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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한한 영광을 가진 천지의 모후입니다 - 마리안 피정 제1일②(10.2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15






무한한 영광을 가진 천지의 모후입니다 - 마리안 피정 제1일②(2016.10.28)



만약, 우리가  성모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한다면 먼저 성모상이나 성모님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모상이나 성모님의 그림은 단지 아름다운 여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루르드의 벨라뎃타 성녀는 성모님의 그림을 보이면서 “이런 분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성모님은 “전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모님의 참모습과 비교한다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모님을 본 여러 성인성녀는 성모상과 그림으로써 성모님을 설명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본모습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2가지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위험은 성모님을 우리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성모님은 우리의 가장 최고한 어머니이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좋은 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이십니다. 우리를 더 친애하는 어머니는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에 대한 사랑의 신심 역사를 보면 성모님은 우리가 가장 친근하게 당신을 부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께서는 성모님을 마무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폴란드어이지만 한국어로 말하자면 어린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어머니는 사실은 영광스러운 모후시오, 여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콜베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첫째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우리보다 더 “높은 지위에 계시는 분이심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임마굴라타, 하자 없으신 성모님을 생각하며 묵상할 때, 우리가 생활하시는 분께로 가까이 간다는 것임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생활하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죄와 분리되며 하자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모니에게 기도할 때는 성모상과 그림으로써 성모님을 묵상할 것이 아니라 생활하시는 성모님을 묵상하십시오. 성모님은 살아계십니다. 성모님은 사랑으로써 태우시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 성모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에 계시면서도 바로 우리 앞에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나를 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강하게 성모님 여기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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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우리가 성모상과  성모님의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는 성모님이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서 우리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모님이 우리에게 손을 열어 보이실 때는 우리가 닫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모님과 똑같이 우리도 성모님에게 잘해야 하는 제1포인트입니다.


성모님은 살아계시고 우리 앞에 계십니다. 낮이나 밤이나 살아계신 성모님의 자비로우신 눈이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그때 성모님이 하늘에서 오시는 것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항상 끝없이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계십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문제를 다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강한 동정녀이신 성모님은  당신이 가지신 모든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잠자고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아기는 엄마가 옆에 있으면 잠을 잘 잡니다. 아기는  일어나면 바로,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찾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본다면 ‘엄마’ 합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모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시는지 봅시다. 첫째 우리가 성모님이 항상 더불어 계신 것을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는 성모님이 정말 누구이신가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모님이 왜 그렇게 위대하신가 하면 성모님은 천주의 모친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주의 모친, 천주의 성모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성모님의 참모습은  모릅니다. 물론 성모님은 천주께서 하신 가장 최고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주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2의 위험은 천주성부는 좋은 할아버지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남자요, 천주성신은 아름다운 비둘기요, 이것이 삼위일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도(사도)신경을 기도할 때 “천지를 조성하신 천주 성부를 믿는다.” 라고 하잖아요, 천주께서는 천지를 조성하신 자,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다 조성하신 분이십니다. 천주께서 볼 수 없는 세계를 참섭하신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우리는 각각 호수천신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옆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각각 호수천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가 호수천신에 대해서 하나도 모릅니다. 현재 생활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호수천신들이 계십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도 각각 다른 호수천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상 시작부터 지금까지 몇 억만년 세상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 세상 끝까지는 몇 년도 정도까지 걸릴까요? 오직 천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이들이 별도로 호수천신을 가지실 겁니다.


그런데 호수천신들은 천신들의 9단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입니다. 호수 천신 위에 대천신들이 계십니다. 그 위에 제자 천신, 그 위에 주의 천신,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높은 케루핌과 세라핌 천신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었던 그리고 있을 수 있는 모든 인류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천신들이 있습니다. 묵시록에 따르면 우리는 계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천신들의 가장 높은 천신으로서 루시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시퍼가 악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성 미카엘 대천신이 계십니다.


가령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이 한 명 뿐이고 모든 이들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임금 앞에 모든 이가 명을 듣고 순명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그런 임금이 있다 하더라도 대천신 미카엘에 비교한다면 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카엘 대천신 및 모든 천신, 그리고 모든 성인성녀를 다 합해도 성모님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다 공경합니다. 성 가브리엘 대천신이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한 것처럼 모든 천신들과 모든 성인성녀들이 무릎을 꿇고 성모님 앞에서 순명합니다. “영원히 명예와 찬미가 있어지어다.” 라고 성모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면 성모님 당산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상상 할수 없을 정도로 영광을 가지신 모후이십니다. 대천신 미카엘, 모든 천신들의 왕인 성 미카엘도 성모님에 비교한다면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은 성모님을 대해 이야기 할 때 옆에 큰 공경을 가지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 자신을 바칠 때 “오 천지의 모후여, 하자 없으신 성모여!” 이런 것은 책으로써 배울 수 없습니다. 책은 여러 가지 설명을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진짜를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성모님을 알고 싶다면 책보다 무릎을 꿇고 배워야 한다.”고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이 말씀합니다. “기도로써 성모님을 배운다.”라는 것은 우리 지성에 기대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지성을 써야 합니다. 성모님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슈텔린 신부님, 성모님에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리로써 다 배웠습니다. 다른 것을 이야기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콜베 신부님은 우리 지성은 너무 약하다고 합니다. 성모님을 알기 위해  지성과 논리만 쓴다면 성모님을 결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콜베 신부님에 따르면 “항상 계속하는 기도만이 우리가 성모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가장 순수한 분으로 너무 불순한 우리를 성모님에 비교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성모님을 하나도 알 수 없다고 모든 성인성녀들이 말씀합니다. 겸손한 성모님의 신비는 교만한 마음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성모님의 신비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가치가 없는 자라고 인정하고 성모님께 특별한 자비를 구한다면, 더욱더 겸손하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씩 성모님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성모님은 반드시 당신의 신비를 열어주시고 우리가 성모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알고 싶으면 가장 큰 공경을 가지면서 가까이 가야 합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으로서 보여야 합니다. 나쁜 태도로써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나쁜 태도는 성모님이 여기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모님께 침대 속에서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침대에서도 여러 모습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것도 무릎을 꿇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도로써 성모님을 어떻게 공경하는가를 보여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과 영혼도 성모님 앞에서 가장 낮게 해야 합니다 천신들과 성인성녀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모님이 서 계신 땅에 친구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는 우리가 성모님을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럼요, 신부님 무슨 질문을 하십니까?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합니다. 아닙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 그리뇽 몽포로의 말씀을 예로 듭니다. 여러분은 성모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가장 좋은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계시는 모든 착한 훌륭한 어머니를 다 합하여 보십시오. 이 세상 시작부터 끝까지 있을 수 있는 모든 좋은 어머니는 몇 명 있을까요?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수한 모든 선한 어머니의 마음을 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아보십시오. 그런데 그 어머니들 각자는 사랑하는 애들이 있지요. 그런 어머니가 가진 아기의 사랑을 다 모아서 한 아기에게 주십시오. 그러나 이런 사랑도 성모님의 사랑에 비교한다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는 매우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성녀 모니카는 아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18년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녀 모니카도 수많은 어머니의 하나에 속합니다, 성녀 모니카처럼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다 합하십시오.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사랑하는 무수한 마음을 다 합한 것이 성모님의 마음이며 우리에 대한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릅니다. 성모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지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성총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는 성모님은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진짜 어떤 어머니이신가는  1% 이하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이 누구신가를  더 알고 싶다고 원하면 원할수록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묵주기도를 더욱 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루르드의 성모님과 파티마 성모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성모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칼 슈텔린 신부

(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장, 성모기사회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