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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천주섭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9-13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2부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제2장 천주섭리


만약 초자연적인 신앙이 인간 삶의 기초라면, 만약 천주께서 진정으로 (우리 생활의)중심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계시면, 그러면 인간은 단지 인간이 살아가는 기간에 우리의 미래를 더 이상 생각해선 않거나, 또는 단지 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계획하거나 실행해선 안 된다. 인간의 계획이란 반드시 금방 실패한다. 인간이 바라보고 계획하는 모든 것은 그 이전에 실패하게 되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빛의 아이들보다 이 세상의 아이들이 그들 세대에 있어서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원수들이 자기 마음대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일은 ‘단지 인간’의 요소만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천주섭리의 모든 강력한 힘에 의지하니 이 섭리에 무조건적으로 우리가 신뢰한다. 실제로, 섭리 안에서의 굳건한 믿음은 그가 천주님을 진지하게 정말로 받아드리고 있느냐, 그가 천주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로서 이해하느냐의 검증이 분명하다.


흔히 우리에게는 천주께서 이 세상을 힘차게 지배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 진다. 우리의 제한되고 좁은 마음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반면에 영원하신 지혜는 달리 생각하신다. 천주님의 방법은 이해할 수 없는 심원함이 있고 모두 사례에 있어서 지극히 현명하시니.... 우리가 천주님의 지혜를 고치려한다거나 성신을 인도하려해선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한하신 업적을 이룬 화가의 손에 있는 붓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붓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절대적으로 화가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붓이 제한적이고 세속적인 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주장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영원하신 지혜이시고 천주께서는 당신의 도구로서 우리를 사용하시니, 만일 우리가 모든 일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하게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우리 자신을 맡기면 그러면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RN 11 (1932), p. 133.)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초자연적 관점, 세상의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고,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장벽이자 그리스인에게는 어리석음’인 관점이다. 이는 적의 우세한 힘을 뛰어넘는 성모기사회(MI)의 비밀의 힘이며 승리이다.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의 대부분 생애는 지병이 있었다. 인간의 판단으로 보면 신부님의 일은 이미 실패가 예정되었다. 이는 또한 최소한 그분의 많은 동료 역시 초창기의 같은 생각이기도 하였다. 비록 여러 차례 의사들이 이 세상에서 단지 몇 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은 그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요양원 병상(病床)에서 놀랄만한 글을 남겼다:


우리는 단지 성모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며 그래서 우리는 오직 성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뿐이다. (Letter to his brother, written in Zakopane, December 8, 1920.)


성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성모님은 일하시니, 나의  경우 나의 질병, 모든 것은 성모님의 재산이자 그분이 마음대로 처분하시는 것이다.(Letter to his brother, Zakopane, February 1, 1927)


1922년 그분의 탁월한 종도직(사도직)을 수행한 바로 그 첫 순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성인은 오직 천주섭리에 완전히 의지 하였다. 천주께 그리고 성모님에게 대한 그분의 신뢰는 경계가 없었다. 성모님의 도성을 세울 적에 한 푼도 들지 않았다. 폴란드 니에포칼라나우(Niepokalanów)의 첫 건물이 준비되자마자 신부님은 전교할 준비가 되었고, 그리하여 성모님을 극동지역(일본)의 이교도에게 전할 수 있었다. 일본의 주교는 콜베 신부님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으니, 왜냐하면 신부님이 맨손으로 도착했고 어려운 언어인 일본어 단 한마디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베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모님께서 최고 잘되게끔 모든 일을 정렬해주실 것이다. 만약 성모님이 니에포칼라나우(Niepokalanów)가 지속되고 일본에서도 성장하길 원하시면, 어떠한 악의나 우리의 무력감도 이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할 것이다. 만약 성모님이 원치 않으시면, 그러면 우리도 원하지 않으면 된다. (Letter to Fr. Samuel Rosenbeiger, December 8, 1936.)


전교계획은 세워졌고 극동 모든 지역에서 가장 커다란 단체가 되었다. 그리고 한때, 어려움이 신부님을 압도할 정도로 위협했을 적에 그리고 마음이 의심과 실망과 고통으로 둘러싸일 때 자주 중얼거렸다:

너는 꽉 막혔구나. 왜 걱정하느냐? 결국 네가 인쇄한 것이고 너의 일이 아니냐? 그렇지만 모든 것이 다 성모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러면 성모님께서 친히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돌보실 것이다. 그저 성모님의 인도하심대로 너를 맡겨라. 그러면 나는 즉각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내 심장은 고요해졌다. (Letter to his brother, Zakopane, November 19, 1926.)


물론 이것은 여러분의 손을 무릎에 놓고만 있으란 말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천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전쟁에 던지고 천주님의 의지의 길을 분명히 따르도록 노력해야한다. 이 방법이 최대의 효과와 행동에 있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고 초처럼 이 위해한 명분을 위해 자기 자신을 태우는 것이다.


성모기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인 천주섭리 안에서의 이러한 신뢰는 영적인 가난함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콜베 신부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주님을 무척이나 신뢰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사람들은 가난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은 소유하길 원하고, 자기 물건이길 원한다. 설령 세상의 절반을 가지고 있어도, 그에게 부족할 것이고 그리하여 온 세상을 다 가지려고 한다. 부를 축적하는 데에 바쁘면서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잊고 있다. 예수께서는 부가 아닌 가난을 통하여 위대함과 천국을 얻을 수 있다고 인류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천주성자이신 구세주께서는 황금으로 이루어진 궁궐에 사는 부유한 황제의 아들처럼 오실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러질 않으셨다. 주님은 예속된 땅에, 비록 부모들이 왕족 계열의 후손일지라도 가난한 하급 가정 안에서 이 땅에 오셨다. 손으로 직접 일하시며, 진정으로 가난한 생활, 노동자의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온 생애 기간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종도(사도)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길, “여우도 자기 굴이 있고 새들도 심지어 자신의 무덤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다른 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지적하신다. 우리에게 이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 천주이자 사람이며, 그리고 그분의 방법은 그릇될 리 없다. ....여기 니에포칼라나우(Niepokalanów)에서 우리도 역시 행운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정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둥지가 있으나 인자(人子)는 머리를 뉘일 곳이 없다.” 옷을 빼앗기고 적신으로 죽었다.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퍼뜨리기 위하여 기부를 받는다. 우리를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본도 없거니와 빚도 없다....그래도 결국 배고픈 적이 없다. 성모께서 우리를 돌보신다...세상은 부자들이 복되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되다고 하신다! (Conference given on August 9, 1937.)


이 가난은 마치 자석처럼 행동한다. 사랑의 천주께서는 천주님을 무한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안주실 수가 없다. 결국, 친히 말씀하시길, “들판의 작은 백합화를 보라....하늘에 계신 성부께서는 그들을 보살피신다. 오직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먼저 천주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찾으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이 너에게 더함이라.” 성모기사는 일부러 가난해지길 원한다. 스스로 그는 오직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원한다. 그러나 위대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원한다. 기사(騎士)는 설립자께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린 성모님의 도성에 거주하는 주민을 모방한다.


수리된 옷, 구멍이 난 신발, 팔에 낀 신문뭉치. 그는 영혼 구령을... 하기 위한 그 장소로 급히 가기 위해 최근에 온 비행기를 탑승했다. 우리는 막사 안에 살고 고친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우리 음식을 소박하지만 우리의 인쇄물은 천주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이를 널리 퍼뜨리기 위하여 반드시 최고여야 하며 최신 모델이어야 한다.(Investigation for the cause of beatification, Warsaw, folio 92.)  
 

단 한마디: 이는 마치 기도 봉헌에서 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비용을 치루어’ 성모님께 신심을 키우기 위해. 이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뭔가를 치루도록 해야 한다. 즉 가능한 한 많이 포기하고, 기능한 한 빨리 성모님께 모든 영혼을 구원하도록 해야 한다.


기사(騎士)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수단으로 남아야하며 목적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결극 저 수단들은 기사가 목표를 이루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은 수단 안에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반드시 흔들림 없이 적용하여, 변함없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 목적이란 천주님이며, 많은 일을 통하여 회개하려하는 영혼들이다. 그리고 수단이 부족하다면 천주님은 이를 아시고 수단을 제공하실 것이다. 이 간단한 논리적 필요성은 천주님이 더 많이 필요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고, 인간의 기회는 더 적어진다. 성인께서 직접 목격하셨다:


적들은 넘쳐나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재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누가 저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천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 성모님을 위해 온 세상을 싸워 이기려는 전쟁의 거대한 비용을 그 누가 지출할 수 있을까? 오직 천주섭리라는 밑도 없는 현금상자다!(Letter to the Provincial, Nagasaki, December 9, 1930.)


그러나 오늘날 세계에서 기사가 모든 인간의 기회를 박탈당할 때에, 이 기본적인 계율은 심지어 더 위대한 무게를 지닌다. 매스컴, 여론, 정치와 사업, 문학과 문화, 심지어 교회의 공식적 단체들이 적의 손 안에 들어 있다. 성모님의 충직한 기사는 더 이상 자기 머리를 둘 만한 의지할 곳이 더 이상 없다. 기사는 적의(敵意)에 찬 분위기에서, 어떠한 인간의 도움을 상실한 가운데 살아간다. 그리하여 오직 두 가지 가능성만이 기사에게 남아있다. 절망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천주님께 최선을 다해 신뢰를 할 것인가?
 

이 신뢰는 다른 섬김에 의해 성장한다. 천주님은 그분의 섭리로서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도록 모든 것을 이끄신다. 그 목적이란 영원한 행복이다. 기사는 천주께서 행하신 이 약속과 그의 말씀에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상에서의 생활은 천주님의 확실한 손에 의해 인도되도록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그리하여 가능한 한 빨리 천국에 가는 것이다. 많은 기사들은 성모기사회(MI) 설립자이신 콜베 성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제, 성모님 도성의 최초 형제들, 이들은 글자 그대로 성모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 죽을힘을 다해 몸을 바쳤다. 거룩한 질투감으로 형제 알폰수스(Brother Alphonsus)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길, “행운의 사림이다. 그가 먼저 승리했군!”


이 모든 노력에 대한 영원한 보상 안에서의 이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빛 안에서 역시 죽음을 보게 한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가장 근접한 것은 그들이 우리를 죽일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커다란 섬김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성모님을 위해 온 세상을 이기도록 전적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건물, 책, 기계, 학습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Letter to Niepokalanów, written in Mugenzai no Sono, November 3, 1931.)


신부님은 자주 “천국이 가까이 오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반복해서 그분은 영원한 행복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였다. 천국에서는 어떨까? 그곳은 오직 선함과 무한한 아름다움과 천주님과 행복이 끝없이 펼쳐질 곳이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기 위하여 우리 주변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사물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거리감이 있고 다르며 본래 천국에 있는 것과는 무한히 다르다. 우리 스스로가 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백년이 지나면 우리 모두는 이 지상에서 걷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신부님은 성모기사들이 온 마음을 다하여 천국을 사모하고, ‘아주 빨리’ 천국이 온다는 사실을 묵상하길 원한다. 그러므로 희생을 바치고, 모든 노력과 수고를 견디며, 세상과 세상의 부를 멸시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성모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 전력(全力)을 다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