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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사람도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다 (2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07



어떤 사람도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다 (2부)


여러분은 천주님께 절반을 기꺼이 주고, 절반은 세상에 기꺼이 주고 있습니다. 잠깐 생각해 시오. 그런 분배에 천주님이 만족해하고, 그리고 세상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에게 일부가 아니라 모든 것을 요구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한 편에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의문이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대죄의 죄를 피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일어나는 의문은 없을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요? 그러한 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분은 인간의 존경심을 발아래에서 짓밟을 정도로 강할 것입니까?

성인은 그 힘을 얻었습니다. 가치가 없는 타협의 습관으로 성장한 사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간의 견해를 기쁘게 하는 관행을 하는 이들은 어떤가요?그가 승리자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오히려 본디오 빌라도 행동처럼 그러한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자기 앞에 나온 그 죄수(예수)의 무죄함을, 그리고 그를 적대시하여 분노를 발하는 적대적인 열정을 아주 잘 알아볼 수 있었던 저 소심한 재판관은 고소인들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피고인(예수)을 책망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일련의 비참한 편익에 종사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헤롯의 심판을 받으라고 보내며, 그리스도는 헤롯의 신하인 것처럼 행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략은 실패하고, 결정의 짐을 다시 그의 손에 맡겨집니다.

이제 그가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판결한다면, 그는 막대한 불의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만약 그가 예수를 석방해서 보내면, 그는 전체 회당의 분노를 낳습니다. 그는 중간 과정을 다시 시도합니다. 그는 구세주의 생명을 아끼지만, 그분을 수치스럽게 하고 고문을 할 것입니다. "나는 그를 징벌하여 멀리 보내버릴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고한 희생자에게 채찍질이라는 야만의 잔혹함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원한을 기쁘게 하는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에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그분은 아무 남김이 없도록 선고 받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또 다른 핑계를 시도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무죄로 선언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분의 유죄를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축제에서 사람들이 지명한 범죄자를 석방한다는 기존의 관례에 있는 수단을 발견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그는 실망합니다. 어떻게 자신의 비겁하고도 비뚤어진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는지, 어떻게 계략자가 범죄에 범죄를 추가하는 것인지, 모든 상상할 수 있는 범죄 중에서 가장 검은 색으로 끝나게 되는지를! 마침내 빌라도는 요구되는 모든 것을 줍니다. 그는 모든 천상의 법과 인간의 법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의 환상과 두려움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천주성자에게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정죄합니다.


Taken from “The servant of the Sacred Heart” by Fr. Geor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part II)

 

You are willing to give half to God, half to the world. Supposing for a moment that God were to be satisfied with such a division, do you think the world will be? Will not times come when it will ask of you not part but everything? Will not occasions arise when it is a question of pleasing men on the one hand and of avoiding downright mortal sin on the other? What then will you do? Will you at such a crisis be strong enough to trample under foot human respect?


A Saint would have that strength; but what of one who has grown into the habit of unworthy condescensions, the practice of pleasing human opinion at any cost? Will he come out victor, or may we not rather expect from such a Christian such conduct as that of Pontius Pilate?

That timid judge, quite able to recognize the innocence of the Prisoner brought before him and the hostile passion that raged against Him, tried to avoid condemning the accused without arousing the anger of the accusers. So we see him engaged in a series of miserable expedients. He sends Christ to be judged by Herod, on the pretense that Christ was the subject of Herod; but this artifice fails and the burthen of decision is again left on his hands.

Now, if he condemns Christ to death, he incurs the guilt of an enormous injustice; if he sends him away acquitted, he incurs the anger of the whole synagogue. He tries again a middle course: He will spare the Savior's life, but he will disgrace and torture Him. "I will chastise Him and send Him away," he says. So he inflicts on the innocent victim the barbarous cruelty of the scourging.

But this is far from gratifying the enmity of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They insist that the Man they hate is deserving of crucifixion, and that He must be sentenced to nothing less. Then Pilate tries yet another subterfuge. He will not declare Christ innocent, but will avoid pronouncing His condemnation; he will find the means in the established custom of releasing one criminal named by the people at the festival of the Passover.


But here again he is disappointed. How his cowardly and crooked policy utterly fails, how it brings its contriver to add crime to crime, ending in the blackest of all conceivable crimes! Pilate grants at last all that is clamored for; he condemns to an ignominious death the Son of God, in spite of all Divine and human laws, in spite of the visions and fears and warnings of his wife, in spite of the reproaches of his own conscience.


Taken from “The servant of the Sacred Heart” by Fr. Ge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