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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집은 기구(祈求)하는 집” – 성신 강림 후 제9주일(2019-8-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07



“나의 집은 기구(祈求)하는 집” – 성신 강림 후 제9주일(2019-8-11)


“너를 돌아보시는 때를 깨닫지 아니함이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오늘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슬픈 이스라엘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할 지라도, 만약에 천주 성총을 거부한다면, 지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메시지에 대해 서간경과 복음을 통해 묵상하고, 그리고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천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천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을까요. 성총, 보호, 지도 다 하셨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피신시키고, 탄압하는 파라오의 군대에서 구하시고, 바다를 분리해서 건너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사막에서 만나와 물도 주시고, 다윗, 솔로몬 등 훌륭한 왕들도 주시고, 힘 있는 왕국을 허락하셨습니다. 천주께서는 그들에게 특별한 성총과 특별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받으면서도 성총을 거부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죄를 범하고 악을 탐했습니다. 서간경에서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길, “저들이 탐함과 같이 악을 탐하지 말지니라. 또한 너희는 저들 중의 어떤 이와 같이 사신(邪神)숭배자가 되지 말지니, 대저 기록하였으되, "먹고 마시려고 앉았다가 장난하려고 일어났다 함과 같도다. 또 저들 중에 사음을 범한 자 있어 하루에 2만 3천명이 죽었으니, 이런 모든 일은 저들에게 전조로 나타난 것이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시고, 사람이 되시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구속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오사, 도성을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창조주, 세상 마지막의 심판자,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보시고, 피조물인 자녀들을 보시고 울으시며 “슬프다.”고 하십니다. 만약에 엄마가 나쁜 길을 가는 아들 딸들을 피신시키고자 해도 계속 그 길을 간다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 천주께서는 그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너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으면 다행하련마는.”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은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주시는 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주시는 사정을 깨닫지도 못했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성총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께서 얼마나 사랑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써 예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고, 진짜 그대로 됐습니다. 70년에,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예루살렘에 가서 다 파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데아인들은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싸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이 있습니까? 성 바오로가 말씀하시길, "이런 모든 일은 우리들을 훈계하기 위함이로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교훈, 훈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천주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빛,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 구원의 길, 주님이 흘리신 성혈, 모든 것이 천주가 주시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성총을 주실겁니다. ‘죄를 범하지 말라.’  ‘기도하라.’  ‘의무를 잘하라,’ 우연히 들은 영적인 말씀, 읽어본 좋은 말씀, 착한 모범, 실수에 대한 깨달음, 죄에 대한 통회 등 이 모든 것은 주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우리는 주님이 주신 성총을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한다면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 내 뜻대로 하겠다.‘ ’주님 뜻보다 내가 중요하다.‘고 성총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조금씩 거부하다 보면 아주 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어도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사랑받던 이스라엘 백성도, 주님의 신전이 있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도 멸망한 것을 보면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서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조심할지니라.”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성 바오로께서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씀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천주는 성실하신지라, 너희 힘에 넘치는 유감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를 감당케 하기 위하여 유감과 한가지로 이를 이길 방법을 주시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하면 유감에 넘어지지 않고 주님이 평화를 주시는 사정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합하면 됩니다. 참된 평화는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일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구하는 집'이라 기록하였거늘”


그러므로 우리의 집도 주님과 일치하여 ’기구하는 집‘으로 합시다. 우리의 집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우리 영혼도 ’기구하는 집‘으로 합시다.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일치되도록 합시다. 이것을 위하여 성모님에게 기도합시다.


“너를 돌아보시는 때를 깨닫지 아니함이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