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성비오10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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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파엘 빈센트 파우스티노 신부의 사제 서품 인터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19

2023년 12월 16일, 라파엘 파우스티노 신부(Father Rafael Faustino)는 1명의 브라질인과 아르헨티나인 2명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공동 구속자이신 성모 신학교(Our Lady Co-Redemptrix Seminary)에서 펠레이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종도 매거진(The Apostle Magazine)은 파우스티노 신부의 성소(聖召)의 심오한 여정을 엿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파엘 빈센트 파우스티노 신부의 사제 서품 인터뷰

전통과 성비오10세회(SSPX)의 발견
내가 1998년에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은 현대 교회(the Novus Ordo church,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변혁된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8살이 되던 해에서야 천주님의 은혜와 자비로 어머니는 고모님을 통해 라틴어 전통 미사를 알게 되었다. 그 시기에 (현대의) 교구는 모든 시대의 미사(전통미사)를 교구에서 폐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고모님의 인내로, 고모님은 뉴 마닐라에 위치한 성비오10세회(SSPX)교회, 지금은 승리의 성모 교회(OLVC)가 된 교회를 간신히 찾았다. 지역 가톨릭 학교에서 첫영성체를 받은 직후, 어머니는 우리의 첫 라틴어 전통 미사를 돕기 위해 승리의 성모 교회(OLVC)에 가기로 결정했다. 집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탓에, OLVC로 가는 것이 힘든 일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미사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약 두 달 후, 그리고 천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정기적으로 미사에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복사(服事)에 대한 관심
현대 교회에 있을 때, 나는 제대에서 복사가 되기를 원했고 또한 사제가 되고 싶었다. 나는 여러 차례, 제대 관리인들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훈련을 받지 않고는 새미사에서 복사를 할 수 없었다. OLVC에서 라틴어 전통 미사를 돕고 난 후, 이것이 천주섭리의 일임을 믿으니, 왜냐하면 나는 즉시 빨간 캐속(cassocks)를 입은 어린 소년들을 보고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미사를) 섬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뜨거운 관심을 알고 고모는 나를 제대 관리인들을 만나기 위해 성물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마침내, 나는 훈련을 받았고 미사 복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미사를 복사하는 것만으로 거룩한 희생물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제들이 매우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 여덟 살 소년으로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여기 보는 사제는 미사를 봉헌하시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야.“

OLVCS에 등록
2008년 승리의 성모 가톨릭 학교(OLVCS)가 개교했을 때, 이때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일과 OLVC에서의 축제일에 라틴 전통 미사를 돕고 봉사하면서 지역 가톨릭 학교에 계속 다니게 되었다.
 
천주의 섭리는 로버트 맥퍼슨 신부(당시에는 OLVCS 교장, 지금은 미국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교 부교장)가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살 수 있도록 남자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개설하겠다는 계획에 착수했을 때 다시 나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제대 복사로 있으면서 신부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OLVCS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천주님께서 주신 더 큰 은총이었다. 기숙학교에 머문다는 것은 나에게 신부님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 주었다. OLVCS의 비전 중 하나는 필리핀 가톨릭 인구를 위한 미래의 가톨릭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가톨릭 지도자는 가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줄 사제가 될 수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제가 되고 싶은 나의 열망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성 베르나르 노비티에(St Bernard’s Novitiate)에서의 성장
나의 여행은 교장선생님이 맥퍼슨 신부님(Fr. McPerson)에서 마이클 포틴 신부님(Fr. Michael Fortin)으로, 그리고 나서 현재 교장인 피터 포틴 신부님(Fr. Peter Fortin)으로 옮겨가면서 계속되었다. 전 교장선생님이신 마이클 포틴 신부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음,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하고, 그대의 공부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후, 신학교에 입학 지원하기 전에 직업을 추구하기 위해 지역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저의 다음 단계였다. 다시 말하지만, 천주의 섭리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성 베르나르 노비티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 베르나르 노비티에 학장인 코엔라드 다니엘스 신부(Fr. Coenraad Daniels)는 2015년 6월에 제가 예비 신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신학교에 응시하기 전에 2년간 예비 양성소에 있어야 했다.
 
2017년 3월, 나는 드디어 양성 과정을 마치고 곧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교육받는 당시 수사들과 함께 살았던 것이 신학교 생활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서원으로 저에게 그들의 종교적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저는 성소(聖召)를 철저히 지키고 영성 속에서 자라나는 법을 배웠다.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던 성 베르나르 노비티에 몇 년 동안 머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천주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신학교 입학
나는 신학교에서 7년을 보냈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놀라운 은총의 순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호주의 성십자가 신학교(The Holy Cross Seminary)에서 시작했다. 이미 성 베르나르 노비티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점은 성십자가 신학생들이 필리핀 사람들만이 아니라 한국, 인도, 호주, 아프리카 등 다른 국적을 가진 국제 신학교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초자연적인 정신과 신앙을 가진 하나의 공동체로 함께 사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우리 모두가 사제가 되는 것을 같은 목표로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를 위해 천주님의 뜻을 따르고 추구함으로써 서로 돕고 격려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내 이 한 가족 안에서 성 비오 10세 사제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사제 양성과 영적인 삶의 원리를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공부가 더 치열했다. 훈련이 진행되면서 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위대한 가르침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우리의 설립자인 르페브르 대주교는 모든 신학생들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사랑하기를 바랐다. 나는 성 십자가 신학교의 모든 교수님들과 관리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성십자가 신학교 폐교
성비오10세회 총장이 성십자가 신학교의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린 것은 주 중반이었다. 우리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우리는 한창 시험을 마치고 있을 때라 벌써 2학기가 기다려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총장에 의해 성십자가 신학교가 버림받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사제 양성을 계속 받기 위해 독일과 미국, 아르헨티나의 신학교로 따로 옮겨야 했다. 나는 여기 아르헨티나로 보내질 예정이었는데, 몇 달 후면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스페인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도 필리핀의 스페인 문화에서 따갈로그어로 나온 스페인어 단어 몇 개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주님의 은총으로 아르헨티나에 도착해서 생존 작전도 하고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신학교 단계 입학
지난 2년 간의 신학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2022년 4월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장과 같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달랐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같은 성비오10세회(SSXP)이기에 모든 것이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여기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다. 신학생들의 국적이 달랐던 성십자가 신학교처럼 여기 아르헨티나에도 멕시코, 니카라과, 중남미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호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를 배워야 했다. 도착하니 신학교 생활의 새로운 시작을 막 시작한 것 같았다. 지난 2년간의 신학 공부 동안 교수님들로부터 다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정말로 교회와 그 가르침을 위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약속
자, 제 인생의 또 다른 새로운 장이 막 시작되었다. 서품 직전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질문은, "신부님, 어디에 배정되고 싶으세요?"이다. 네, 부제(副祭)로서 마지막 해가 되면 신학교 생활에 긴장감이 감돌게 마련이죠. 저의 첫 번째 임무는 이곳 남미 지역, 특히 이곳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수도원에 있을 예정이다. 저는 전임자인 루이스 클라우디오 카마르고 신부(Reverend Fr. Luiz Claudio Camargo)를 보좌할 예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원은 사실 남미 지역의 성비오10세회(SSPX)의 기초였다. 바로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최초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코레덴토라 신학교이자, SSPX의 첫 번째 집이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신학교를 라 레자(La Reja)로 옮기기 전에 수년간 이곳을 방문하여 사제 서품을 주셨다. 현재는 약 800명의 교구민이 거주하는 수도원이 되었다. 이것은 바쁜 종도 생활이다. 신도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매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영혼들이 전통에 눈뜨기를 기도한다.

수도원에서의 미래 종도직
저는 지금까지 특정한 과제를 받은 적이 없다. 저는 기본적으로 수도원의 공동 임무를 도울 것이다. 단지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고해성사를 듣는 것일 수도 있다. 저는 첫 영성체 받는 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거나 견진성사를 준비하도록 교리를 가르치거나, 성인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일도 가능성을 본다. 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도 제대 봉사자들을 위한 성 스테판 교회 단체가 있다. 이 종도직이 정말 번성하고 있기 때문에 제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제 역할은 앞으로 수도원을 더 잘 알게 되면 미래에 분명해질 것이다. 우루과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곽이나 또는 미래에 있게 될 다른 어떤 장소의 선교 센터들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성소(聖召)를 위한 기도
결론적으로, 모든 독자들에게 제가 열렬히 간청하는 것은 성소가 늘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것이다. 모든 독자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말, 즉 더 많은 성소를 위해 계속 기도해 달라는 말씀이다. 서머스 신부(Fr. Summers)가 아시아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말해왔던 것처럼, 더 많은 성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은 정말 많지만, 일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시아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사제직과 수도 생활을 위해 더 많은 성소를 위한 기도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관대한 도움을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싶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회의 사랑을 위해 시작한 성비오10세회(SSXP)의 사명을 지지하세요. 당신의 자녀가 사제나 수도자로 부름받는 것이 천주님의 뜻이라면 이를 지지하고 더 많은 가톨릭 가정을 위해 기도하세요. 당신의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한 모든 신학생들이 계속 그 과정을 유지하도록 지지하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독자 여러분, 그리고 지역의 신자분들의 기도와 도움과 지원에 감사드린다. 서품받은 이 기쁜 하루를 이루어 주신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 그리고 지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