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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를 옹호하며(2) - 레네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05


르페브르 대주교를 옹호하며(2) -레네 신부

13. 혼인에 대한 재판소는 어떠한가?

성비오10세회(SSPX)에는 교회 재판소가 없다(교황이 우리가 처리할 사건을 위임한 경우를 제외하고). 혼인 재판소는 정확히 정상적인 재판소가 아니다: 재판에서 판사는 당사자들에게 처벌과 다른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에 대한 규칙적인 권한이 필요하다. 그러나 혼인 재판소는 어떠한 처벌이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객관적인 진실의 문제를 판단할 뿐이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결혼식이 유효한 결혼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여기서 권위는 판단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지 그러한 판단을 내릴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성비오10세회(SSPX)에 혼인 재판소 문제를 가져온 것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혼인 무효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효 선고들을 '가톨릭적 이혼'이라고 지칭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들 무효 선언 중 상당수는 "정당한 법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승인되었다.

교회법 Can. 1095, 2.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서로 주고 받아야 할 필수적인 혼인권과 의무에 관한 법적 판단의 분별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혼인을 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호한 "분별력의 심각한 결핍"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결혼이 신중하게 이루에 지지 못한 경우, 종종 무효로 판단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몇몇 판사들은 실제로 결혼 전에 정상적인 커플들이 수년간 결혼한 후에 거의 달성되지 않는 어느 정도의 성숙함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신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들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 일부 사람들은 "그냥 무효화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양심은 이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결혼을 했을 때, 그들이 결혼을 원했기 때문에 (결혼에) 정확히 필요한 일을 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들의 결혼이 무효화된 이후 전통을 찾은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재혼이 유효한지 궁금해했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무효화를 받았을 때 명확하지 않았다.

자, 합법한 배우자에게 버림받은 받았을 때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요구되는 희생을 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확신이 필요하다; 의심과 망설임은 이러한 희생을 할 용기를 깨뜨리는 경향이 있다. 많은 신자들은 이러한 혼인 무효화의 문제에 대해 그 지역 사제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 성비오10세회에 와서 물었다: 내 혼인이 유효했는가요? 나의 혼인 무효가 유효했나요? 나의 재혼은 유효한가요?

그러한 질문들은 단지 사실에 대한 질문일 뿐이다: 사제는 그 문제에 대해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적 의견은 많은 무게를 지니지 않으며, 진정한 양심의 평화를 가지거나, 또는 혼자 남아야 한다면 필요한 희생을 하는 데 필요한 확신을 확립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고분고분한 사제를 찾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그러나 그러면 그 양심이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바로 혼인 재판소의 목적이다: 주교가 판사를 선택하고 그의 재판소가 적절한 법의 예방 조치를 따르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부지런함은 판결이 신뢰할 수 있다는 보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러한 혼인 법원을 부여한 이후, 많은 판사들이 보여준 새로운 태도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많은 혼인 재판소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깊은 영향을 받은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어떠한 권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상처 입은 영혼들을 돌보는 것이다. 좋은 판사들의 신중한 선택과 교회가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통상적인 과정을 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양심의 평화와 때로는 희생의 삶(배우자에 의해 버림받은 경우)을 살 용기를 찾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14. 일부는 르페브르 대주교를 이단으로 고발한다

이 고발은 너무 믿기 어려워서 나는 끝까지 놔뒀다. 그 이유는 1989년에 선포된 신앙 고백을 거부함으로써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SSPX)가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깊은 위기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전통적인) 모든 교리가 재해석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많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 자주 그 의미가 완전히 비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원죄에 대한 교의(敎義)는 그들의 재해석의 빈번한 목표이다: 사실, 그들은 진화(론)을 믿기 때문에, 첫 번째 남자 아담과 첫 번째 여자 이브가 있었다고 믿지 않는다; 빙빙 돌려 말함으로써 그들이 원죄를 재해석하지만, 나는 그들이 상상하게 놔둔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성 바오로와 모든 가톨릭 전통이 무엇을 가르쳤는지와 거의 관련이 없다: 한 사람에 의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가고,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으니, 그리하여 죽음이 죄를 지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도다(로마 5:12).

부분적으로 2차 바티칸 공의회 자체 내부에서 발견된 새로움과 그것이 취한 새로운 방향 때문에 생긴 이 신앙의 위기를 고려할 때, 새로운 신앙 고백(선언)의 위험은 마지막 단락에 있다. 우리는 분명히 종도신경과 성좌 교도권(치교권) 및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도권 뚜렷한 가르침을 다루는 첫 두 개의 후속 단락에 문제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단락은 우리가 수용하는 보편적인 통상적인 교도권과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의 주교들의 새로운 변혁에 대한 "진정한" 교도권 비결정적 교리 아래에 섞어 놓는다. 그런 가르침을 지배할, 즉, 전통에 순응해야 할 기준에 새 기준을 두는 것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교회의 명확한 교도권(치교권)은 절대적인 동의를 요구한다; 비결정적인 치교권은 절대적인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신앙상의 동의는 절대적이지 않다; 가르치는 교리가 새롭고 지속적인 과거 교리와 반대되는 경우, 그러면 (신앙상의) 동의는 보류되어야 하는 가능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신앙 고백(선언)은 기본적으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움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들이 완벽한 가톨릭 신자인 것처럼 그것(새로운 변화)들을 삼키기를 원한다.

우리가 이 세 번째 단락의 불명확성을 거부하는 것은 불변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진정한 충실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15. 마지막 요점: 르페브르 대주교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적은 있는가?

반대는 이렇다: "성직자가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항상 그에게 기적을 요구해왔다." 예를 들어, 루르드(Lourdes)나 파티마(Fatima)의 경우에 해당한다: 베르나데트(Bernadette)와 세 아이들은 환시(幻視)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 당국은 모두 두 사례에 기적을 정당하게 요구했고, 따라서 환시와 메시지 모두를 인증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원칙이 아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임무를 가진 성 잔 다르크(St. Joan of Arc)가 오를레앙(Orleans)을 위해 군대를 요청하기 위해 도팽(dauphin)에게 갔을 때, 그 왕세자는 푸아티에(Poitiers) 대학의 신학박사들에 의해 그녀가 검증을 받도록 했다. 성녀의 신앙과 도덕에서 건전함을 발견한 후 그들이 물었다: 만약 천주님이 당신에게 승리를 주시고자 하신다면, 그분은 군인이 필요 없을 것이라 말할 때,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군인들은 싸울 것이고 천주님은 승리를 줄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오를레앙의 승리는 기적이 아니었고, 천주님은 통상적인 2차적 원인을 우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원하는 효과로 그들을 움직이게 하셨다.

그러나 르페브르 대주교의 경우는 상당히 다르다. 대주교는 특별한 임무가 없었다. 신학교에서 그는 자신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는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했다. 대주교는 설명했다: "우리의 신앙은 천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분의 가르침은 가톨릭 전통(聖傳)을 통해 충실히 전승(傳承)됨으로써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우리가 천주님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필요한 것처럼 가장(假裝)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의 개념입니다: 이런 태도는 교회를 우회(迂回)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 주님이 세우신 것과 반대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 교리, 성사(聖事)는 수세기에 걸쳐서 저 충실한 전승을 통해 교회 안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주교의 섭리적 사명은 정확히 전통에 대한 충실한 임무였기 때문에, 그가 기적에 의해서 (그러면 우리에게 너무 쉬운 것이지만...) 우회하지 않은 것은 적절했다.

부록: 르페브르 대주교의 사려 깊은 분별력의 덕행

르페브르 대주교는 성직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아프리카에서 신학교 학장, 전교 지도자 신부, 모르탱(Mortain)의 훈련학교장, 다카르(Dakar)의 교황대사 및 대주교, 성신회 총장, 그리고 초대 성비오10세회 총장으로서 그리고 책임자로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특별한 덕행은 신중함의 미덕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신중함은 천주님의 섭리에 의해 나타난 것처럼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천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려 깊은 초자연적인 신중함이었다. 대주교는 기도하고, 조언을 구하고, 신앙의 원칙에 비추어 상황을 철저히 분석한 다음, 그리고서 결정을 내리고 용기를 가지고 실행했다. 대주교가 건드린 일은 무엇이든 잘 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자기의 뜻이 아니라 천주님의 거룩한 뜻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교(傳敎)에서 그는 유럽에서는 일반 사제(또는 주교)가 직면하지 않을 "범상치 않은" 상황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비슷했는지 에콘(Ecône) 신학교에서 우리에게 종종 설명해 주었다. 성 루이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하는 것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내릴 능력을 가지고서 구체적으로 다룰 특별한 미덕, 즉 신중함이라는 사려 깊은 분별력인 "잠재적인 부분"이 있다고 가르친다. … “일반적인 행동 규칙에 의해 다뤄지지 않는 어떤 일이 때때로 일어납니다  … 그러므로 그러한 문제들은 일반법보다 더 높은 원칙에 따라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좀 더 높은 원칙에 상응하여, 보다 높은 판단의 미덕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이를 금언(金言, gnome(γμα))이라고 하며, 이는 판단에 있어서 특정한 통찰력(perspicacity)을 나타냅니다." 통찰력은 상황이나 정황을 예리하게 평가하고 건전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으로 정의(定義)된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런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회의 관습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위기, 신앙의 위기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무시하거나 부인(否認)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대한 실수이며 저들의 통찰력(gnome)의 부재(不在)를 나타낸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4명의 주교를 축성(祝聖)하기로 결심하는 동안, 글자 그대로 수년간 묵상과 기도, 조언을 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대주교는 "천주님의 섭리 징조(徵兆)"를 기다렸고, 마침내 그 징조들은 왔다: 심각한 오류가 없어 보이는 성직자들에 대한 신자들의 긴박한 비상 상황을 보여주는 아시시(Assisi, 1986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회합한 일)와 두비아(Dubia, 의문, 의심이라고도 하며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교리를 천명하는 것에 대한 의문 제기)에 대한 대답이다. 대주교는 아시시 이후의 교리적 혼란이라는 매우 특별한 비상 상황에서 영혼의 유익과 전통(교리와 미사)의 생존을 위해서 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전통은 살아남았다! 그들의 열매를 통해 천주님은 대주교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셨고, 언젠가는 교회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미덕의 비범한 정도가 그에게서 인정받을 것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언약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나의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끝낼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 그것은 매우 심오한 말씀이다 -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우리 주님 언약의 음향(音響)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Novi et aeterni testamenti.  이는 새로 맺는 영원한 언약의 피니

Novi et aeterni testamenti. 이는 새로 맺는 영원한 언약의 피니
— 성혈 축성에서 이 말씀을 암송하는 이는 사제이다 —
Hic est enim calix Sanguinis mei: novi et aeterni testamenti: 
대저 이것은 곧 내 피의 잔이니라. 이는 새로 맺는 영원한 언약의 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유언은 그분의 희생이요, 그분의 피요, 그분의 십자가요. 모든 그리스도교 문명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의 효소(酵素)다.

그리고 나 역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지극히 복되신 성 삼위일체의 영광을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위하여,
교회의 사랑과 교황의 사랑을 위하여,
주교들과 사제들과 모든 신자들의 사랑을 위하여,
세상의 구원과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유서를 지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켜라!
모든 시대 미사를 지켜라!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교) 문명이 다시 번성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문명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가톨릭 도성으로 이끄는 문명입니다. 이 세상의 가톨릭 도시는 오직 천국의 가톨릭 도시를 위해 조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희생을 지킴으로써, 이 미사를 지킴으로써, - 우리의 선임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이 미사를 지키며, 종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미사를 지킴으로써 가톨릭 문명이 번성합니다. 잠시 후에 나는 이 말들을 내가 50년 전 서품받을 때의 (우리의 선임자들이) 성배 위에서 행한 발음을 할 것인데, 내가 이와 똑같은 성배 위에서 (선임자들이) 똑같은 발음한 것 외에 내가 서품을 줄 성배 위에 어찌 감히 다른 단어들을 발음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나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 말을 바꿀 수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전임자들이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우리의 지도자였던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이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축성(祝聖) 때의 말을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고, 천국에 계신 우리의 선하신 어머니의 중재를 통해 영혼들이 구원되도록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