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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을 위한 기도와 전통미사를 권유함; 슈나이더 주교(2022-10-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18


교황을 위한 기도와 전통미사를 권유함; 슈나이더 주교(2022-10-13)

교황님께 대한 질책에는 애덕이 있어야 하고, 신자에게는 전통미사를 권유하며, 가톨릭 사제는 독립적일 수 없고 반드시 장상에게 속해야 한다 

마이클 매트(M):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렘넌트(Remnant) TV의 마이크 매트입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아타나시오 슈나이더 주교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슈나이더 주교님(S):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과 형제님의 벗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항상 기쁨입니다. 

M: 이렇게 힘든 시기에 저희에게 오셔서 격려해주시는 주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이 컨퍼런스의 800명의 참석자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교회의 위기, 위계조직과 리더십의 위기라는 처참한 상황에 관하여 사제, 주교, 평신도의 적절한 태도에 대해 이미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각하께서는 성하께서 카자흐스탄에 도착하시기 전에 그곳에서 열릴 종교간 회의에 대한 염려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성하께서 참석하신 회의에 관한 문제에 대해 언론에 성명을 발표하실 때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S: 가톨릭 신앙의 무결성과 교회의 생명을 위해서, 명백히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제 양심에 따른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이 문제를 깊이 성찰하시고 더 나아가 바로잡으시도록 돕기 위해 저는 이 양심 문제를 다루어야만 되었습니다. 주교로서 신앙, 도덕, 전례의 순수성을 해칠 것이 불 보듯 훤한 위험에 대해 연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하를 향한 당연한 존경심에서, 공손하게, 초자연적 관점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기자들에게도 주교는 교황의 직원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식의 교황-주교 관계는 교회의 신성한 구조가 아닙니다. 주교는 교황을 따르는 형제들이며 시정과 훈계는 애덕에서 우러나오는 형제적 몸짓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교황님을 향한 애덕에서 행하려고 합니다.

※ 슈나이더 주교님의 CIC 연설의 일부: 성하께서는 전통 라틴 미사를 이기고 절멸시키는데 있어서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M: 주교님께서 헤드라인을 장식하셨어요. 물론 주교님 의도는 아니었고 언론이 그렇게 다룬 것이죠. 언론이 원했던 것은 성하를 향한 주교님의 강도 높은 비난이었습니다만. 주교님께서는 애덕에서 말씀하셨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렘넌트 TV 시청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애덕을 어기지 않으면서 심지어 권위를 향해서도 진리를 외칠 때 양심을 따르는 방법에 대한 좋은 경험 법칙을 알려주시겠어요?

​S: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정당(political party)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 있는 천주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천주의 교회는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낼 때 벌을 받을까 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가족 간의 태도죠. 항의를 한다고 해서 벌 받는 일은 독재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독재 국가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독재자가 갑자기 벌을 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분위기에서는 이런 일이 있어 선 안 됩니다. 교황과 성좌*는 신자가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그의 양심을 이유로 벌을 준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교황과 성좌는 초자연적인 관점을 지녀야 합니다. 

* 성좌(Holy See): 세계 교회를 뜻하는 로마의 주교좌를 가리키는 말이나. 일반적으로는 최고의 주교인 교황과 교황을 보좌하는 로마 교황청의 각 성성(聖省), 재판소 등의 행정기관까지도 포함하여 이를 총체적으로 지칭한다. 교황은 이 기관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교회를 관리한다(출처: 가톨릭 대사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어떤 시정, 훈계, 항의할 때에는 항상 애덕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너무 인간적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인간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오직 참된 초자연적 애덕의 행위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항상 이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평신도의 태도와 주교의 태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교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교도권의 일원이자 주교단의 일원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교는 교황의 형제이자 목자로서 함께 교황을 도와 교회를 인도합니다. 역시 교회의 일원인 평신도는 각자의 위엄과 직분이 있으며 견진성사의 성총 덕분에 신앙을 지킵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항상 염두해야 할 것은 권위에 대한 존경입니다. 항상 존경심을 갖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행위는 단순한 감정, 열정, 분노 등등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런 행위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언제나 그저 좌절로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제가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경악스러운 교회의 위기에서 그렇게 해 주십시오. 교회의 위기에 대해 글을 써야 할 것입니다. 끈질기고, 분명하고, 두려움 없이 하십시오. 그러나 항상 존경의 형식을 갖추어 하시길 바랍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셨듯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애덕입니다. 인간이 여러 극단(extremes) 중 하나를 취하기는 쉽습니다. 하나는 진리 없는 애덕입니다: '나는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입도 열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아랫사람일 뿐이고 교회 일은 주교들이 다 하니까 나는 그저 순명만 할 뿐이다.' - 이것은 가톨릭 신자의 참된 태도가 아닙니다. 또 다른 극단은 애덕 없는 진리입니다. 이 태도는 해롭기만 하고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며 천주의 방식이 아닙니다. 천주의 방식은 두 극단을 합친 것입니다. 교회를 해치는 사람들에게 저주받으라고 외치기는 쉽지만, 이것은 절대로 천주의 방식이 아닙니다. 

​5세기 무렵 프랑스 남부의 아를이라는 곳에 세자리오(Caesarius of Arles)라는 교부가 계셨습니다. 세자리오는 강론에서 신자들에게 부디 우리 주교들에게 와서 끈질기게 요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앙의 양식을 드릴 것이니 그치지 말고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우리(주교들)을 쳐라... 마치 송아지가 젖을 먹으러 어미소에게 갔는데 어미소가 젖을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자기 머리로 어미 소를 계속 들이받는 것처럼. 신자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목자에게, 주교 또는 교황에게 가서 머리로 계속 들이받으십시오. 머리로 들이받는 것은 상처를 주지 않죠. 그저 부드러운 타격일 뿐입니다. 어미 소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미 소는 젖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런 식으로, 주교와 교황에게도 당신의 목소리를 내세요. "우리에게는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성하, 우리에게 참되고 순수하며 무결한 가톨릭 신앙, 가톨릭 전례라는 젖을 주세요. 우리는 교회의 자녀니까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보물을 철창 안에 가두지 마세요. 그리고 분명한 가르침을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M: 아마존 시노드에서 주교님께서는 버크 추기경님과 함께 아마존 시노드의 이단성과 시노드에서 작업하던 명제에 대해 경고하는 8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작성하셨습니다. 만일 주교님께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언론인이라면 추기경과 주교가 함께 아마존 시노드가 이단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러한 행동이 현대 세계에서 교황권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라고 어떻게 볼 수 있을지요? 사람들이 모든 문헌을 읽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충분히 받은 것도 아니며 그저 주교님의 행동을 보고 판단할 뿐일 때 말입니다. 주교님 말씀대로 우리는 교황님께 대한 존경심을 갖고 말씀드리지만 교황직에 손상을 가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니까요. 세상은 교황직이 보호받지 못한다고 봅니다. 봐라, 교황직은 보호받지 못하는 한낱 인간의 기관일 뿐이다, 이단에도 빠지지 않느냐 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접근방법은 무엇일까요?

​S: 이것이 진짜 문제이고 우리는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의 위기는 교회 역사를 통틀어 정말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에요. 현재의 교리상의 위기, 도덕적 위기는 바로 교황직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교황직의 위기인 것입니다. 물론 주교단의 위기도 포함되죠. 교회의 2000년 역사 동안 교리적 측면에서 이런 식의 위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교황직의 위기는 몇 번 있었습니다. 10세기에 saeculum obscurum(=dark ages; 암흑시대)라고 하는 도덕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교황들의 패륜적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교황들의 패륜은 거대한 스캔들이었고 교황직과 성좌를 얼룩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교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교황의 패륜적 사생활보다 훨씬 더 엄중한 것입니다. 교리상의 위기는 교회에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치는데 신앙의 기반 자체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리상의 혼란은 아주 드물게 있었고 하나같이 교황의 잘못된 태도에서 뻗어나왔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4세기 교황 리베리오(제36대 교황, 재위: 352-366)입니다. 아리우스 이단이 창궐할 때 리베리오 교황은 아리우스 이단에 굴복하고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애매모호한 신앙 경문에 서명을 했죠. 천주의 도우심으로 그 경문은 직접적인 신앙 경문은 아니었습니다만 애매모호함은 항상 혼란을 낳기 마련인 것입니다. 따라서 리베리오 교황은 교회 역사상 시성되지 못한 최초의 교황이 되었습니다. 성 베드로부터 그의 전임자까지 모든 교황은 치명자 또는 증거자로 시성되어 성인 열품에 올랐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리베리오 교황은 성 아타나시오 대주교를 추방하고 대주교를 파문한다는 문서에 동의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14세기에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례가 있었던 4세기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죠. 거의 천 년 동안 성좌 자체는 교리상의 문제에 연루된 적이 없었습니다. 도덕적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교황 요한 22세(제196대 교황, 재위: 1316-1334)는 통상 교도권(일상 교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연설과 강론을 통해 사실상(de facto) 이단을 전파했습니다. 그 이단은, 성인, 정화되어 죽은 영혼 또는 연옥 형벌을 모두 마친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을 위해 재림하시고 천주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기 전까지 지복직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죠. 예수께서 당신 오른편에 못 박힌 강도에게 너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요한 22세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교황에게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저항했으나 성직자들은 저항하지 않았는데 자기 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였습니다. 추기경 한 명만 저항했죠. 교황에게 가장 격렬히 저항한 평신도는 프랑스 국왕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고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이 얘기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교황이 파리에 왔을 때 자기가 잘못 가르친 것을 뉘우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이단자로 화형에 처하겠다." (M: 좋았던 시절이었네요!) 아무튼 이 일화는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걱정한 평신도들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성인들이 천주와 함께 있지 않고 천주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천주의 도우심으로 요한 22세는 죽기 전에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오류를 철회하고 추기경단을 소집하여 참회했습니다. 

M: 잠시 질문드립니다. 교황 요한 22세가 이단에 빠지고 심지어 이단을 전파했을 때 교황직을 상실했나요?

​S: 아뇨,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교회가 의화된 사람들의 지복직관을 아직 신앙의 교의로 선포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요. 물론 성경에는 나와 있지만요. 따라서 그가 고의적 이단자(formal heretic)였는가 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고의적 이단자로 선포되려면 완고하게 이단을 주장해야 하고 훈계를 받은 후에도 계속 완고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한 22세는 천주의 도우심으로 회개했고 그를 훈계한 추기경단은 후임자로 베네딕토 12세를 선출했는데 이분이 지복직관을 공식 교리로 선포했습니다.

​③ 세 번째 사례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것입니다. 14세기부터 현재 21세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어요. 현재 우리는 가장 통탄스러운 사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개입하실 것입니다. 지난 두 사례에 개입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됩니다. 교황님께 지속적으로 훈계를 드리고 기구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평신도와 주교에게 중요한 것은 교황님께 어떤 훈계를 드리거나 호소할 때에는 항상 기도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상의 행위도 함께요. 왜냐하면 우리는 한 가족, 한 신비체이므로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다른 지체들도 고통받으니까요.

오늘날 이 신비체의 머리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교황은 보이는 교회의 머리이죠. 그분이 고통받고 있고 아픕니다. 그래서 전신이 아픕니다. 그러면 우리는 온몸을 도는 혈액처럼,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성총이라는 초자연적인 순환으로 저 아픈 머리, 성좌에 도달해야 합니다. 기도와 배상으로 성좌를 도와야 합니다.

​M: 주교님께서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신 교황님을 정말 온화한 태도로 대하셨고 교황님이 카자흐스탄의 농민들을 둘러보시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교간 회의에 대해 질책하신 주교님의 성명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문제였으니까요. 종교간 회의를 보고 낙심에 빠져 교회는 이제 완전히 탈선했구나 싶은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함으로써 신자들이 교회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애덕에서 우러난 충언은 오히려 신자들이 교회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겠죠.

​S: 물론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어야 하고 교회의 일원입니다. 

지금 교회는 고통받고 있고, 성좌는 신앙을 명백히 손상시키고 훼손하는 세력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점령을 당했어요. 점령당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시각으로 교회가 천주의 손과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음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없던 가장 맹렬한 폭풍우 가운데에서도 말입니다. 바다 위의 배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주무시지만 배 안에 계십니다. 이 배는 절대로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심한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우리는 이 모습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파괴될 수 없는 불멸의 교회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달리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또 다른 교회, 종파, 또는 독립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가톨릭이 아닙니다. 가톨릭은 항상 교황 및 주교와 일치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톨릭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교황을 훈계하거나 항의하거나 시정해야만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교황입니다. 우리는 교황님을 위해 계속 기도드리고 심지어 그분을 계속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으로 딱한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천주의 심판 대전에 섰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를 이렇게 심한 혼돈과 혼란 가운데 방치한 것에 대해서 그분은 천주께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의 영혼을 진심으로 애처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혼을 사랑하십시오. 그분을 위해 기도드리고 희생하십시오. 자신이 저지른 오류를 들여다보고 인정할 수 있도록, 요한 22세와 같이 죽기 전에 성총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해 커다란 성총을 간원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혼란을 퍼뜨리고 있는 다른 주교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노 안에 스스로 갇혀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지금 교황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나는 이 주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이런 태도는 가톨릭의 태도가 아니고 종파주의자의 태도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피해야 할 유혹입니다.

이 교황이 내리는 명령이 명백히 신앙을 훼손하고 전례의 보물을 빼앗고 있기 때문에 순명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전례는 교회 전체의 것이지 교황의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들은 이 교황에게 공식적으로 불순명하는 것이 모든 시대의 교회에 순명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성좌에 대한 명백하고 공식적인 불순명이 전례라는 보물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성좌에서 현재 고위직을 차지한 사람들이 이 전례를 제한하거나 차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교황이 천주의 심판 앞에 섰을 때 천주께서는 "오, 너는 이러이러한 명령을 내려서 교회의 영적인 선을 해쳤구나. 네가 성인들과 모든 시대의 거룩한 미사를 금지하고 소외시키고 차별했기 때문에, 네가 거룩한 전례를 철창에 가둬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성총을 잃은 것은 다 네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나서 주께서는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네가 교황직에 있는 동안 너에게 불순명하여 이 소외된 전례에 협력한 사제들이 있구나. 그들은 그 와중에도 이 미사를 계속 거행했단다. 그러므로 너의 죄는 조금은 줄어들 수 있겠구나. 네가 교황으로 있을 때조차 여러 곳에서 모든 시대의 미사가 계속 거행되었으니 말이야." --- 저는 이런 상황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말씀드려야겠죠. "성하, 저희가 당신께 순명하지 않는 것은 성하와 성좌에 대한 사랑에서, 모든 성인들의 전례에 대한 사랑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저희의 이런 행동은 성하께서 심판받으시는 그 시간에 위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성하의 해로운 명령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M: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저는 매일 렘넌트 TV를 시청하거나 렘넌트 신문을 읽는 전세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주교님이 방금 말씀하신 부분을 비디오 클립으로 만들어서 교서 의 발표 후 방황하는 사제들에게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제와 주교들이 현재 평신도의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으면 해서입니다. 크게 낙심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라틴 미사를 드리다가 못 드리게 되었기 때문이죠. 지난 25년 동안 매 주일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차로 45-50분 거리를 운전해서 라틴 미사를 드리러 가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마저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이 납득할만한 아무 이유 없이 미사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렇게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전통 라틴 미사를 계속 드릴 기회가 있는 사제들은 교황님께 대한 불순명을 통해서 신자들을 계속 도울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S: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허가받지 못한 사제들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자기 교구의 주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소리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리상태(schismatic)에 있지 않다는 것, 새로운 종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교황님을 사랑하지만, 신앙을 해치는 그분의 명령은 지금으로서는 따를 수 없다고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제들(전통 사제들)은 반드시 장상(長上, superior)에게 속해야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만의 교황, 자기만의 주교를 둘 수 없습니다. 이런 행동은 한 마디로 가톨릭이 아닙니다. 가톨릭이 아니에요. 이런 사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어 일종의 구루(Guru; 힌두교의 스승이나 지도자)가 되어 버립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런 사례는 많고 특히 전통 가톨릭 세계에서 그렇습니다. 독립된 사제는 가톨릭 정신에 정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독립적일 수 없습니다. 사제에게는 반드시 장상이 있어야 합니다.

M: 장상이 없는 사제는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S: 찾아야죠! 사제는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몸일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사제는 가톨릭 사제가 아닙니다. 장상이 없는 사제는 어떤 공동체 또는 성 비오 10세회(SSPX)에 입회해서 적어도 장상을 두어야 합니다. 그에게 소임을 명령할 수 있는 장상 말입니다. 반드시 장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기만의 교황이든 주교든 누군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허가된 공동체 또는 SSPX를 찾으십시오. SSPX는 비록 성좌의 허가는 부분적으로 받았지만 성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제는 순명과 복종의 구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더 낫고 드문 경우인데 여전히 직무를 갖고 있고 견고한 입지가 있는 은퇴한 가톨릭 주교에게 복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교는 그에게 명령과 소임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성좌가 성전(聖傳)을 다시 증진하고 보호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M: 정말 중요한 말씀이군요. 우리는 지금 비상 상황에 있기 때문에 방금 말씀하신 가이드를 따라서 함께 나아갈 사제와 주교들과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신들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요. 이 암흑시대에 천신들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물론 우리가 기도의 전구를 청하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으뜸 종도였던 베드로마저 당신의 아드님을 갑자기 배반했을 때 베드로도 잃으셨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당신의 아드님은 베드로의 배반도 알고 계셨죠. 이러한 모든 상실에 성모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라틴 미사를 잃어버리고 베드로를 잃어버린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대할 필요가 있을까요? 

​S: 정말 훌륭한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통찰력이 있으시군요. 우리는 성모님께 청하기를, 성모님의 절망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기구해야 할 것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성모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반을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십자가도 버렸습니다. 십자가 곁에는 단 한 명, 요한만 남아 있었죠. 다른 종도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래도 성모님께서는 종도들을 계속 사랑하셨습니다. 분노로 반응하지 않으셨죠. 그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셨고 당신의 하자 없으신 성심으로 성신께서 종도들 위에 강림하시길 탄원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계셨죠. 

​우리의 태도가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신을 언급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거대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선한 영과 악한 영, 진리와 오류, 거룩함과 죄, 전례의 엄격함과 신성 모독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거룩한 천신들을 우리와 함께 싸우고 함께 주님을 경배하는 동반자로 불러야 합니다. 천신들은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영적 군대를 조직해서 성 미카엘 대천신과 함께 교회 공동체와 성좌로부터 악령을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천신들을 보내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많은 성인들은 이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호수천신을 다른 이의 호수천신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비오 신부님께서는 종종 그분의 호수천신을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의 호수천신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호수천신을 교황님의 호수천신, 어느 주교의 호수천신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강하게 해주시고 교황님의 호수천신이 그분에게 영향력을 발휘해서 천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교황은 자신의 고유한 호수천신 말고도 주님으로부터 또 다른 특별한 천신을 받습니다. 주교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천신들과 협력해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악의 세력은 전략의 대가입니다. 우리도 천신들과 주보성인과 함께 거룩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개입하시길 것입니다. 그때는 올 것이고 우리는 다만 신뢰 속에 각자의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주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풍성한 수확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톨릭 신앙에 충실하게 덕행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애덕은 항상 신덕을 보호합니다. 

​신전지회(神戰之會, militant church)로서 우리의 사명을 높이기 위해 다음을 항상 의식하십시오: 우리는 이긴다. 가톨릭 신앙은 항상 이긴다. 오늘날 교황직의 이 무시무시하고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이긴다.

M: 각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번이 4번째인지 5번째인지 아무튼 주교님과 인터뷰를 마치면서 평신도로서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정말 쉽고 저도 분노에 매우 약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고위직에서 일어나는 일에 좌절하고 낙담하고 있겠지만 주교님의 항구한 지도와 모범에 감사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전사로서 충성에 찬 저항을 해야겠습니다.

S: 천주께서 형제님과 형제님의 모든 벗들, 그리고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참된 쇄신에 기여하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지닌 모든 분들을 축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