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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 라틴어 미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8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 라틴어 미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통미사란 무엇인가? 전통미사가 어째서 그리도 좋은가? 현대의 새미사는 어째서 안 되는가? 전통미사란 기록이 남아 있는 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바쳐져 오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식 형태로서, 로마 예식의 라틴어 미사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전통미사에 대해서 “무수한 신자들이 그것을 통하여 천주님께 대한 영혼의 경건성을 풍성히 보양시켜 왔다.“ 라고 말한바 있다.


 종도좌 헌장(Missale Romanum)에 의하면, 미사의 까논(전문)은 미사에서 특히나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전통미사의 까논은 이미 성 그레고리오 시대 (재위 590~604)에 완성되어 적어도 1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한 트리덴틴 공의회에서는 이 까논에 대하여 어떤 이단 및 오류와도 섞이지 않았다고 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높이 선언했을 정도로 완전히 가톨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밖의 부분을 보면 순수한 가톨릭 신앙의 숨결로써 봉헌의 부분이 점차로 완성되어 이미 11세기에 시작으로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완벽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전통을 추인하기라도 하는 양, 전통미사는 1570년에 성 비오 5세의 칙령 꾸오 쁘리뭄(Quo Primum)으로써 신성하게 선포된다. 신성하게 선포되었다 함은 교황이 무류지권(無謬之權)을 행사하여 신성한 것으로 정하고 법전화 시켰음을 말한다. 성 비오 5세께서 전통미사를 신성하다고 선언한 것은, 예전에 사용되었다가 오래 동안 사용되지 않아서 잊고 있던 미사를 다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전례 위원회’를 만들어서 ‘미사’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자유로이, 합법적으로, 양심의 가책이나 벌 그리고 판결이나 질책을 받으리라는 두려움 없이 이 미사를 영구히 바쳐야 하는 의무가, 성 비오 5세의 칙령에 의거하여 엄격하게 규정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성 비오 5세께서는 어떤 사제라도 이 전통미사를 바칠 수 있다는 항구한 특허, 특전, 허가를 내렸다.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미사를 합법적으로 폐지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1995년에 슈티클러 추기경이 이를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슈티클러 추기경에 의하면, 1986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9명의 추기경을 임명하여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 위원회에서 교황 앞에서 만장일치로, 어떤 주교에게도 어떤 교회 당국에도 “가톨릭 사제가 트리덴틴 미사를 바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권한”이 없음, 그리고 장차 어떤 교황도 “성 비오 5세께서 이 미사는 종말이 올 때 까지 유효하다고 장엄하게 선포한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전통 미사를 금지하지 못함을 선언하였다. 돔 게랑거라는 소렘의 분도회 대수도원장은 트리덴틴 미사의 모든 전례를 “힘과 장엄함에 있어서 최고 단계에 있는 전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막상 새미사가 발표되었던 1969년,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밧찌이 추기경과 공동으로 그 미사를 자세히 연구한 후에 교황 바오로 6세에게 편지를 썼다. 추기경들은 그 편지에서, 전통미사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 반하여 새미사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헷갈림 없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새미사는 애매하여 가톨릭 신앙을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개신교(프로테스탄트)적이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교환 바오로 6세밑에서 바티칸 교황청의 장관이었던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바로 그같이 교황에게 지적한 것이다.


오타비아니, 밧찌 두 추기경은 그 편지에서 새미사는, “가톨릭 신학의 견지에서 보건대 트리덴틴 공의회의 제 22총회에서 공식화된 미사로부터 현저하게 이탈하고 있다.”고 준엄하게 경고하고 새미사의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새미사의 어느 부분이 도대체 가톨릭답지 못한지, 주로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연구를 근거로 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새미사에서는 성체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고 있다. 우리 가톨릭 시자들은 교리 및 성전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현존하고 계심을 믿고 있다. 트리덴틴 공의회에서 결정된 말로 표현하면, “성체 안에 우리 주님이 참으로 실재하고 계심”을 믿고 있다.


 그러나 새미사는 총칙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해서 언급하되 마치 “대개 두 사람이나 혹 세 사람이 내 이름을 위하여 모인 곳에 내 곧 그 가운데 있음이니라(마두 18: 20),”고 하신 것과 같이 신비적 현존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미사성제에서 그리스도는 그 이름 아래 모여 있는 집회 안에, 봉사자 안에, 주님의 말씀 안에 (성서를 읽는 것) 현실적으로“ 주님이 현존하신다고 하는 신비적 현존을 말하여, 주님의 신비적 현존과 혼동하며, ”면주(麪酒)의 형상 아래 본체 그대로 현존하신다.“라고 하면서 주님의 현존에 관한 항목을 서로 굳게 연관시키고 있다.(총칙 제 7조).


 이는 대단히 중대한 혼동이며 오해를 부를 위험이 극히 큰,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설명이다.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 상황을 보도록 하자. 전통미사에서는 다만 신앙이나 말뿐만 아니라 주님이 성체 안에 현존하신다는 신앙을 실제의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예컨대, 옛날 미사에서는 예수께서 현존하고 계심에 대한 신앙을 실제의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옛날 미사에서는 예수께서 현존하고 계심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 흠숭을 드리기 위해서 사제는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영성체 후에 성작 안에서 손가락을 씻는 예식을 행할 때까지 꼭 붙인 상태를 유지했다. 이는 그 손가락에 주님의 몸이 모독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가톨릭 신앙에 따라 면병 가루도 그것이 빵인 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인 연고이다.

 

그러나 새미사에서는 장궤 예절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사제는 성 변화된 성체를 만진 후에도 손가락을 벌린 상태로 있으며, 그 손가락으로 미사 경본의 페이지를 넘기거나 여기저기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그에 따라서 영성체 후에 손가락을 씻는 예식도 없어져 버렸다. 제대 위에 참 천주님이 계신 것을 무시하고 천주님의 실제적 현존을 믿지 않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옛날에는 지성하신 우리 주님의 성체를 영할 때에는 영성체 난간에서 무릎을 꿇고 혀로써 공손하게 모셨었다. 복사가 사제의 옆에서 성반을 들고 서서 성체가 입으로부터 바닥으로 잘못 떨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말이다. 또한 영성체 난간에는 희고 깨끗한 보가 달려 있어서 혹시라도 잘못해서 성체가 떨어지더라도 떨어지는 성체를 그 보에 받아서 성 변화된 면병이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엄중한 주의를 다하고 있었다. 이는 성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이라는 가톨릭 신앙을 나타낸 것이며 가톨릭 신앙의 논리적인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만 빵이기만 하는 듯이 선 채로 손으로 받고 있으며 때로는 손으로 집어 먹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크나 큰 무언의 공격이고 우리의 성화(聖化)를 밟는 것과도 같은 바, 말로는 우리 주님의 현존을 부정하고 있지 않지만 태도와 행동으로는 주님의 현존을 부정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미사에서는 미사가 속죄의 제물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부정하고 있다. 옛 가톨릭의 미사에서는 그 경문을 보든지, 회중에게 들릴 듯 말 듯 이루어지는 침묵 속의 성변화 등을 보든지, 미사는 참된 희생이며 또 신비한 현의를 거행 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트리덴틴 공의회에 의하면 가톨릭교회에서 최고의 희생인 미사는 구약의 말라키아의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다. 요컨대, 만유의 주 이르시되 나는 너희에게 마음이 없으니 너희 예물을 받지 않겠노라. 일출하는 데서부터 일몰하는 데 까지 열방 중에 내 이름이 크고 또 모든 곳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고 제사하며 결백한 봉헌을 하리라(말라키아 1:10)


 이 예언에서 일컫는 충족시키는 제사는 구약의 제사도 아니고 일반적인 선행도 아니며 십자가의 유혈제도 아니며 오로지 가톨릭의 전통미사이다 그 이유는 미사가 바로 구약 유데아인의 제물을 대신하는 영구한 새 희생 제사인 연고이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언한다. 만일 누가 미사성제는 찬미와 감사의 것이거나 십자가상 제사의 단순한 기념일뿐이오 속죄제는 아니라고 말하든지 또는 영하는 자에게 유익할 뿐이니,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죄와 벌과 보속과 또 다른 필요를 위하여 드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새미사의 총칙에서는 미사를 정의하되, 주의 만찬 즉 미사는 거룩한 집회 의식, 즉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제를 장상으로 하여 하나로 모인 백성을 위한 집회이다(총칙 제 7조)라고 한다. 새미사는 미사경본에서 미사에 대하여 이르되 주님을  기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변화지례의 경문으로써 면병을 성 변화케 하는 것이라 하지 않고, 단지 서술로서만 묘사되어 있어 결국 이야기일 뿐만 이라고 만 한다. 새미사가 이루어졌을 때 프로테스탄트들이 말하기를, "드디어 가톨릭에서 새로운 봉헌문 전통미사에서 말하는 전문을 만들어 미사가 천주께 바쳐지는 제물이라고 하는 등의 그릇된 견해를 내버렸다." 라고 말하였을 정도이다.

 

이로써 새미사의 총칙에서는 제단(제대)라는 용어 대신에 식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지금까지는 꼭 갖추어야했던 총칙에 의하면 미사를 거행하는 곳이 제대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제대보도 이전에는 성혈을 흘리는 경우 독성이 되지 않도록 석장을 마련했지만 새미사에서는 식탁보처럼 한 장 만을 깐다.

 

또한 새미사는 암묵적으로 가톨릭의 사제직을 반대하고 있다. 트리덴틴 공의회의 성교(聖敎) 요리에 의하면 사제는 천주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일반 신자보다 상위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가톨릭 사제는 특별한 신품성사를 받아 천주께 속하는 사람이어서 평신도와는 성사적으로 구별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사적으로 구별된다 함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제의 영혼에는 평신도의 영혼에 없는 영구히 지워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각인이 박히고 그로써 초자연적으로 온전히 구별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신품성사를 유효하게 받은 사제만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우리의 가톨릭 선조들은 박해를 받는 중에서도 사제가 미사를 드려 줄 것을 원하여 굳이 사제에게서 성사를 받고자 참된 가톨릭 사제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제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미사를 거행하여 신자들이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었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만일 누가 이 예를 나를 기억하기로 행하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종도들을 사제로 세우지 않으셨다거나, 또는 그들과 다른 사제들이 당신 몸과 피를 드리기 위하여 마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과문을 받을 것이다. “가톨릭의 전통 미사를 보면 이 신앙을 잘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구별이 명확환 연고이다.


 예컨대, 전에는 미사 초입에 사제가 평신도와는 별도로 단독으로 고죄경을 외우고, 사제만이 제단 위에 올라서며, 사제만이 서간경이나 복음서를 읽고, 강론을 하고, 성체를 성 변화케 하고, 성체에 손을 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사제만이 성작으로 성혈을 마시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제는 이 세상과는 구별된 천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사에서 그런 구별이 있음은 순전히 우리 가톨릭 신앙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미사에서는 그같이 구별이 거의 다 없어졌다. 새미사에 의하면 사제는 다만 (신자를 대표하는) ‘장상’일 뿐이다(총칙 제 7조). 이는 마치, 평신도와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뽑혀서 목사가 되고 신자 무리의 장상이 되는 프로테스탄트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것과 같은 생각이다. 정치 세계에서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기는 하지만 때로는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담당할 뿐인 것과 같다. 그런 식으로 해서 신품성사로 말미암는 ‘성직 계급’인 ‘사제직’과 성세를 받은 사람이 갖는 ‘공동 사제직'을 혼동시키고 있다. 결국 새미사에서는 회중이 사제와 공동으로 미사를 드린다는 사고방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의 사제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고방식이다. 다시 새미사를 보면, 새미사에서는 사제가 자신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살려서 전례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그것은 새미사의 정신에 따를수록 합법적이다. 루터파 예배 중의 신도들의 기도가 신자들의 기도가 되어 가톨릭의 새미사에 도입되었다. 이렇게 하여 신자의 무리가 모두 다 사제라고 하는 루터파의 이단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성영 혹은 성경을 읽거나 강론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신비적 지체인 신자에게 영적으로 와 닿는 일이다. 그러므로 전통에 의하면, 사제만이 그리스도의 물리적, 실체적 몸이신 성체께 손을 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 낭독이나 강론도 사제(그리고 적어도 신품성사의 일부를 받은 부제나 차부제)만의 몫이다. 결국 새미사 에서는 가톨릭교회답게 하는 사제직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새미사는 전적으로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그것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일한 부니니 주교는 새미사가 ’근본적인 쇄신, 완전한 변경,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미사를 조작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임명하는 등의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회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그 같은 근본적인인 변혁은 교회사 중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한 종교 혁명에서만 있었을 뿐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반란이 일어나자 성 비오 5세께서 하신 일은 프로테스탄트의 이단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을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재확인한 일일 뿐이어서 하나도 바꾸지 않고 미사를 굳히되 프로테스탄트의 이단을 막기 위한 신앙의 방벽으로 삼은 것이었다.

 

부니니 추기경의 ‘전례 개혁 위원회’ 위원 가운데 특히나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인 예수회의 제라뉴 신부는 “나같이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를 창하는 장엄미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해 보라. 그 옛날 미사와 지금의 미사를 비교해보라. 경문뿐만 아니라 선율도, 동작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진실히 말하건대 새미사는 다른 전례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결국 우리들이 알고 있던 그 로마식 전례 양식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붕괴 되었다.” 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1991년 옷디 추기경은 전통미사가 바쳐지지 않게 된 것에 대해서 현대의 가톨릭 신자들이 한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신앙의 중심이 추방되었다”고 했다. 이 범죄에 대해서 역사는 교회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새미사가 이루어졌을 당시 성청 장관 이었던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교황 바오로 6세에게 이 새로운 미사의 비가톨릭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성직자들 사이에서 새미사로 인한 실제적인 결과는 양심에 있어서의 참혹한 위기다.” 라고 보고했을 정도이다.

 

교황 바오로 6세 개인적으로는 새미사를 좋아한 것 같았으나 결코 옛미사를 폐지하거나 새미사를 강제적으로 밀어 붙인 일은 없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슈티클러 추기경이 전통미사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고 한 것을 새삼스러이 확인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슈티클러 추기경에 의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구성하되 9인의 추기경으로 이루어진 특별위원회 위원 중 8인이 1986년에 교황의 앞에서 새미사는 의무가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가톨릭적이지 않은 새미사가 가톨릭 내부에 도입되었으며 더군다나 그것을 바쳐도 좋다는 허가까지 받게 되었을까? 그미사는 바로 종교 통일운동 에큐메니즘을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쟝 기통이라는 불란서 평신도는 바오로 6의 친구였던 사람인데, 최근에 종교 통일을 위하여 새미사를 만들었다는 의향이 바오로 6세에게 있었음을 교황에게서 직접 알게 되었노라고 발표한 바 있다. 쟝 기통에 의하면, 새미사의 목적은 프로테스탄트의 이단에 양보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에 있었던 것이다. “보통 미사라고 일컬어지는 전례에 관한 바오로 6세의 의향은 가톨릭의 전례를 변화시켜서 미사가 프로테스탄트의 전례와 거의 같아지게  하려 하는 것이다....” 

 

전통미사에 있어서 너무나 지나치게 가톨릭적인 부분을 폐지하고 혹은 적으나마 부드럽게 하려는 종교 통일 운동의 의향이 바오로 6세에게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풀이 하지만 그것은 가톨릭 미사를 가능한 칼빈파 예배에 가깝게 하려 한 것이었다. 교회일치, 즉 종교 통일 운동은 그릇된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유일한 참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공교회로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를 여타의 거짓 종교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려 모든 종교를 품에 안는 새로운 통일 종교를 만들려는 운동이다. 이 종교 통일 운동의 기원은 프로테스탄트로서 전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적인 생각이다.


 유감스럽게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그런 생각이 가톨릭에도 침입하고 말았다. 예컨대, 새미사를 만듦에 있어서 6명의 프로테스탄트 목회자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일했다. 그 6명이 교황 바오로 6세와 함께 찍은 사진이 Documetation Catholique(불란서어로 된 가톨릭 교회 공식 자료집)의 표지에 실려 있다. 쟝 기통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故 몬시뇰 클라우스 캄버는 미사의 극적인 변화로 인해 이제는 가톨릭 신자들이 칼빈파의 열매 없는 진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다고 말한다.

 

몬시뉼 캄버라는 분은 금세기 후반의 위대한 전례 전문가로서, 1957년에 라디스본의 전례 연구소를 설립한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며, 1989년 6월 세상을 뜰 때까지 그 소장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전례에 대하여 그토록 박학했으므로 교황청 소속 전례 아카데미의 명에 회원이었으며, 1965년에는 교황청 소속 자문 신부, 1966년에는 교황청 소속 개인 의전 장관으로 임명되었었다. 옷디 추기경이 캄버 신부의 저서인 로마 전례의 변혁의 머리글에서 특히나 중요한 일이다 라고 하고 있지만 캄버 신부는 자기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루터가 도입했던 전례의 변화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은, 적어도 전례 양식에 있어서 우리 전례를 재편성하였고, 특히 미사 전례에 있어서는 기초부터의 변혁이 있었다. 지금의 전례 개혁은 루터가 전례 개혁을 하던 당시 신자들이 전통적인 전례 양식에 대하여 성서적인 애착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이해하던 만큼도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이며, 더구나 무시하기까지 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전례 형식이 처음에는 좋은 의향으로써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백성에게 빵을 주는 대신 돌을 주는 결과가 되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다른 전례 전문가들은 새미사가 영국 성공회의 종교 개혁자인 그렌머가 만든 미사와도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상황이 그러했으므로 1969년에 이미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새미사가 가톨릭 신학의 견지에서 보건대 트리덴틴 공의회의 제 22총회에서 공식화된 미사로부터 현저하게 이탈하고 있다고 준엄하게 경고하고 새미사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즉시 외쳤던 것이다. 그만큼 새미사는 애매하고 또 이단을 조장한다.


달리 말하면 새미사는 새로운 신앙을 전달하고 있다. 故 캄버 신부는, 전통 미사의 붕괴 1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전통 로마 예식의 전례가 정말로 붕괴되어서 미사가 기초하고 있는 신앙이 전체적으로 붕괴되게 되었다. 우리의 경건성의 근원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교회를 증거함에 있어서 용기를 지니고 서있을 수 있음의 근원이었던 신앙, 수 세기에 걸쳐 무한히 뻗어나간 가톨릭의 숨결이었던 신앙이 완전히 붕괴되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전통미사는 교리에 있어서나 언어에 있어서나 행위에 있어서 하나였다. 전통미사에 있는 것은 모두 다 거룩하며,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똑같고 보편적이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되 종도로조차 전해 내려오는 것 이었다.


 예컨대, 평신도가 라틴어로 된 구절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그는 미사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새미사는 언어 하나만 보더라도 하나가 아닐뿐더러 거룩하지도 않고 대단히 세속적이며 각 교구 및 사제 마다 제 각각 이어서 보편적이지 못하고, 프로테스탄트와 더불어 인위적으로 기획하여 고안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새미사는 이름만 가톨릭일 뿐 억지로 교황 바오로 6세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실체는 반은 프로테스탄트와 더불어 인위적으로 기획하여 고안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새미사는 이름만 가톨릭일 뿐 억지로 교황 바오로 6세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실체는 반은 프로테스탄트적인 미사이다. 미사 중에 읽고 있는 경문을 보면 평신도가 말 자체를 알아듣기는 해도 미사가 무엇이고 무엇이 진행 중인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새미사가 나왔을 때, 많은 훌륭한 신학자, 교회법 학자, 사제들은 새미사 드리기를 거부하고 순교의 정신으로써 죽을 때까지 거부했다. 그것은 결코 향수를 느낀다거나 그리워해서가 아니고 신앙의 문제였던 연고이다.


 주교 중에서도 르페브르 대주교나 카스트로 드 메이어 주교처럼 공식적으로 교회법 및 가톨릭 신학에 따라서 새미사에 반대한다고 외친 주교들도 계셨다. 최근 필리핀 라조 주교님은 지금까지는 새미사의 위험성을 잘 몰라서 새미사를 드렸었지만 새미사가 가톨릭 신앙으로부터 현저하게 동떨어져 있음을 자세히 연구하고는 가톨릭의 전통미사로 되돌아 왔다. 그래서 우리도 천주님의 성총을 힘입어 가톨릭 신앙을 보존하고자 천주께서 유일하게 받아 주시는 신약의 희생을 바치는 방식으로 옛날 그대로의 미사를 고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통미사는 르페브르의 미사도, 그릇된 미사도 아니다. 루터의 종교 혁명이 있었을 당시 교회를 지킨 것은 바로 라틴어 미사였다. 루터의 종교 혁명시기에 가톨릭교회를 구한 것은 루터의 혁명에 추종한 독일의 종교나 수도자들이 아니고 전통의 가르침을 변함없이 지킨 성녀  데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이었다. 이 전통 미사로써 많은 증거자, 동정녀, 순교자가 지금 까지 배출되어 왔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반동적 신심주의를 향한 역행이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행해 오던 것을 변함없이 그대로 행하고 있을 뿐이다. 가톨릭교회가 믿어 온 것을 그대로 믿고 교회가 소망해온 것을 그대로 소망하며, 교회가 사랑해 온 것을 그대로 사랑할 뿐이다. 가톨릭 신앙은 진리이며, 진리임으로 해서 영원히 변치 않는다. 천주께서 영원히 한결같으신 것과 같이 가톨릭의 신앙의 유산도 영원히 같아서 변할 수 없다. 교황조차도 이 영원한 신앙을 바꾸지 못한다. 이는 성신께서 베드로 후계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성신께서 새로이 계시해주셔서 새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성신의 도우심으로 종도들이 전하여 준 계시, 즉 신앙의 유산을 확실히 보전하고, 또 충실히 설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제 1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한 연고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신앙에 어긋나는 일은 어떤 것도 이단 혹은 명백하게 이단을 조장하는 일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천주 십계중 제 1계를 범하는 중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단을 조장하는 일이나 신앙에 거스르는 일에 순명을 요구하지 못한다. 신앙을 위하여 순명이 있는 것이지 순명을 위하여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개혁시켜서는 안 된다. 교회도 개혁시키지 못 한다. 이단자를 기쁘게 한다 하여 미사를 개혁시키지 못 한다. 미사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천주님께 바쳐지는 것이다. 개혁해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너무나 세속적인 우리의 일상사로서 거룩한 미사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설명으로써 앞으로는 전통미사에 의한 전례 양식이 미사 거행을 위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제일 중요한 전례로 부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 전통 로마 양식의 전례가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의 규범이 되어 풍랑이 치는 듯 결코 멈출 줄 모르는 변화의 시대에 전 가톨릭계 일치의 상징으로서, 안식의 바위로서 근본적으로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다.


 성비오10세 사제회


그렇다면 도대체 전통미사를 바치고 있는 가톨릭 사제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그 사제는 가톨릭교회에서 정말로 인정된 사제인가? 한국에서 전통미사를 바치고 있는 사제는 1970년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설립된 수도회인 성비오10세사제회의 사제로서 매월 2회씩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수도원으로부터 서울에 오신다. 성비오10세회는 교회법에 따라서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정식으로 설립하셨고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한 수도회로 한 번도 교회에서 파문된 일이 없다. 교회는 성비오10세회가 언제나 교회에 속하고 있음을 인정해 왔다. 이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이나 그 외의 권위자들이 성비오10세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몇 가지 예거하고자 한다.


 1988년 7월1일 주교 성성의 장관인 겐틴 추기경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황의 허가를 받지 않고 4명의 주교를 성성한 것에 대하여 이교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제와 신자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이교(異敎)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문이라는 엄한 형벌이 따를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위협했다. 그러나 나중에 교회법의 정당한 해석을 위한 교황청 소속 위원회의 위원장인 카스틸로 라라 추기경이 바로 잡아 설명했는데, 겐틴 추기경이 의미한대로의 이교 행위는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겐틴 추기경은 이교 행위는 자동 파문된다 라고 한 교회법 제 1364조 1항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1988년 6월 30일에는 어떠한 이교행위도 없었다. 다음 날인 7월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겐틴 추기경에 동의하여 Ecclesia Dei afficta라고 하는 교령으로써 이교적 행위에 대해 언급하되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기는 해도 교황이 교정권을 행사 한 것은 아니었다. “이교를 지지하는 것은 천주께 범죄하는 것이며 누구든지 교회법에 정한 파문의 형벌이 따름을 알 것이다” 라고.


 그러나 교황의 교회법 고문인 라라 추기경은 후에 다음과 같이 증명했다: “우선 이교가 없었다. 따라서 파문도 있을 수 없다.” 라고. 카스틸로 라라 추기경은 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황의 허가 없이 주교를 상성하는 행위 자체로는 파문의 형벌이 따르지 않는다.”


 라라 추기경이 제안한 것과 같이 교회법을 타당히 해석한 내용은 이미 1988년 6월 30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뮌헨 대학 신학부 소속의 교회법 학자인 게링거 교수가 내놓은 바 있다. 게링거 교수는 이런 주교 성성으로써는 르페브르 대주교가 이교 행위를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역시 1988년 7월에 파리의 가톨릭 학원 교회법 학부 학부장인 페트릭 발드리니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새로이 성성한 주교들에게 교정권 및 구역을 주지 않았으므로 그의 주교 성성은 이교 행위를 이루지 않는다.“ ”주교를 서품한다 해서 이교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교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서품하는 주교에게 종도적 사명(결국 교정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것을 주지 않았으므로 이교가 아닌 것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선종(1991년 3월 25일)직후 디안돔 추기경은 여러 곳에서 르페브르 대주교가 파문된 것이지, 죽지는 않았노라고 선언하며 다녔다. 같은 무렵에 베른 (스위스의 수도)의 교황 대사인 몬시뇰 슈발리에(나중에 추기경이 됨)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유해 아래 기도하러 와서는 대주교를 축복해주었다. 원래는 파문된 자가 있는 곳에 가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거나 축복하는 행위조차도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991년 10월19일 옷디 추기경은 르페브르 대주교의 묘소가 있는 에콘의 신학교에 찾아 왔다. 옷디 추기경은 당시 에콘 신학교의 교장이었던 시므란 신부와 함께 신학교의 묘지에 가서 르페브르 대주교의 무덤을 축복하면서 큰소리로 "대주교님 고맙습니다." 라고 외쳤다. 1991년 5월 1일 하와이의 페라리오 주교는 성비오10세회를 지지하여 그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6명의 신자를 파문하려 했다. 그러나 로마는 그런 결정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페라리오 주교가 시도했던 성비오10세회 신자에 대한 파문은 신앙 교리 성성의 장관 요셉 랏칭거 추기경에 의해서 1993년 6월 28일 무마되었다. 미국 주재 교황 대사는 랏칭거 추기경의 이름으로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서 성성된 네 명의 주교들이 견진 예절을 주최하여 조직하는 것은 이교 행위가 아니어서 이교를 구성하지 않으므로 파문의 형을 받지 않는다고 전하였다. 교회법을 근거로 하면 이런 파문의 경우에 있어서 상기의 칙령으로써 언급하고 있는 사실은 이교의 죄를 이루고 있지 않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이교행위는 아닌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1991년 5월 1일의 칙령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무효임을 선언한다.


 ‘그리스도 신자의 일치를 위한 교황청 소속 위원회’의 위원장인 에드워드 캐시디 추기경은 1994년 5월 3일자의 다음 서한에서 성비오10세회가 교회에 속해 있으며 가톨릭교회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다. 그 서한을 보면 성비오 10세회의 사제들이 행사하는 성사는 모두 유호함, 성비오10세회의 4명의 주교들은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임, 그리고 성비오10세회에 대하여 요구하는 것은 다만 화해뿐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결국 로마와 성비오10세회의 사이에는 한 가지 논쟁이 있음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이다.

 

“000 씨 .. 1994년 3월 25일의 당신 질문에 관하여 말하건대. 성비오10세회는 종교 통일운동 에큐메니즘의 리스트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회의 회원에 관한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내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비오10세회는 이 리스트에서 말하듯이 낡은 의미에서의 별개의 교회 혹은 별개의 사회단체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이 회의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나 성사는 모두 유효합니다. 주교들은 비합법적일지는 몰라도 유효하게 성성되어 있습니다.....”  이 서한이 당신 서한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하기를 기대합니다.

위원장 에드워드 캐시디 추기경
                               
 플로렌스 대학의 원교회 법학 교수 네리 카포니 백작은 바티칸의 법률가 서클의 저명한 멤버로서 로마의 최고 사법 기관 앞에서의 의견 진술이 허락된 사람이다. 그는 교황의 허가를 받지 않고 주교를 서품하는 행위만으로는 이교 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여 극히 바르게 설명하고 있다. “그 분 르페브로 대주교은 무엇인가를 좀 더 했어야 합니다. 예컨대, 자기 교회의 위계조직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이교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다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사제 서품이 계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교를 성성한다. 그들은 다른 주교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나는 별개의 교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행위 자체로는 이교적이지 않습니다.”


 뉴욕 대주교구의 제럴드 머레이 신부는 교회에서도 특별히 권위 있는,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1995년 6월 교회법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그가 박사 학위를 획득하게 한 주제는 “고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 평신도의 교회법상의 지위 “그들은 과문된 상태인가, 혹은 이교 상태에 있는가” 였다. 머레이 신분의 논문은 1988년 이래 성비오10세회가 주장해온 논문은 1988년 이래 성비오10세회가 주장해온 것과 완전히 같은 논법인 동시에 완전히 같은 논지였다. 그리고 그 논문이 바르다고 인정되어 머레이 신부에게 박사학위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교회법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나의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는 르페브로 대주교의 파문을 취급했다. 그들 성비오10세회의 회원들은 이교자로 파문되어 있지 않다. 바티칸에서 한 번도 그들이 교회를 떠났노 라고 말한 적이 없는 연고이다... 르페브로 대주교조차도 파문되지 않았음을 증명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밖의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과문되지 않았음을 말할 나위 없다...“

 

”나의 결론은 교회법상 그는 교회법으로써 벌을 받을 만큼 이교 행위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교황에 대하여 불순명의 죄를 범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 행위에 대하여 교회법에 의한 자동파문의 형벌을 받는 일이 없게끔 현명하게 행동했다.“ ”바티칸에서는 성비오10세회에 속한 사제 및 평신도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이교적이라고 선언한 일이 한 번도 없다..... “

 

”성좌(聖座)에서는 신자가 성비오10세회의 사제가 드리는 미사에 참여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교회에서 이탈하게 되었노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톨릭의 좋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성비오10세회의 교회나 성당에 가도 되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로 이단적인 설교, 예컨대 ,지옥이 없다거나 이혼한 후에 재혼한 부부가 영성체를 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설교를 듣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로마의 추기경들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 하는 식으로 줄줄이 결국에는 르페브르 대주교가 옳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은 드디어 성비오10세회는 벌을 받을 리도 없고 또 벌을 받을 수도 없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전통미사는 허락된 것임, 성비오10세회에서 주는 성사 모두가 유효함, 따라서 이교 행위란 도무지 없었으며 파문도 없었음의 메시지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교회에서는 이단자나 프로테스탄트, 불교도, 그 밖의 사이비 종교에게조차 문을 열어놓고 제 발로 나가서 합동 기도회를 열고 심지어는 이미 수백 년 전에 교회로부터 엄중하게 파문을 받은 바 있는 이단자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톨릭교회의 일부인 성비오10세회의 사제에게는 도대체 왜 그다지도 완고하게 문을 닫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2000년을 거쳐 온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많은 성인들 및 교회 학자, 순교자, 공의회의 결정, 거룩한 역대 교황들에 의한 무류의 선언이 있다. 우리의 거룩한 순교자들은 새미사가 아니라 이 거룩한 전통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앙과 희망과 사랑과 용기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이 이 거룩한 전통미사에 오도록 초대합니다. 바라건대 이 내용을 복사하여 친구들에게도 돌렸으면 합니다. 서울의 주일 미사에서는 성수(聖水) 예절이 있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창하는 참된 미사를 드리며, 성체 강복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미사 참례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