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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리 추기경과 쟝 기통/Cardinal Siri and Philosopher Jean Gi Tong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29



시리 추기경과 쟝 기통


질문 1988년에 시리 추기경과 철학자 쟝 기통은 왜 르페브르 대주교의 주교성성을 반대했나요?


답변 시리 추기경은 비오 12세 교황 당시에 훌륭한 추기경이었지만, 바오로 세 교황 당시의 교회 변혁의 바람 속에서 그 변혁에 대해 일어서서 저항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시리 추기경은 몇몇의 ‘보수적인’ 성직자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나, 전통 미사를 보존하는 데에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용기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쟝 기통은 철학자이자 바오로 6세의 개인적인 친구입니다. 이런 의미는 그 철학자 안에 자유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1976년 바오로 6세에게 조언하여 르페브로 대주교의 전통미사 보존을 허용하라고 했지만 바오로 6세는 그 조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쟝 기통 자신도 전통미사를 특별히 참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는 새미사를 죽 나갔고 그래서 그가 르페브르 대주교의 용기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몇 가지 두비아(dubia 역자 주: ‘의문’, 또는 ‘분명히 밝히라는 공식 요청’ 이라는 뜻으로서 5가지 였음) 즉, 신앙과 도덕의 중요한 문제에 관한 질문을 교황에게 보내어 교황으로 하여금 신앙의 유산을 전적으로 지키고 그리고 충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교황의 의무라고 하신 네 분의 추기경 (역자 주: Caffarro, Burke, Meisner, and Brandmuller)이 있음을 알게 됨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분들이 오늘날 하시는 것은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1985년에 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대주교는 그 당시에 교황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질 못했는데 그 중 하나는 1988년의 주교성성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198년의 아씨시 사건입니다. 이들 선한 추기경들은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행동으로써, 실제적으로는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1985년에 행하던 것을 모방함으로써 보여주는데, 이들 추기경들보다 30년 전에 앞서서 행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행동이 그 당시에 옳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답변이 다소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나 인물에 관한 질문은 ‘흑백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고려해야할 많은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Yours sincerely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


Q  Why did Cardinal Siri and Philosopher Jean Gi Tong oppose Archbishop M. Lefebvre’s Episcopate Consecration in 1988?


A  Cardinal Siri was a good Cardinal under Pope Pius XII, but when the wind of power changed in the Church under Pope Paul VI, he did not have the courage to stand up and resist the novelties. He did help some “conservative” people, but not to the point of actually keeping the Traditional Mass. So he did not understand the courage of Archbishop Lefebvre.

Guitton was a philosopher, personal friend of Paul VI, which means that there must have been some measure of liberalism in him… In 1976, he did advise Paul VI to allow Archbishop Lefebvre to keep the Traditional Mass, but Paul VI did not follow that advice. Yet Guitton himself was not particularly attached to the Mass; as far as I know, he went along with the new Mass, and thus it is not surprising that he did not understand the courage of Archbishop Lefebvre either.


It is interesting to see now that you have four Cardinals that have sent some “dubia”, i.e. questions on important matters of Faith and morals, to the Pope, reminding him that his was the duty to keep entirely and expose faithfully the deposit of Faith. What they are doing today is exactly what Archbishop Lefebvre did in 1985: and the no-response he got from the Pope at the time was one of the two reason (the other was Assis in 1986) for the Consecrations of 1988. Now these good Cardinals are actually showing to many – by their actions, practically imitating Archbishop Lefebvre’s actions of 1985 – that Archbishop Lefebvre was right then, 30 years before them.


I hope these answers help somehow. Questions of history and about people are not all “black and white”, because there are many aspects to be considered. However it is important to keep the principles clear.


Yours sincerely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