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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천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9-01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2부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제1장 천주님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죄인들의 회두, 악마를 거스르는 싸움, 천주의 모친께 봉헌: 이 모든 것들은 저 기사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을 얻기 위한 오직 유일한 수단이니, 즉 인간과 모든 사물은 천주께 영광 돌리는 것이 제일 우선순위에 놓도록 창조된 것이다.


천주님은 중심에 서 계시다. 그분은 모든 이로부터 최고의 영광과 경외를 받아야할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끝이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에게 있어서 인간은 단지 천주님의 명령을 따라야할 존재로서의 의미가 있다. 천주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천주께 가장 커다란 영광을 드리는 방법만큼 다른 것은 없다.


성 이냐시오는 천주께 큰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하였다. 우리는 가능한 한 천주께 가장 커다란 영광을 드리기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주님은 마땅히 받으실만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의 최종 목적은 천주님의 본질적인 영광이다. 이성을 지님 존재는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천주께 이러한 영광을 드리니, 왜냐하면 피조물들은 천주님의 완전성의 이미지이며, 이들은 천주님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그래서 천주께 피조물들은 흠숭과 감사와 찬미와 사랑을 드린다. 그러나 천주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끔찍한 고통 가운데 지극히 치욕적인 죽음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세우시고, 비추시고 힘을 주시며 구원하시려는 이 사랑을 증명하셨다. 그리고 설령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천주님을 멸시하고 버린다하더라도 주님은 지금도 모든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천주성을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자 천주님은 자신을 음식으로 주시니....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천주님을 무한히 사랑해야 한다. 그와 반면에, 유한한 피조물로서 우리는 천주께 무한한 영광을 드릴 능력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힘닿는데 까지 가능한 한 많이 천주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Conference for the M.I. in Krakow on September 18, 1919, BMK, pp. 477-478)


 성모기사회(MI)에 있어서... ‘인간의 해부’는 신화라는 말이 따른다. 인간은 그 자신 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단지 인간과 그의 존엄성에 있어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오늘날의 인간 우상화와 인간의 권리, 이 모든 쟁점이 가장 중요한 생각이 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종교 무차별주의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독액이다. 콜베 성인께서 우리시대의 역사를 사셨음을, 그리고 그분이 1919년 알폰스 수사에게 글을 썼을 때를 생각해보자:


여러분들이 천주님의 영광을 고양(高揚)시키기 위해 열정으로 가득 찬 것을 보니 매우 기쁘다. 우리 시대의 가장 커다란 역병은 일반 신자뿐만 아니라, 봉헌된 사제(수도사)들에 떨어진 무관심이다. 그렇지만 천주님은 존경받을 가치, 참으로 가능한 한 최고의 영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분이시다. 천주께서 받으실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데 있어서 무능력한 가난하고 제한적인 우리 피조물은 최소한 천주께 드리는 영광을 가능한 한 많이 드리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Letter to Br. Alphonsus Kolbe, April 21, 1919, BMK, p. 41.)


사람 안에서 모든 사물의 의미를 보게 되는 인간의 현시대 사고(思考) 문화는 전적으로 낯설고 성모기사회(MI) 설립자와는 반대이다. 콜베 신부는 인간 안에서 천주님에 대한 신앙의 결핍을 보게 되고, 도덕적 가치관의 완전한 전도(顚倒)를 보게 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무신론과 죄로 이끈다. 이러한 이유로 기사는 반드시 천주님의 권리를 옹호하고 천주께서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내가 평범하고 소박한 야생 꽃을 볼 때, 어떻게 사람이 이 꽃을 창조하신 분의 존재를 생각 없이 의심하는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누가 이를 설계했으며, 이 꽃 일부 및 모두를 의도적으로 명령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는가? (Article, “The Life of God”, in: P. J. Domański, op. cit. , p. 20.)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발행지에 중요한 내용을, 천주님의 존재, 천주님의 진리와 권리를 입증하는 성모기사회의 사과적인 주제를 할애하였다. 이러한 확신에 찬 이유는 신부님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천주님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이 천주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천주님의 위대하심과 존엄성에 대한 깨우침으로 가득 찬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허망함을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인식하는 것은 천주님의 존엄성으로 다가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다.


모든 가운데 사람이 천주께 다가갈 때, 우리에 있는 모든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천주로부터 온 것이며 우리가 살아있는 매 순간에 천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는 선과 질서 그리고 강건함의 결핍 안에서는 악으로 차 있다. 이 진리를 알고 천주님을 올려다 볼 때에,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받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신 그분은 지극히 사랑하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시면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기꺼이 주시고자 하신다. (RN 4 (1925), p. 226.)


반복해서 콜베 신부는 인간생활에서의 가장 커다란 악은 자신의 힘을 믿고, 사물의 중심으로서 자신을 보는 것이며, 온전히 자신에게만 귀를 기울이고 뱀의 본래 유혹을 쫓는 것이다. 즉 너는 신처럼 되리라. 이러한 영적 교만은 천주님의 존엄성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악이며, 진정한 겸손을 통해서만 치료될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은 모든 영광을 천주께 드리니, 이 겸손은 천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오직 도구로서만 자신을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마리아의 기사는 성모님의 손 안에서 신부이다. 천부님의 모친은 성모님의 작품인 그림을 그리는 적절한 붓을 사용하기 보다는 소박한 신부를 쓰신다. (Letter to Fr. Justin Nazima, Nagasaki, February 21, 1935.)


만약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천주님의 영예를 옹호하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저 천주님의 대의에 대해 손상을 끼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오로지 천주님의 은총을 낭비할 뿐이며 그리고 사실 가치 없는 종일뿐이다.


더구나 기사는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성모님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구나 하며 항상  걱정하였고, 그리하여 자신의 회두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자 간청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아는 것은 열정에 있어서 기사를 조금도 마비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기사는 온전히 자신을 잊고자 하고 또한 천주님의 은총만을 의지하고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그러면 성모님은 그의 몰락, 연약함, 어리석음 그리고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통하여 선을 행한다. (Letter to his confreres in Japan, Shanghai, April 9, 1933)


이러한 방법으로 천주님과 성모님의 영광을 완전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휩싸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이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콜베 신부를 미치광이, 무기력하고 어리석으며 나약한 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주 미친 생각 대문에 동료 수사로부터 조롱받았다. 특히 일본에서의 초창기 전교(傳敎) 시절에 고위 사제로부터 중상비방과 의심으로 인해 힘들어했다. 신부님이 가슴깊이 이 모든 것을 받아드렸음에도, 그의 시야는 항상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모님의 영예를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