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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거룩한 성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9-23



티 없으신 성모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2부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제3장 성모기사회(MI)의 생명의 원천 - 거룩한 성체


콜베 신부님이 자주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성모님 외엔 다른 것을 찾지 않았더라도 그 점을 그분이 초자연적인 면이나 신학상의 균형감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라고 추측해선 안 된다. 그와는 반대다. 성모님께 대한 성모기사회의 사랑은 그를 성체 안에 계신 구세주께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요인이다.


여러분에게 한 사례를 주겠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은 1918년 4월 28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주: 교회는 4월 28일 성 루이 미리 그리뇽 드 몽포르트 축일을 기념하는데, 성인은 마리아 공경의 또 다른 위대한 성인이다. 그분의 작품은 성모기사회의 설립자(콜베 신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제직이 갖고 있는 고결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성모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성모님은 신부님을 숨겨진 미사의 거룩한 희생 안으로 초대하였는데 신부님은 날마다 이를 헌신적으로 제헌하였고 성체의 신비에 빠져들었다. 로마에서 학생신분으로서의 수년간 성체에 대한 신부님의 신심은 탁월한 것이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께 대한 신부님의 사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사무치도록 감동을 주었다. 포르타 피아(Porta Pia)외곽의 프란치스코회 수녀원에서 영원한 경배 서약을 하였다. 매시간, 즉 교육 및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제대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성사에 참여하였다. 저녁에는 주로 성당에서 가장 늦게까지 있었다. 신부님의 얼굴은 자주 빛났고 외양적으로도 내부의 열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Fr. Josef Pal O.F.M. Conv. 신부의 증언, in the Padua investigation process, cited in: A. Ricciardi, Maximilien Kolbe, prętre et martyr, Mediaspaul, Paris, 1987, p. 51)


차후에 ‘성모기사회’의 가장 고결한 수녀분이 되신 어느 분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자코펜(Zakopane)의 요양원에서 신부님이 머무시는 동안 알게 되었다:


저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을 보살피는 수녀들이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어요. 미사는 벌써 시작되었지만 사실 저는 조금 분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지 못하던 어느 사제의 미사 봉헌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모습은 즉, 말하자면 나보고 기도하도록 시키는 것이었어요. “거룩한 신부님이 틀림없어...”저는 중얼 거렸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미사 후 오랫동안 감사의 깊은 묵상을 하고 계셨어요. 미사 도중에 그분은 완전히 거룩한 미사에 몰입하셨고 이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바르샤바의 Felicitas Sulatycka 수녀의 증언 cited in: A. Ricciardi, op. cit., pp. 106-107)
 

배나 비행기로 이어지는 수많은 긴 여행기간 동안은 복된 성사를 방문할 수 없기에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질병기간에 그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희생은 미사를 봉헌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항해 도중에 배가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몇 시간 동안에 배가 닻을 내려놓을 때, 막시밀리안 신부는 감실에 게신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가톨릭교회를 찾았다. 성사를 드리기 위한 이러한 방문은 흔히 여러 시간 지속되었다.


수도원에 있는 영혼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세상은 모른다. 성체를 영하는 의미가 그 얼마나 행복한 것이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만약 천신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천신들은 성체 때문에 우리를 분명히 부러워 할 것임은 틀림없다. (“Echo Niepokalanej”, issue dated April 16, 1939, p. 3)


치료를 목적으로 니에샤바(Nieszawa)에서 머무는 동안, 신부님은 개신교 교회 옆으로 자주 걸어갔다.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 목사들의 회두를 위해 기도하고 그 개신교 교회가 가톨릭교회의 집이 되어 성체 안에 계신 구세주께서 밤낮으로 경배되도록 하는 것을 보게끔 너무나 열성적으로 갈망한다고 글을 썼다. (동료형제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신부님이 미사성제를 드릴 당시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그들은 신부님의 얼굴이 너무나 환상적이라 신부님에게서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미사를 드릴 적에 신부님은 제대를 향한 계단 아래에서 대개 무릎을 꿇었다. 막시밀리안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분의 얼굴은 이 세상에 없는 어떤 빛으로 빛났다. 온화함, 헌신과 신심으로 묵상으로 가득 찼다. (Fr. Lukasz Kuszba의 증언. O.F.M. Conv. in the Warsaw investigation, quoted in A. Ricciardi, op. cit., p. 243.)


자랑하고 숨길 수 없던 유일한 고결성은 그분이 가톨릭 사제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수용소 캠프에서의 마지막 생애는 그분의 사제직 수행이 높이 드러났다. 설령 미사봉헌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분이 행한 모든 면에서 그분은 ‘영혼들의 목자’였다. 그분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분의 사목적 열정, 신심, 희생 그리고 희생을 행하는데 있어서 이루어지는 기쁨을 보고 반복하여 찬미하였다. 이러한 기쁨과 헌신의 원천은 그분이 말한 바대로, 복된 성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티 없는 마리아 성심과 예수 성심이었으며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기쁨을 누렸다. 매일 천주님 안에서 일치되어 살았다. 신부님은 모든 이들을 천주님과 천주모친께로 이끌었고 천주 자비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수용소 캠프에 있는 모든 이가 회두하길 원했다. 죄인들과 적들을 위해 부단하게 기도하였다. 할 수만 있다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자신의 배급식량을 주었고 타인 대신에 가장 어려운 일을 감당하였다.(Eyewitness statements in Auschwitz, quoted in A. Ricciardi, op. cit., pp. 333-337)
 

신부님의 가장 높은 부분은 잘 알려져 있다

죄수 한 명이 탈옥했을 때, 10명의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사형수 중 한명이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아, 내 아내와 일곱 아이들이 고아로 남게 되는구나!” 그리고 나서 듣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여러 사람 속에서 한 죄수가 나와 수용소 사령관에게 갔다. 사령관은 외쳤다. “중지! 이 폴란드 백조는 무얼 원하는 거야?” 콜베 신부는 울고 있는 그 죄수를 가르키며 말하길, “사형언도 받은 저 남자 대신에 제가 죽고 싶습니다.” 수용소 사령관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묻기를, “당신 누구야?” 대답이 되돌아오길, “폴란드 사제요.”(See Fr. Władyslaw Kluz, O.C.D., Człowiek XX wieku, św. Maksymilian Kolbe, Niepokalanów 1992, p. 212)


지극히 복된 성사의 기사


나는 자주 구세주께서 성모님 도성 안의 성체 현시대(顯示臺)에서 얼마나 자주 경배 받고 계신가를 꿈을 그려본다. 주님을 경배하는 많은 이들이 매일 우리 잡지 안에 새로 프린트된 복사지의 기도로써, 세상 어느 곳이든지 기사회에 가입한 모든 영혼들이 행하는 것으로써 얼마나 많은 복을 얻는지....(Letter from Mugenzai to Fr. Kornel Czupryk, dated September 8, 1932)


첫 금요일 날 예수성심을 기리는 매달 묵상기도 하는 가운데 수도원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죄와 온 세상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특별한 지향을 하면서 온 종일 동안 구세주를 경배하였다. 콜베 신부는 새해 전야에, 그리고 사순절 이전의 사육제날에, 그날 범하는 천주님을 거스르는 끔찍한 독성을 배상하기 위하여 천주경배에 대한 커다란 중요성을 가졌다. 전 세계를 통하여 성모기사회(M.I.)의 모든 기관은 열정적으로 이러한 관습을 지키고 있다.(See Fr. Albert Wojtczak, O.F.M. Conv., Ojciec Maksymilian Maria Kolbe, Niepokalanów 1981, vol. 2, pp. 60-61)


성사의 현존 안에서 이루어지는 배상, 보상, 보속.....이 모든 것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일이 파티마의 발현과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지 증명하고 있다. 영성체 배상, 천신의 기도, 이 안에서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 계신,’ 또한  파티마 발현 중 천주의 모친께서 아이들에게 천주의 빛 (“오 나의 천주여, 제대의 복된 성사 안에 계신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을 보여 주실 때, 어린 시현자의 애타는 기도 안에서 구세주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러한 일치는 복된 성사와 관련하여 우리가 성모님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파티마에서 우리 안과 우리를 통하여 구세주께서 공격 받으시는 저 끔찍한 모욕에 대한 용서를 청하시고, 영혼들이 천주께로, 그분의 은총으로, 그분의 성체 사랑으로 이끄시는 분은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라는 것은 훨씬 더 분명해진다.


성모님께 전적으로 속하고자 하는 사람 누구든지 그가 성사 안에 계신 구세주를 방문할 때, 오직 “마리아” 기도로 통할 때, 분명히 그분의 경배를 성모님께 맡기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런 방법이 우리 주 예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모님은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보다 이 방문에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할 것이다. 이것이 성체를 받는 데에 보다 준비가 잘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성모님이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도록 성체를 받을 때에 전적으로 성모님께 의탁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가장 커다란 사랑을 보여드리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Pisma o. Maksymiliana Kolbe [Writings of Fr. M.K.], vol. III, p. 272.)


이와 비슷하게 콜베 신부님은 수사들의 경배 순서가 되기 전에 교회 높은 제대위에, 성체현시대 아래에 성모상을 놓고 이를 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분명히 드러냈다. 어떤 이가 성당에 들어갔을 때, 그 분위기는 마치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그리하여 구세주를 경배하게 하고 성모님의 얼굴을 묵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이유이다. 즉 가능한 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저들을 성화시키며, 저들을 성모님을 통하여 구세주로 인도하는 것이다. (Letter from Mugenzai to Fr. Koziura dated May 17, 1934.)

St. Maximilian exhorts every Knight:


성 막시밀리안은 모든 기사들에게 권한다.:
온 마음을 다하여 성모님을 사랑하고 애절한 기도로 성모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성모님은 여러분이 구세주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가르쳐 주실 것이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제대(祭臺)의 복된 성사(聖事) 안에서 끝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보여주실 것이다.(Pisma o. Maksymiliana Kolbe, vol. IV, p. 63.)


신부님은 성체 안에 계신 구세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찬 모든 기사들을 보고자 한다. 그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 얼마나 열정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지, 내게 가까이 다가오시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당신께서는 천국의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빛으로서 이 더럽고 비참한 세상에 오신 것을, 가난과 역경과 고통 가운데 당신의 생애를 보내셨음을, 최종적으로는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멸시받으며, 조롱받고, 부끄러운 교수대 위에서 두 도둑 사이에서 모든 고통을 당하셨음을.... 이 끔찍한 방법으로 성화시킴으로써 당신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오 사랑의 천주여! 그 누가 이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당신께서 당신의 커다란 사랑의 증거를 부어주실 그때부터 보고 계셨으니, 이는 내가 이 땅에 나오기 전 이미 19세기가 지나갔음이라. 당신의 마음은 내가 그대의 커다란 사랑에 대한 기억에 관해 숭고하게 나 자신을 부양해야한다는 이 생각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니. 당신은 이 작은 이 땅 위에서, 제대의 복된 성사 안에서 남아계서서 오시고 당신과 저와 일치하시나이다. 참으로 음식의 형태로... 그리고 주님 당신의 성혈은 내 정맥으로 흐르고, 오 강생하신 천주 당신의 영혼은 내 영혼에 스며들고 강화시키고 내 영혼을 부요케하나이다. 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 그 누구 이를 상상할 수 있으리요? 당신께서 제게 주신 것, 오 천주여, 당신이 나의 소유물 된 것 그 이상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 있으리요?(RN 8 (1929), p.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