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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 에큐메니즘에 저항하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15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1부 지상 교회 군대에서의 성모기사회(MI)


제3장 에큐메니즘에 관한 전쟁선언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현대) 교황직의 1차 목표 ‘다양성 속의 일치’, 즉 초월적인 목표를 지향한 다양한 종교의 보편적 순례, 그러므로 각 종교는 특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많은 가능성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에큐메니즘 정신을 주장하는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래서 콜베 성인에게 떠오르는 의혹은 역시 그분이 에큐메니즘의 선구자인가하는 것이고 사실, 그런 방식으로 자주 묘사된다. 모든 분열을 극복한 사랑의 순교자였다고 흔히 일컬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사랑이란 모든 종교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라는 그런 방식으로 모범이 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종교의 생활은 오직 사랑에  기반 하는 것으로서, 그가 처한 있는 그대로의 방식과 그의 양심과 세계관을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참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성모기사회(MI) 법령을 제정할 당시에 두 번째 교훈으로 증명된 바대로 이와는 꽤 다르다: “너 홀로 전 세계의 모든 이단을 정복하셨도다.“ 그래서 성모기사회의 첫 번째 목표는 이단과 오류를 극복하는 데에 있고 그것이 성모님의 최고 승리 중 하나이다. 콜베 성인은 저런 오류의 교리가 영혼의 치명적인 원수임에는 조금도 의심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단은 인간의 이성을 어둡게 하고 논리적 사고를 파괴한다. 인간의 활동이란 참과 선으로서 인식된 것에 목표를 두고 있기에, 거짓 가르침은 최악의 재앙이며 영혼 구령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독성(毒性)있는 생각을 받아드리면, 나쁜 목표를 선택하게 되고, 환상적인 행복을 지향한 삶을 도모하는데 이는 실제로 영원한 파멸로 이끈다.


그래서 성모기사회(MI)를 설립한 후...짧은 기간에 노트에 써놓았다.


“자유주의는 초자연과는 반대된다. 현대주의(나는 섬기지 않겠다)는 단지 인간의 방법으로 그 시대의 조류를 받아드리려 한다.” (Notebook, October 23, 1917.)


“자연주의는 이 20세기의 상처인 질병이다.” (Notebook, February 11, 1918.)


“거짓 사제직의 본질이 있다: 그들은 (1)늑대이고 (2)양의 옷을 입는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의 행실로서 알 수 있다. (Notebook, July 7, 1918.)


 ‘성모기사‘(Rycerz Niepokalanej)의 편집자로서, 콜베 성인은 반복적으로 불신의 위험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 시대의 거짓종교와 오류를 폭로하는데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중에 독자들에게 오직 효과적인 해결책, 위험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돌아오라고 긴급한 호소를 하였다. 그분이 성모님이니 그 분이 온 세상의 모든 이단을 정복하신 분이다. 성모기사회가 자기 길을 확보해야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바로 이것이니 모든 비 가톨릭 종교와 세상적인 견해는 모두가 교회의 원수다.!


오늘날의 상황


전 지구적으로 수행되는 전쟁은 교회와 선한 영혼들을 거슬러 싸우는 것이다. 적은 다양한 위장과 다른 이름으로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의 불행을 촉발한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니, 저들에게 불신의 독극물을 주입시키고자 함이다. 볼세비키가 종교를 어떻게 짓밟았는지 잘 안다. 유물론자들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데, 저들은 감각에 즉각 인식할 수 있도록 우주를 축소시키고 그리하여 저들은 천주도, 불멸의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서로를 설득하고 있다. 신지학(神智學)은 종교적 무관심을 퍼뜨리고, 여호아 증인과 개신교인들은 많은 달러 지폐뭉치를 사용하여 저들의 신자들을 점점 더 모으고 있다. 이들 모든 종파들은 가톨릭교회를 맞서 싸우는 최전선을 형성한다.(RN 2 (1923), p. 2.)


그러나 이러한 최전선 뒤에서야 겨우 원수의 주요 군대를 찾을 수 있다. 가장 으뜸이자 가장 강력하고 최악의 교회 원수는 프리메이슨이다. 개신교의 종파가 홍수처럼 증가하니, 실제적으로는 프리메이슨의 전위대라는 사실은 프리메이슨의 기관지(발간물) “Wolna Myśl” [“Free Thought”]에 의해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옛 가톨릭교회의 본래적인 가치를 향하여 우리의 자세에 있어서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의 수위권에 대항하여 다른 개신교의 종파와 마찬가지로 이 싸움을 지지할 수 있다. (원고; 오늘날의 교회의 적들)


적과 대치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이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근심 걱정으로 채우며 우울한 생각을 일으킨다. 이 어두운 증오의 물결은 오늘날 가톨릭교회 전반에 퍼져 있다.....교회의 첫 번째 원수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래서 주님의 사업을 초기에 쉽사리 잘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유대인들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였고 오로지 그들만이 할 수 있듯이 중상(中傷)비방, 투옥, 추방, 돌팔매질을 하였다. 이것이 성 스테파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도 교회는 죽지 않았다.


그러자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의 감미로운 포도밭을 뿌리 뽑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첫 3세기 동안 일어난 로마에서의 끔찍한 일을 생각해보라! 로마 황제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한 이들에게 그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했던가! 네로, 도미티안, 트라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디오클레치안, 그리고 배교자 율리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저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치길, “그리스도인들을 사자에게 던져라.” 하였다. 이교도 사제들은 사람들을 선동했고, 철학자들은 불을 지폈으며, 피는 강으로 흘렀다. 피는 뿜어져 나왔지만, 교회가 헛되이 추측하듯이 교회는 파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는 점점 강력해지고 번성하였다. “치명자들의 피가 새로운 그리스도인 씨가 되었다.”라고 당시의 테르툴리안(Tertullian)이라는 사람이 주장하였다.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새롭고 심지어 위험한 재앙인 아리안파 이단이 나타났다. 이 이단은 너무나 철저히 세상에 침투하여 그리스도 문명에 다시 막 태어났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비잔틴 황제까지 이를 받아드렸다. 그들은 이 이단을 받아드리면서 또한 권력으로 이를 퍼뜨려 가톨릭 주교들을 쫓아냈으며 아리안 이단으로 비어있는 주교좌(主敎座)를 채웠다. 그 당시의 작가는 쓰기를, 온 세상이 깨어나 보니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니라 하룻밤 사이에 아리안의 세상이 되어있다고 했다. 오늘날 이 이단은 거의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교회는 계속 존재한다. 또 다른 이단이 나타났다. Macedonians, Monophysites, Nestorians, Monothelites ....그러나 이들 역시 오늘날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단들보다 더 위험한 것이 교회를 가능한 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비잔틴 황제의 노력이었다. 역사가들이 부른 것처럼 이 ‘황제의 파시즘’에서 오는 수많은 박해와 수많은 고통이 그 얼마나 많았나? 후일, 독일 황제들도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 오토, 헨리 9세, 프레드릭 바바로사, 헨리11세, 특히 프레드릭 2세가 그렇다. 그들은 모두가 교회를 절대적으로 통치하려하였다. 그랬어도 그들은 앞서거니 뒤섰거니 망했고 불멸의 교회에 의해 쇠퇴하였다. 비슷한 운명은 저들의 나중 모방자들을 기다렸다. 오스트리아의 조셉2세, 나폴레옹 등..... 그랬어도 교회는 승리하였다!


교회는 내부의 스캔들과 분열로 인해 커다란 고통스런 타격을 받았다. 이것은 9~10세기 초엽처럼 교회를 괴롭혔다. 주교들이 자주 천주님의 종이라기보다는 조신(朝臣)이나 전사(戰士)가 되었다. 심지어 몇몇 교황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가치가 없었다. 그러한 2-3명의 교황이 서로 싸울 때 고통스런 해가 찾아왔다. 물론, 그 중 한명이 유일한 참 교황이었지만....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끔찍한 시기였다. 모든 다른 기관들이 멸망으로 몰락했지만, 그러나 교회는 모든 것을 견디어 냈고 붕괴되지 않았다. 전 세계가 교회를 파괴하려 맹서했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약속은 훼손되지 않았다.


16세기 들어서자 루터, 칼빈, 즈빙글리, 영국의 헨리 8세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출현했다. 이단들은 교회의 몸을 조각내었고,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떨어져 나갔다. 오늘날까지 여러 나라에서 거의 대부분이 교회에 충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자체는 쇠락하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교회는 끝까지 존재할 것이지만 엄청난 손실을 겪고서야,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다시 번성할 것이다. 교회는 이교도의 회개에 눈을 돌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받아드렸다.


개신교는 도덕률의 이완을 불러일으켰다. 본성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은 얀센니즘이라 부르는 분파 운동이었다. 얀센니즘은 모든 것, 웃음, 기쁨 그리고 즐거움 등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었고..이 역시 사라졌다.


18세기는 교회에 가장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그 당시에 번성했던 이성주의는 더 이상 논쟁의 거리나 신앙의 이야기꺼리는 아니었으나 종교는 그대로 불신!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오직 세속적인 행복만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에게서 어떠한 책임감을 벗어던지게 하였다. 인간은 유인원(類人猿)으로부터 진화된 것이라고 경솔하게 동의했다. 원숭이는 종교가 필요 없고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유쾌한 원리이지만 이 얼마나 가치 추락이던가!


오늘날 이성주의자들은 아직도 소란스럽게 자기들의 견해를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은 강신술, 최면술 등등으로 종교를 대체하여 교회와 맞서 싸운다! 그래도 교회는 파괴되지 않고, 불변이며, 계속 굳게 서 있다. 교회 주변의 모든 것은 망했다. 그래도 교회는 존재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리고 교회는 현재의 공격에도 견딜 것이다. 각자 믿는 자들은 만약 저들이 제 때에 교회와 밀접한 연대를 맺지 아니하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교회 자체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한 양(羊) 우리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겠으나 그들이 양 우리 자체인 교회를 파괴하진 못할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모친이자, 폴란드 여왕이시어, 지독히 불행한 이 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RN 7 (1929), pp. 195-197)


콜베 신부는 저들 모든 것을 파악하신다. 오늘날 몹시 찬미 받는 그리스도 종교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거론하신다. 먼저 그 질문에 대답하신다. 왜 이리도 교파가 그리도 많은가! 그 이유는 죄와 악이다.


술 취한 황제 미카엘 3세의 삼촌인 바르다스는 황제를 대신하여 국가를 통치하면서 며느리와 근친상간하면서 살았다. 주교 성 이냐시오가 그 점에 대해 그를 꾸짖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857년. 미사 때에 이냐시오가 그를 공개적 악한 표양을 일삼고 있다고 선언하였는데 그 결과는 그가 격노를 일으키어 성 이냐시오를 추방하고 새로운 총대주교 포티우스(Photius)를 임명하였다. 이것이 동방정교회의 시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소속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는 맹서를 깨뜨리고 수도원의 수녀를 잡아 아내로 삼고 개신교를 세웠다. 영국의 왕 헨리 8세는 아라곤 공국의 캐서린과의 피로한 결혼 생활하다가 앤  볼린과의 결혼을 원했다. 저들이 부부였음에도 아내를 바꾼 후에, 그 부패한 군주는 1537년 영국교회를 세웠다. 왜냐하면 교황이 천주님의 계명을 그런 식으로 깨면 안 된다고 하여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교회로부터 빠져 나온 결핍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지적발달, 직업 그리고 생각의 여건이 조성된 모든 이들은 진리를 조사할 권리와 숭고한 의무를 가져야 하며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가 세운 참 종교를 알고 이에 따라 살아야 한다. (RN 5 (1925), pp. 264-265.)


정교회에 관해서는 오늘날 ‘자매교회’로 언급되기도 하며, 공식적으로 ‘특별교회’라 부르는데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1939년 그 기사에 관한 총서를 발간하였다. 먼저, 커다란 종교분열의 역사적 사실은 제시된 바이고 기저에 있는 사실은 로마와 결별로 이끄는 점을 묘사하고 있다, ”교황권의 걸출함에 대한 시기(猜忌)에서 나온 교황에 대한 증오...더 큰 영적인 힘 그리고 특히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갈증...교만 등은 서방 세계를 야만인으로 멸시한다.“ 정교회의 근본적 원인으로서 작가는 특히 ”비잔티움’을 언급한다. 교회 내부 일에 있어서 비잔틴 황제의 간섭,“ 그리고 ”세속적인 행복과 현세의 영광을 추구함이 필연적으로 그들을 세속적인 권위의 손에 들어가게 하였고 그것이 황제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된 비잔틴 총대주교“를 언급한다. 콜베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분석을 마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저들에게 주님의 손길을 뻗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저들이 주님의 양의 목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그들은 어둠을 사랑했고, 오늘날까지 헛되게 다른 구원의 길을 찾는다. (See RN 5 (1939), pp. 149-151 and RN 6 (1939), pp. 166-167)


다른 사안에 관련하여 성모기사회는 기록하길, 왜 종교분열이 그리도 개종하기가 힘든가?


얼마 전 O. Gapanowicz라는 정교회 사제가 자신의 종교 분리적인 신념에서 빠져 나와 가톨릭교회로 들어왔다. 러시아 이민자들이 그 사제에게 올바른 믿음을 의미하는 ‘정통(Orthodoxy)’이라고 잘못 호칭된 그들의 정교회 쪽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설득하였지만, Gapanowicz 사제는 매우 중요한 말로써 그들을 실망시켰다.


“50년간 나는 정교회를 믿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그리스도 신앙의 교의(敎義) 안에 담겨있는 진리를 알지 못했고, 찾고자 하질 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건대, 만일 정교회 주교와 사제들이 선한 의지와 열정의 작은 빵 조각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의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그들 중 누구도 정교회에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 요한 크리소스톰, 성 바실 그리고 성 니콜라스의 정통 (제대로 된 신앙-가톨릭) 신앙을 고백할 것이며 나 역시 오늘 이를 시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Gapanowicz 사제는 모든 정교회에 도전하여 그가 행했던 대로 가톨릭교회로 넘어온 것이다. (RN 2 (1929), p. 52)


성공회는 비슷한 방식으로 심판받는다. 왜 윈들 교수(Prof. Windle)가 개종했는가?


영국에서 영국교회인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버트란 윈들 경이 얼마 전 죽었다. 20년 전 그는 리틀데일 박사(Dr. Littledale)가 쓴 글을 읽었는데 이 책은 왜 성공회가 로마교회와 일치하지 못하는 가를 근거 없이 주장한 글이다. 바이더 신부(Father Byder)가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서평을 나중에 간략하게 썼는데 윈들 교수 역시 이 책을 읽었다. 두 개의 논문을 조목조목 연구함에 따라, 양쪽 작품에서 사용된 교부들로부터 오는 수많은 인용문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두 작가 중 어느 한 명이 번역에서 광범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가하고 꽤나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면 어떤 책일까? 이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하여, 윈들 교수는 버밍햄에 있는 대형 성공회 목사관으로 가서 교부들의 저작이 들어있는 총서(總書)를 빌렸다. 첫 번째 번역을 확인하자마자 모순이 드러나서, 외치길, “가톨릭이 옳다!” 그 다음 쟁점에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보니 역시 가톨릭이 옳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 교수는 인용문의 모든 주제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확인하기를, 성공회 성직자의 정직성에 대한 자신의 신뢰가 무참히 깨진 것을 알았다. 윈들 교수는 가톨릭 작품을 계속 연구하여 모후(母后) 교회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겼다. (RN 5 (1929), p. 236)


콜베 성인은 개신교를 특히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성모)에게로 가는 길을 차단하며 영원한 행복을 얻는데 필요한 수단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진리: 진정한 행복


반만 채워진 상태로 있으면서 이에 대해 만족하는 마음은 없다. 적당히, 건성으로 뭔가를 하는 것은 행복에 대해 오직 짧고 속은 느낌을 줄 뿐이다. 이에 관한 풍부한 증거는 개신교의 모든 종파들은, 사실 완전한 진리를 전부 소유하지 않다는 면에서, 자기들의 구성원들을 잃고 있는 것이다. 탁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루터나 캘빈의 건조하고 희석된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니, 왜 베그로송, 뉴만, 브라운, 체스테튼과 그 밖의 인물들이 개신교를 버렸겠는가? 새로이 공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 이러한 무수한 인물들과 합류하였으니, 잘 알려진 미국작가와 교육자인 개신교 출신의 교수 쿠스베르 롸잇(Prof. Cuthbert Wright)이다.


예전에 신자였지만, 개신교가 자기의 지성에 완전한 평화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에 와 닿질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 위대한 미국의 학자는 가톨릭교회로 들어왔다. 천주께서 영혼을 어떠한 방법으로 끌어드리시는지, 그 놀라운 방법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회두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롸잇 교수는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목사였고 개신교파인 ‘복음교회’의 수장이었다. 어린 롸잇은 학교에서 가톨릭에 관해 배웠다. 어느 날 그는 친구와 함께 가톨릭교회에 갔다. 가톨릭 예배, 특히 거룩한 미사는 롸잇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마치 내가 커다란 신비에 참여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사의 신비에서 느끼는, 그래도 미사에서 그 힘을 느낄 수는 있었다, 우리 부친의 교파에서 오는 딱딱하고 차가운 의식은 내가 가톨릭교회에서 느낀 미사의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가톨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끔 방문한 뉴욕의 어느 교회에서 천주님의 모친을 그린 아름다운 스텐 유리장식이 있었는데, 그 성모님은 옷자락으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개신교인들이 빼앗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사실, 본질적인 어떤 것인데 그것은 세속적인 복락에서 커다란 내적인 힘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후일, 대 전쟁(세계 1차 대전)동안 전쟁 치루는 동안 내가 큰 위험에 처해있을 때, 나는 갑자기 내 눈 앞에서 꽤 분명한 것을 보았는데. 뉴욕의 성당 창문에 있는 스테인 유리의 마리아 모습이지만 성모님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은 내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서서히 가톨릭 교리의 기본적 진리에 동화되었고 회두의 은총을 받게 되었다.


위에 기술된 주장을 입증하는 두 번째 사실은 영국 작가 리비 메이(Levis May)의 회두이다. 그는 유명한 작가로서 문학 세계에서 꽤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귀중한 책을 썼으며, 이 책들은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박식함에도 불구하고 리비 메이는 신자였지만 불행히도 개신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학자로서 그는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은 오직 가톨릭 신앙에서만 찾을 수 잇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천주님의 성총의 목소리를 따랐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가톨릭은 영혼을 정복한다. 가톨릭은 항상 영혼을 정복할 것이니, 왜냐하면 이것만이 유일하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 세상의 눈물의 골짜기에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한, 진리가 행복을 준다. 이해력을 만족시키니, 이는 오늘날의 현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오직 가톨릭만이 이를 입증할 수 있으며 입증하고 있다. ( RN 10 (1936), p. 310. )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은 또한 가톨릭이 왜 유일한 참 종교이며, 모든 다른 종교는 전부 거짓인가라는 이유를 기록한다. 우리의 신앙은 분명한 내적 논리력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에 의해 유지되는데, 설령 모든 인간들이 가톨릭 신앙을 반대하더라도 인간의 견해와는 독립적인 것이다. 그가 1940-1941년에 독일에서 있을 때 나온 ‘Rycerz Niepokalanej’의 유일한 쟁점에 관해.... 이 기사를 발행한 것은 우연히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즉 다시 말해서, 폴란드에서 나치의 선전이 한창 이루어질 때 특히 나치의 선전은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신앙에 반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진리


비록 모든 이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진리만이 영원한 행복의 기본이 될 수 있다. 진리는 하나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한 사안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가 모두 진리인 듯이 실제 생활에서 행동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때때로 천주섭리 안에서 우리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험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우리가 너무 낙심하여 천주섭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와 비슷하게. 예를 들어 내가 현재 다음 이 글을 여러분께 쓰고 있으며,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반대되는 진리, 즉 내가 이 글을 쓰지 않거나, 여러분이 글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반대되는 진리는 없다. 같은 사실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가 동시에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에 진리에는 ’그렇다‘ ’아니다‘ 들 중 하나이다.


진리는 강력하다. 내가 이글을 썼고 여러분이 이 글을 읽었다고 한 사실을 어떤 사람이 부인하려 한다면, 그 부인하는 사실이 진리를 바꾸지는 못한다. 부인하는 그 자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많은 이가 부인한다하더라도, 진리가 그로부터 아무런 해를 받지 않는다. 설령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이 글을 안 썼고, 여러분도 이 글을 안 읽었다라고 지난 백년 간 전 세계적으로 주장하고 인쇄물로도 주장하며 영화로도 제작하고 맹서했다 라도, 내가 글을 썼고, 여러분이 읽었다는,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이 진리를 조금도 훼손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의 강력한 힘이다! 무한한, 실로 신과 같은 힘이다!


이것이 종교의 진리에도 해당된다. 이 세상의 많은, 너무나 많은 수많은 종파를 보고 있고 모든 종교는 다 선하다는 널리 퍼진 견해가 있음을 안다, 이 사실에 동의 할 수 없다. 천주님의 눈으로 볼 때, 이들 많은 종교가 종교도 아니거니와 어떠한 죄에도 면제되지 않은, 그저 이쪽, 저쪽 단체에 속한 것은 사실이다. 저들이 자신들은 올바른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진리는 역시 그 자체로 오직 하나이어야 하나, 현실에서는 저들은 자신들이 그르다 인정하기 보다는 그저 옳은 길을 가고 있으려니 확신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진리는 진정한 신앙을 갖는다 라는 것에 따라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한분인 것이다.


만일 진리가 있다면, 그러면 신이 존재하시고, 그러면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모든 무신론자들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느 종교에 속한 모든 이들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게 사실이라면, 그분이 가르친 것 또한 사실이고 그분이 성육신이 되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부활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사실 베드로에게 “너는 바위라 그리고 이 바위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말씀하셨다면, 그럼으로써 주님은 오직 하나의 참된 주님의 교회와 수백 개의 다른 그리스도인의 교회를 쉽사리 구별할 수 있는 신호를 주신 것이다. 그러면 가톨릭교회에 속한 그들만이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오직 가톨릭인만이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천주님을 찾는다면 이곳 지상에서 평화와 만족을, 그리고 후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증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이것은 모든 다른 종교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성모님이 루르드의 벨라뎃타에게 나타나셨다면, 그러면 성모님은 살아계신 것이고 진정한 어머니로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진리를 인식하자. 그러므로 그 누구도 진리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이를 시인하며 자신의 생활을 이에 맞추어 순응시키고 모든 일을 하는 가운데 진리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고, 특히 삶의 궁극적 목적에 관련된 것에, 즉 천주님(참 종교)과의 우리의 관계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진리 위에 기반 되지 않은 행복은 없다. 오직 진리만이 행복 추구의 파괴되지 않은 발판이 될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반복하고 반복하여서, 콜베 신부는 성모기사회(MI)에 호소하여 진리를 위해 싸울 것을 부탁하다. 이 진리는 오류를 맞서 싸울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들 성모기사회(MI)는 가톨릭 교리의 기본적인 진리를 전파할 것이다. 특히 무신론에 맞서서. (RN 10 (1938), p. 101. free-thinking, religious indifference, sectarianism, and anti-clericalism.)


모든 이단을 정복하시는 유일한 분은 성모님이다. 성모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봉헌으로 우리는 교회와 영혼의 도덕적 원수를 정복하는데 있어서 성모님께 협조하게 되어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고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는 친구들을 낚아채어 영혼을 구하게 된다. 성모님은 이단을 파괴하는 것이지 이단자들을 파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오류에 빠진 불쌍한 영혼들(이단자들)을 사랑하시고 저들의 회개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성모님은 이단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시고 저들의 오류와 확신을 파괴하신다.


성모님은 이단을 파괴하시니, 즉, 이단을 느슨하게 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적으로 파괴시키니, 이는 이단의 흔적이 남지 않기 위함이다. 이단 모두를! 모두가 예외 없다. 어디서? 지구 모든 곳에서. 한 국가에서 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국가에서 이단을 정족하신다. 성모님 홀로!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홀로 이를 수행하실 능력이 있다. (RN 12 (1933), pp. 293-294)


성모님은 영혼의 원수를 정복하신다! 성모기사회(MI)의 깃발아래 우리를 등록시키고...그리하여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싸우길 원하신다. 성모기사회의 목적은 그러므로 죄인들, 이단자들, 유대인들...그리고 특히 프리메이슨의 회두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이것은 성모님의 보호와 성모님의 중재를 받음으로써 하는 것이다. (RN 10 (1938), p. 291)


그러면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모든 종파들과 개신교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가톨릭 신경을 고백할 때까지이다. 그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성세를 요청할 것이다. 오직 그때서야 만이 성모기사회(MI)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RN 4 (1922), p. 78)


다시 말해서, 성모님과 성모기사회(MI)에 있어서 오늘날에 이루어지고 있는 에큐메니즘[1933년에 있었던 독점적인 개신교 운동]보다 더 강력한 적은 없다. 에큐메니즘을 맞서서 모든 기사들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싸워야 할 것이고, 반대되는 행동을 통해 중화시키고 마침내 파괴시켜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우리는 성모기사회의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즉 성모님을 위해, 그리고 성모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을 위해 오늘날 존재하거나 세상 종말 때까지 존재하게 될 전 세계를 정복하고 모든 개인의 영혼을 정복하는 것이다. (Diary entry dated April 23,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