분에게 그 말씀이 마치 가톨릭 교회를 반대하는 것처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을 인용하는, 또는 다른 교부들의 말씀을 인용하는 개신교 목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 반대되는 이들 목사들은 교부들의 마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고, 그리하여 목사들은 자기들이 인용한 그와 같은 저자(著者)의 글을 남용((濫用)한 걸 안다면 그 목사들은 오싹해질것입니다. 성인들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에 굴복하면서 항상 자기들의 생각을 고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위에서 제가 설명한 방식으로 저들의 생각의 방식으로 들어간다면, 만약 그 인용문이 잘 쓰이고, 또는 그 문맥의 의미를 잘 빼낸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으로 이루어지는 독서는 오히려 기도의 첫 번째 단계인 것입니다. 하나나 두 개의 진리를 취할 때, 그리고 그 진리에 관한 확실한 체계적인 방법으로서 묵상할 때 이것은 묵상을 적절하게 이끌어 줍니다. 성 이냐시오(St Ignatius)는 여러 가지 묵상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을 사용하는 것, 지성과 묵상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의지입니다. 또는 성경에서 나오는 장면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하는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는 신덕, 망덕, 애덕의 세 가지 덕행 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시작 초기에 준비 과정과 끝 부분에 대화와 같은 추가적인 요점을 가진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좋은 묵상에 유익한 것입니다.

묵상은 음식을 씹고 있는 소의 비유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들이 풀을 자르고 그 풀이 첫 번째 위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첫번째 위) 그리고나서 소들은 땅에 누워 두 번째 위(胃)로 보내기 전에 그들의 입으로 음식을 되새김질하여 다시 씹습니다. 그 결과라는 것은 소들이 그들이 먹는 음식을 완전히 소화한다는 것입니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다른 동물들, 예를 들어, 말들은 자기들이 먹는 영양적인 가치를 일부만을 사용할 뿐입니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묵상이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교리 공부 때에 배웠던 진리의 완전한 가치로부터 유익을 얻게 해줍니다. 어떤 고정된 시간을 옆으로 제쳐놓는 것이 권장됩니다. 매일 묵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좋은데 아침에 일찍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묵상의 열매는 천주님과 영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증진이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 그레고리(st Gregory)는 지적하시길, 물질적인 사물은 대체로 물질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물질을 소유하는 것은 흔히 지루함과 혐오로 이끈다: 그래서 탐욕적인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은 돈을 갖길 원한다: 그들은 결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영적인 사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영적인 사물이란 쉽사리 무시되고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렇지만 영적인 사물을 맛본 이들에게는 아무런 지루함이 없이 아주 큰 기쁨을 가져다 주게 되며, 오히려 이 영적인 사물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그 영적인 사물을 점점 더 목말라하게 된다.

그래서 묵상을 점점 잘하게 될 때, 이 묵상은 천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모님, 그리고 성인들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사랑의 훈련이 됩니다. 이와 같은 사랑스러운 대화는 묵상의 커다란 부분이 됩니다. 이 영적인 대화는 훌륭한 것이고, 덕행의 실천에 있어서 진정으로 개선되는 쪽으로 이끌어 줘야 됩니다. 우리의 생활은 마음에 조화가 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온 마음을 다하여 모든 사물 위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리고나서는 온 종일 주님을 완전히 잊거나 무시하고, 심지어 (말과 행위로) 주님을 거스르면서 아침에 우리 주님께 기도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것이 일어난다면, 거짓말을 매일 아침 기도에 끌어들이는 것이고, 그리고 그와 같은 거짓말은 전체((생활)를 파괴시킬 것입니다.

저 단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오래토록 높이 나아가야 되는데, 왜냐하면 천주님은 순수 영이요, 단순하며 물질적 모습 그리고 묵상의 민감한 측면이기에, 묵상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훨씬 더 아래에 있고 천주님과 무한히 아래에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저열한 수단을 비난해야 하며, 신앙의 진리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쪽으로 자기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보다 높은 차원의 기도 단계로 마음을 끌어 올리는 참된 신앙의 행실에는 단순함이 있습니다. 천주님은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것이고 신앙의 반석 위에 영혼을 세우는 것입니다.

저 단계에서 기도는 묵상이 됩니다: 천주님을 몹시 그리워하며 그리고 천주님의 행위에 자기 마음을 완전히 굴복시키면서 신앙의 진리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아주십니다. 마치 바오로 성인 이르시길,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 보는 우리들은 다 이 (우러러봄으)로써 항상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化)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3;18)

그래서, 기도는 우리를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일체와 일치시키는 세 가지 신학적인 덕행인 신덕, 망덕, 애덕의 실천인 것입니다. 천주님은 최고의 진리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는 진정한 신앙인 가톨릭 신앙에 그 뿌리를 두는 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묵상 및 관상에 있어서 영적인 독서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독서는 이러한 신앙의 진리를 가지고 우리 영혼을 살찌게 하며 또한 성인들의 모범을 줍니다.

모든 기도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뛰어난 기도는 미사성제입니다. 이 미사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기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시면서 성부께 제헌하십니다. 진정으로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희생제사는 모든 인류 역사 가운데 최정점입니다. 구약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이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오는 많은 흠숭(제사)의 모습은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인들은 메시아이신 천주님의 어린 양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오 주여, 어린 양, 땅의 통치자를 페트라의 사막으로 부터 시온의 딸의 산으로 보낼지어다. “(이사야16:1) 즉... 갈보리 산으로 보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경배의 최고 기도, 감사의 기도, 죄에 대한 속죄의 기도, 탄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성 삼위께 드리는 최고의 흠숭행위요,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며,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가 천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천주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 베드로는 쓰시길,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위대하고 존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주심은 이 너희로 하여금 이를 인하여 세속의 육감적 쾌락과 및 부도덕함을 피하여 천주성에 참여하는 자 되기를 위함이심이니라.“(베드로 후1:4)

“나 만일 땅으로조차 높이 달리면 모든 것을 다 내게로 끌어 인도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하심은 당신이 무슨 죽음으로써 죽으실줄을 가르침심이더라)”  (요왕12:32) 미사에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 계신 그분께 우리를 끌어당기십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과 하나가 되게,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바오로 성인은 진정으로 말씀하시니, “성신이 친히 우리가 천주의 의자임을 우리 정신과 한 가지로 증언하시는도다. 의자(義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로마8;16-17)

이것이 일치(一致)로 변화되는 최고 수준의 기도, 천국을 향한 궁극적인 준비인 것입니다: ”저 나타나실 적에, 우리는 천주(天主)와 비슷할것을 아노니, 대저 사실대로의 저를 뵈올 것임이니라. 무릇 이러한 희망을 저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는 저 거룩하심과 같이 자기를 (또한) 거룩하게 하느니라.“(요안1서3:2-3) 십자가 아래에 계셨던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천국에 가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는지, 특히 미사에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 우리를 가르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