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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인들에게 (풀턴 쉰 주교님의 강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2-15



 

        


현대인들에게(풀턴 쉰 주교님의 강론)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시게 해주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에는 내게 입혀주었다. 병들었을 때에 나를 찾아왔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내게로 와주었다.” (마테오 25, 35-36)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목마르다." 이것은 "수고하고 짐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마테오 11,28) 라고 말씀하시기 위함이었고, 그러기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시기 위해서 자신이 무언가 부족함을 표현하셨습니다. "내게 마실 것을 달라."고 우물가에 있는 여인에게 물을 청하셨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천주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주시오." 하고 당신에게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요한 4,10)


주님은 우리를 목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너무나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심장도 뛸 수 없고, 우리 입술도 말라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가끔 세상 재물이 우리에게 샘을 주리라고 믿지만, 이튿날이 되면 그 샘물은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의 속임수와 같고 희미한 빛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를 일러주십니다. 불행의 원인들은 '적당주의', '미지근한 마음', '무관심한 자세' 등입니다.


당신들에게는 초월적인 사랑이 없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정열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갈증도 느끼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그를 믿는 우리들도 당신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당신들처럼 미지근한 삶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의 사탄은 우리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천국에서 불을 훔쳐 온 것을 지금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사원에서 그 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현대인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사랑하여야 할 그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천주님은 살라버리는 불이신데 우리는 보잘것없는 타고 남은 불기운들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는데, 우리는 그저 연막을 던져 올릴 뿐입니다.


우리는 갈바리로 올라가지만 십자가에 죽지 않고 내려옵니다. 아, 슬프도다! 슬프도다! 우리는 골고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손으로 내려옵니다.


십자가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목마르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초와 쓸개를 내밉니다. 만일 십자가가 뜻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의 인간적인 선(善)의 부족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보려 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너는 나를 생명이라고 하면서도 그 생명을 갈망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지혜롭다고 하면서도 나를 따르지 않는다.
너는 나를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부요하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그 부를 청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영원불멸적인 존재라고 하면서도 나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자비롭다고 하면서도 너를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너는 나를 고상한 존재라고 하면서도 나를 섬기지 않는다.
너는 나를 위대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의로운 분이라고 하면서도 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꾸짖더라도 나를 비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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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턴 주교님은 “신부” 시절에는 여러 면으로 훌륭한 분이었지만, 나중에 “주교”로서는 불행히도 예전보다 좋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2차 바티칸에서 비롯된 것을 받아드려) 모든 새로운 고안된 것과 어울렸고 1979년 12월 9일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강론 대부분은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성체, 기도에 관한 강론 등이 그렇습니다. 어느 특정한 이야기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오노다 신부님이나 제게 문의 하세요.


When he was “Father” Fulton Sheen, he was very good in many ways. Later he became “Bishop” Fulton Sheen and was not as good as before, unfortunately; he went along with all the novelties and died December 9, 1979. However, most of his talks remain very good: especially on the Holy Eucharist, on prayer, etc. If you have any doubt on a particular talk, simply ask Fr Onoda or myself.


Sincerely yours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