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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 없으신 마리아,우리의 이상(理想)-제 6부 마지막 시대의 성모님 역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2-14


티 없으신 마리아, 우리의 이상(理想)

 

제 6부 마지막 시대의 성모님 역활


반복하건대, 마치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은 그 당시 시대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대를 위해 성모기사회를 설립한 것처럼 성모기사회가 우리 시대에 너무나 분명히 잘 들어맞는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많은 성인들은 마지막 시대에서는 마리아의 특별한 역할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증거를 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모든 마리아의 운동이 이 마지막 시대의 정점에 모아지고 있음인데, 묵시록에서 여인과 용과의 거대한 전쟁으로서 묘사된다.


그러므로 천주님의 구령사업이라는 전반적인 계획 안에서 성모기사회의 중요성을 조사하는 것은 가치가 있으니,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최종의, 마지막 세상 역사의 끔찍한 시대는 ‘하늘에서의 커다란 표징’, 즉 성모님의 표징에 의해 특징되어지고자 원하시기 때문이다.(제 1장)

 

이 점에서,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와 더불어, (이 메시지는 또한 완성이니) 성모기사회 (M.I)에 순응하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관심이 될 만하다. (제 2장)


이 마지막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대 배교(great apostasy)’가 심지어 공식적인 성모기사회 고위층에 이르기까지 침투했고, 파티마에 책임 있는 자들과 다른 커다란 발현에 관련된 장소와 또는 마리아에 관한 운동들이 진리에서 멀어졌고, 마리아에 관한 메시지와 위대성을 희화화시키는 슬픈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충직한 자녀의 의무는 모든 어머니 중 최고이신 성모님의 진실한 얼굴이 다시 비추도록, 그리하여 성모님의 진짜 메시지가 알려지고 전파되며 살아 있게 함이다. 이는 또한 전통적인 성모기사회 의식에 따라 성모님의 기사직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제 3장)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고려사항들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성모기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마리아에 관한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설립자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성모님의 깃발 아래 충직한 가톨릭 신자들을 군인으로서 최종 전쟁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제 4장)


마지막 시대에서의 성모님의 중요성


주님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성모님께 부여하신 특별한 역할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성모님과 성모님의 사명 (마리아론)에 관한 가툴릭 교리의 특이한 발달을 주목해야 하는데, 그와 반면에, 성모님은 교회에 의하여 면밀히 조사되고 진짜로 선언된 여러 발현에서 점점 더 자주 간섭을 하신다. 그와 동시에 교회는 소위 마리아에 관련된 성인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그 성인들의 삶, 저술 그리고 행동들은 천주모친의 특별한 간섭으로 오로지 설명되니 이 성인들은 교회역사에서 지극히 놀라운 사업을 이루는데 있어서의 성모님의 도구로서 성모님을 섬기는 분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은 점점 더 성장되었고 성인과 같은 삶의 열매를 가져다 주었으며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악, 이단, 도덕성의 결핍 또는 심지어 신이 없는 정권에 저항하여 결정적인 전쟁에 대비한 힘을 실어 주었다.

 

마리아론의 발달


초창기 교회에서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매우 생동감이 있었는데, 교부들의 작품에서 오는 수많은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벌써 2세기만 하더라도 성 유스티노(155년경 유대인 Trypho와의 대화,(J. P. Migne, Patrologiæ cursus completus: Series græca, Paris 1857 (henceforth: MG), 6, 713. M. J. Rouet de Journel, Enchiridion Patristicum, selection를 또한 보라)


그리고 성 이레네우스 Adversus hæreses 3, 22, 4 (170년경)에서는 성모님이 새 아담인 예수와 함께 영혼 구령에 협력하는 새 에와(이브)임을 가르쳤다. 교회 교부들 가운데 참으로 위대한 교부인 성 에프라임,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콘스탄티노플의 게르마누스와 요한 다마스세네는 성모님을 티없이 잉태되신 동정녀로서 섬겼다. 너무나 자주 교회 교부들은 마리아를 천주님을 품은 Theotokos(천주의 모친)로서 칭송하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는 최초 마리아 교리를 선언하였다: “만약 누구든지 천주님이 진정으로 임마누엘(천주께서 함께하심)이시며 이런 이유로 거룩한 동정녀는 천주의 모친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자는 파문(저주)이 있을지어다.”(Denzinger-Schoenmetzer,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henceforth: DS), no. 252, Freiburg 1965.)


교회 교부들의 마리아에 대한 영성은 동방교회 전례에서도 매우 심오하게 보존되어왔다. Akathistos (standing의 뜻) 찬미가는 천주의 모친(Theotokos)를 경배한 가운데 오래된 연도(連禱)이고 이는 마리아의 숭고함과 위대한 모두를 하나하나 묘사하고 있다.


13세기에 로사리오(묵주) 도입을 통하여 마리아의 신심은 새로워진 추진력을 받았는데 전통에서 옹호하는 이 묵주기도는 성 도미니코 성인이 천주의 모친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더욱이 1251년 갈멜회 개혁자인 복자 시몬 스톡은 갈멜산 성모님의 스카플라를 천주의 모친으로부터 받았다. 이것은 축약된 관습으로서 이 스카플라를 착용하면 많은 은총이 붙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커다란 은총은 “이 스카플라를 항시 착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으면 지옥의 불로부터 보호될 것이다.” 특히 프란치스코의 신학적 전통은 마리아의 무염시잉태의 신비를 연구하고 전하는데 열심이었다.

 

19세기 되고 나서야 마리아론의 발달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의 칙서(The Bull Ineffabilis Deus.( DS 2803.of Christ.)에서 성모무염시잉모태의 교리 선언을 통하여 그 완전한 중요성을 얻게 된다. 이 교리를 바탕으로 신학자들은 마리아의 영적인 모친에 관한 교리를 확대하였고, 성 비오 10세 교황은 교령 Ad diem illum에서 글을 쓰기를; 주님의 모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는 지식에 이르는 길을 따르는 안내나 가르침을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강력한 연대를 설정하는 자는 없다. 아무도 주님의 모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이는 없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뛰어나게 지식의 길을 인도하거나 교사가 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강력한 결합을 세워주는 이는 없다….그러므로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도 되신다. 유일하고도 완전히 순수한 모친의 같은 태중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육신을 취하셨고 또한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로 구성된 영적인 몸을 일치시켰다. ….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하는 자들이며, 성인께서 말씀(에페소5:30)하신 것 같이 머리(예수)와 일치를 이룬 몸인 마리아의 태중으로부터 나온 일원이다. (55 DS 3370.)


성모무염시잉모태 교리에 대한 심화적인 결과는 마리아 성심에 대한 신심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교회 전례력에서 높은 축일(2급)로서 성모님의 이 축일을 포함시켰고 또한 칙서(Mystici Corporis Christi)의 결론 부분에서 모든 인간은 마리아의 하자 없는 성심을 경모하도록 축성하였다. 레오 13세(칙서 Encyclical Octobri 중간 부분에서), 비오 12세(마리아의 보편적 여왕권에 관한 칙서, Ad cæli Reginam9)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서 마리아를 언급한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은 종도헌장 Munificentissimus Deus에서 몸과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마리아 몽소승천교리를 선언하였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는 기간에 중앙 위원회는 600개 이상이 되는 vota(공의회에 의해 다루어질 제안서나 권고안)을 받아드렸고 다음에 있을 공의회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선언해야 한다는 청원이 있었다. 311개의 토의 안건은 마리아의 보편적인 은총의 중재자에 대한 교리 선언을 요구하였다. 예를 들어 공동구속자로서의 마리아에 관한 교리 규정 등이다.(Analyticus conspectus consiliorum et votorum quæ ab episcopis et prælatis data sunt, vol. I, Rome 1960.)

 

‘새로운 신학’(The nouvelle théologie)과 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은 천주의 모친에 관한 발전에 있어서 죽음의 타격이었다. 비 그리스도인과의 종교 간의 대화는 더 이상 마리아에 대한 배려는 없었고, 마리아의 교리는 개신교인과의 에큐메니즘에 있어서 끔찍한 장벽이었다. 여러분은 중얼거릴지 모른다. 최소한 동방정교회와의 접촉에 있어서 천주의 모친에 관한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많은 장벽을 만난다. 결국 동방 정교회는 최초 7개 에큐메니칼 공의회 이후 선언된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마리아론에 저항하는 이러한 결과로서 그 위험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은 교리적 기반으로부터 점점 더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고 주관적 감상주의로 표류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많은 이들이 거짓 및 심지어 이단 경향을 띠는 ‘발현’(올라우 또는 메쥬고리예)를 쫓아 따라간다.


위대한 마리아 발현


천주의 모친에 관한 가톨릭 가르침이 잘 만들어졌기에, 이에 따라 마리아는 더 자주 그리고 숭고하게 마리아의 자녀들에게 나타나셨다. 교회 역사에서 이러한 발현들은 항상 있었고, 그 발현의 주요 목적은 마리아의 환시에 관한 개인적인 관련에 또는 특정한 명령에 대한 메시지, 믿는 이들의 어는 나라나 제한된 단체에 관한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 세계적인 중요성에 관한 커다란 발현은 현대 세계에 들어서야 일어났다. 천주님의 권리와 교회의 권리를 침해하는 지상에서의 맹렬한 전쟁이 점점 더 커지고, 물질주의와 자유주의라는 프리메이슨 정신이 더 퍼져가면서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임박한 위험에 준비하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천주의 모친 발현도 더 자주 생긴다.

 

과달루페(1531): 서부 유럽에서 대략 8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개신교의 이단으로 인하여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때, 천주의 모친은 1531년 12월 9, 10, 12일에 멕시코 Tepeyac 언덕 위에서 성 쥬안 디에고 (Saint Juan Diego)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그곳에 성당이 세워지길 요청하셨고 그곳에서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녀 모두에게 나의 자비와 도움 그리고 사랑을 입증하겠다.” 하셨다. 발현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성모님에서 온 표시를 주교가 요구했을 때, 마리아의 기적의 모습이 쥬안 디에고 옷에 새겨졌는데, 그곳에서는 발현 당시에 천주의 모친께서 그에게 주신 장미를 모으는 모습이었다. 그 기적의 모습은 과달루페에서 마리아 신심의 중요 작품이었다. 멕시코 대성당의 기록물에는 과달루페 성모의 호소를 통해 일어난 수천 개의 기적에 관한 설명과 증언들이 있다. 발현 전에는 전교에 온갖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극소수의 개종만이 있었다. 기적적인 모습에 대한 신심이 결과로서, 이 모습은 인디안의 우상을 이긴 마리아 승리의 표시로서 인디안들의 모습으로 인정되는데.. 아주 짧은 기간에 천만 명 이상을 개종시켰다. (O. Anticolli, S.J., La virgen del Tepeyac: Compendio Historico-Critico, p. 45.)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남미의 모든 이들이 가톨릭 신자들이 되었다. 


기적의 메달(1830): 프랑스 혁명의 한 가지 결과는 유럽 모든 나라에서 그리스도 문명의 사회질서의 후퇴가 진행되었다. 1830년 새로운 혁명(파리 코뮨)이 프랑스 수도에서 타올랐는데, 이것은 이어서 나오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전령으로서 설명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즉, 파리에서 천주님의 모친이 루 드 백(Rue de Bac)의 자비의 [빈센트] 딸이라는 수도원 성당에서 갓 수녀가 된 카타리나 라보르(Catherine Labouré) 앞에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천주님을 거부하고 대죄를 짓는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의 죄를 위해 보속으로 기도와 희생을 요청하셨다. 두 번째 발현 했을 때, 카타리나는 성모님 주변에서 완전히 빛의 형태로 조성된 둥근 형체를 보았고 바로 그 위에 황금색 글자로 반원의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았다:”오,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소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카타리나 수녀에게 명령하셨다. “이 모습에 따라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착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은총을 받을 것이다. 신뢰를 가지고 이것을 착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많은 어려움 끝에 최초의 메달이 1832년 제작되었다. 이것을 기적의 메달이라고 부르니, 왜냐하면 만들어진 후 바로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회두와 치료 그리고 초자연적인 도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See: Werner Durrer, Der Siegeszug der Wunderbaren Medaille, Jestetten 1993.)


라 살레트(1846년):'교회는 교회 안에서만(Lock religion up in the scacristy)’: 이 구호로 인하여 모든 (신앙인의) 공적인 생활은 세속화 되었다. (역자 주: 이 프리메이슨의 구호는 오직 교회 내부에서만 가톨릭교회의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가톨릭교회는 반드시 교회 내부에서만 있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오직 성당 안에서만 머물러야만 한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공적인 사회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프리메이슨의 지침) 즉 더 이상 그리스도는 공적인 사회와 정부시설을 더 이상 통치하지 못하게 되었다. 국가의 새로운 헌법은 천주님의 계명에 더 이상 기반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 혁명 당시에 선언된 인권에 바탕을 두었다. 보통 사람들에 있어서 이 세속화의 눈에 보이는 표시는 가톨릭인들의 공적인 생활과 관련된 교회 가르침에 대한 억압이었다. 교회 내부에서 (특히 프랑스) 자유주의적 가톨릭 정신이 피워 올랐고, 이것이 사제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과 혁명의 원리와의 화해가 시도되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의 칙서(Mirari vos)에 의해서 자유주의 가톨릭 원리를 견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유럽과 북미로 퍼졌다. 이것이 현대주의의 시작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 천주의 모친께서는 프랑스에서 다시 나타나셨는데, 1864년 9월 19일 이때에 라 살레트에서 멜라니와 막시민이라는 두 아이에게 모습을 보이셨다. 이 메시지는 ‘천주모친의 묵시록’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라 살레트 메시지는 마지막 때와 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방법으로 성모님은 국가들의 배교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의 이탈과 배교를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기도와 보속을 요청하셨다.


루르드(1858년): 18번의 발현에서 천주의 모친은 시현자 베르나데트에게 영적 생활에 대한 모든 계획을 가르쳐주셨는데, 이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 생활에서 지침서로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내가 너에게 행복을 약속하지만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음 세상(천국)에서 행복을 약속하마.”라고 마리아는 루르드에서 2월 18일 말씀하셨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여라.”(2월 25일) “나는 하자 없는 무염시잉모태이다.”(3월 25일)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에 따르면, 이것은 마리아의 내적 생활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계시한 것이라 한다. 루르드에서 성모님은 마지막 시대에 성모님의 사명에 대해 영적 그리고 신학적인 기반을 계시하셨다. “인간의 목적이란 성부와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천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라고 성인은 말씀하신다.


파티마(1917년): 이 해는 아마 무신론의 극치(極致)와 승리로 목격될 것이다. 동쪽(러시아)에서는 무신론적인 공산주의가 들어섰으며 서 유럽에서는 프리메이슨들이 가톨릭교회에 의해 나타난 구질서를 이긴 승리로서 20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였다. 같은 해(1917년)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발현하셨는데, 이것은 지난 세기에 있었던 모든 마리아 운동의 정점이었다.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을 퍼뜨림으로써 교회는 마리아에 관한 모든 의미를 밝혀주어야 하고, 성모님이 모든 은총의 중재자임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그리고 권위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1917년 7월 13일, 그 아이들은 지옥과 수많은 영혼들이 영원한 저주인 지옥으로 가고 있음을 환시를 통해 보게 된다. “저들을 구하기 위하여 천주님은 온 세상에 나의 하자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이 퍼지길 바라신다.”(루시아 수녀가 파티마에 관하여 말하다. 파티마 1989년)


공산주의와 프리메이슨을 통한 세상에서의 사탄의 승리에 직면하여, 천주의 모친은 인류에게 마지막 구명밧줄로서 다시 자신 자신을 주신다. 이 최종 희망은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이니, 이는 세상에 대한 특히 러시아가 성모성심께 봉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티마의 제 3비밀과 이 발행물에 대한 의혹에 관해서 다음을 보라:
베르나르 필레 주교의 Das dritte Geheimnis von Fatima, in: “Mitteilungsblatt der Priesterbruderschaft St. Pius X” [Newsletter of the FSSPX ], No. 260, pp. 9-14; M. Cesanek, 제 3비밀에 관한 두 개의 원본이 있는가?: “Fatima Crusader”, Summer 2000, pp. 3-15; Brother François de Marie des Anges, Fatima – Joie intime, événement mondial [F. – secret joy, world event], Saint-Parrès-les-Vaudes, 1991, p. 291; Mark Fellows, Fatima in Twilight, Niagara Falls, 2003, pp. 269-280.)


파티마의 제 3비밀은 배교와 현대주의를 통한 교회 내부에서의 사탄의 승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어서 이 시기는 가장 어려운 시기이며, 교회의 신비적 순교의 시기이고, 하나의 안전한 피난처가 있음이니, 그것이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다. 파티마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천주님은 7만 명의 사람들이 1917년 10월 13일 태양의 기적을 보게 하셨다. 파티마 이후 이듬해로부터 수십 년 간 마리아 운동이 교회 온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마리아에 관련된 성인들


모든 성인들이 마리아에 대한 위대한 신심가였다는 사실은 여하간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리아의 성인들’에 관하여 말할 때는 이 성인들은 특이한 방법으로 천주모친에 대한 모든 사업에 자신을 바쳤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 가운데는 시리아의 성 에프림(5세기), 클레보르의 성 베르나르(12세기), 그리고 최근에 와서 성 루이 마리 드 몽포르, 성 요한 베르크만스, 성 알폰수스 리구오리, 성 카타리나 라보르, 성 베르나레타 수비루, 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가 있다. 이 분들 외에도 라 살레트 시현자인 멜라니 칼바, 마리아회 설립자인 시복자 윌리암 죠셉 샤미나드, 그리고 파티마 시현자인 복자 야친타, 복자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같은 성인과 같은 수많은 개인들이 있다. 
 

이러한 매우 다른 성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마리아의 종으로서(알폰수스 리구오리와 요한 베르크만스), 마리아의 노예로서(루이 마리 드 몽포르), 성모님의 자산(막시밀리안 콜베)이나 성모님의 대의명분(Père Chaminade) 등 마리아에 대한 무조건적인 완전한 봉헌을 바쳤다. 이 목적을 실현하도록 성인들은 영웅적인 모습에 이르도록 덕행을 키웠다.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모든 희생을 바쳤고 천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을 바쳤으며 천주님의 위엄을 상하게 하는 인류의 헤아릴 수 없는 죄에 대한 보속을 하였다. 그와 동시에 영혼구령에 대한 열정은 증가한다. 영원한 저주의 위험으로부터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이러한 열망은 위대한 전교 사업계획, 사제회 그리고 교회 건축, 수도원, 순례지, 또는 천주의 모친을 섬기는 가운데 행해지는 매스컴과 같은 눈에 보이는 행위를 일으키는 뿌리이다.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신심


교회생활은 항상 천주의 모친께 드리는 특별한 존경으로 이루어졌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상경지례(하이퍼둘리아)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심이 항상 사람들이 영적이나 물질적 위험에 위협받을 때 보다 강렬했다는 것을 쉽게 확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비파와 카타리파의 이단을 이길 힘은 인간에게 없을 때, 성 도미니크는 사람들에게 묵주기도를 가르쳤고, 그러니 백 년 이내에 두 이단들은 사라졌다. 유럽이 터키에 의해 위협받게 되었을 때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 소규모의 가톨릭 군대는 레판토(1571)에서 술탄의 훨씬 강력한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왜냐하면 성 비오 5세 교황은 첫 번째 영적인 십자군, 로사리오 십자군을 모든 신자들에게 선언하였다. 그런 이유로 교황은 이 승리의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전례력에 로사리오 성모의 축일을 도입하였다. 비엔나 시 입구에서 같은 일이 1683년에 반복되었다. 그와 동시에 터키 군대를 물리친 얀 소비에스키 왕의 승리에 대한 고마움으로 교황 인노센트 11세는 마리아성명축일을 발족시켰다. 결과적으로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저들의 백성과 땅을 천주모친의 보호 아래 두었다. 성모님은 저들의 여왕, 귀부인, 황후 그리고 총사령관으로 존경받았다. 

 

같은 방법으로, 세계 전역에 많은 마리아 성당이 있게 되고, 그곳을 방문하는 대규모의 순례자들이 행렬이 있으며, 성모님을 저들의 영적인 어머니, 여왕으로 그리고 성모님의 신뢰를 둔 가톨릭인들의 깊은 애착을 증언하고 있다.


마리아 운동이 20세기 첫 60년간에는 결코 강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두 개의 세계대전이라는 배경에 비추어 보면, 세상 거의 절반을 공산주의 지배와 물질주의, 이단의 전파를 보았을 때 교회생활의 천주모친의 역할이란 지독한 암흑의 한 가운데서 태양처럼 빛난다. 여기 몇 가지 사례가 있다.


파티마의 발현이 있은 후, 얼마 있다가 포르투갈은 나라를 불행과 파탄으로 떨어뜨린 프리메이슨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살라자르와 그의 가톨릭 정부는 포르투갈 주교들과 함께 파티마에 의해 영향 받은 독실한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 국가를 마리아께 봉헌하여 안전을 유지시키고 그리하여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화를 면했다. (C. Barthas, Fatima, merveille inouie [Fatima, an unheard-of miracle], Fatima editions 1942, pp. 325-327.)

 

1942년 동정녀 성상의 순례여행이 시작되었다. 모든 교구 그리고 가톨릭 관련 단체들은 하자 없는 마리아 성심께 자신들을 봉헌하였다. (1943-1948년 동안 프랑스에만 해도 대략 16000개 교구가 이었다) 로마 신앙전교 성성의 통계에 의하면 분명히 이 기간 동안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하는 엄청난 숫자를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년 간 10만 명 이상, 영국에서는 매년 1만 오천 명, 전교지역에서는 수백만의 이교도들이 성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