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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사회 질서(Mark. S. Fischer)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09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사회 질서    

 
Mark. S. Fischer

교리신학과 목회신학을 전공한 신학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만큼 그는 자연히 자신의 현세적 및 영신적 필요가 적당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준비하게 된다. 말하자면 현 사회로부터 주도권을 잡는 사람이 나타나서 현 사회를 그 목표를 향해 관념적으로는 자기 책임 하에 있는 영혼의 구원을 향해 인도한다. 진정한 인도자는 그대를 어딘가로 이끈다. 갖가지 요인에 의존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러나 결국 천국 아니면 지옥이 유망한 것 그 두 가지이다. 사람은 정상적으로는 연옥으로 인도되지 않지만 자신이 그 곳에 있음을 발견하고는 유쾌하게 놀랄 수도 있다. 자, 오늘날 세상으로 변형된 그 간단한 소형 모델은 사람으로 하여금 미국에 그것을 적용하도록 어려운 던지기를 맡긴다. 확실히, 정교(正敎) 분리로써 빌 클린턴은 천당이나 지옥과 같이 어떤 영신적인 목표를 향해 우리를 인도하지는 못한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가 그의 정신에는 결코 교차되어 있지도 않다! 교황은 우리를 천당으로 인도하고,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으로 인도하고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으로 인도한다..... 그럴까?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식 경험”에 흠뻑 젖어 있어서 홍당(紅糖)과 자동차 기름 사이의 관계보다도 더 교회의 일과 국가의 일 사이의 관계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의 결론이다. 이는 혁명의 세기부터 탄생된 위험한 속성인 동시에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슬람교 국가들을 가로막은채 널리 퍼져 있는 속성이다. 진실로 “미국식 경험”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현재 모두는 아니라 해도 거의 모든 가톨릭 국가에서 국교로서 가톨릭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와해시키는 도구가 되어 온 바티칸 공의회 자체를 퍼트려 왔다. 이탈리아에 있는 학교에서 십자고상을 끌어내리고, 그 곳에서 낙태를 합법화함,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이의 성직자 계급에 있는 많은 이에게 이상하고 또 이슬람교 사원의 존재는 교황에 의해 찬양되기 까지 했다. 그런 류의 시나리오는 세계에서 원래부터 가톨릭인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반복되어 왔으며 교파들이 떼를 지어 그 공백을 메꾸어 교회 공직자 들이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선량한 미국인은 국가의 일을 간섭하는 교회에는 어떤 자격이 있는가? 라고 질문한다. 교회와 국가는 두 가지 다른 궤도를 달리는 것이다 그대도 알다시피 그들의 방침은 참말로 교차하지 않는다. 자, 세상의 상황을 보라 매춘, 살인, 십대들의 성 생활, 원치 않는 임신, 낙태, 강간, 피임, 전쟁, 부패, 공해, 간음, 마약 그리고 그것이 오로지 저녁 뉴스이다. 교회와 관계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소름끼치는 가능성은 그것이 모두 교회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역사상 세상에 그런 방종이 있었던가? 교회에서? 필적할 만한 것이 있는가? 어린이에 대한 이상 성욕, 동성애, 교회의 파괴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직자 및 수도자의 대량 환속, 성소의 극적인 격감, 자유주의, 현대주의, 사제 및 신자들에 의한 신앙의 상실, 이단, 분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캔들, 불화, 그것은 어디서 끝나는가? 그것은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교회 및 세상에서의 지도부의 붕괴에까지 추적될 수 있을까? 본 필자는 교회에서의 지도부의 위기가 세상에서의 위기로 귀결되었다고 본다.


 실제 상황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온 인류는 자기들이 알건 모르건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교회에 종속되어 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지 혹은 배교라도 그런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전 세계가 교구로 나뉘어 있다. 각 교구는 본당이 라고 하는 영역별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 본당의 주임 사체는, 그들이 알건 모르건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그 영역의 범위 내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의 목자이다. 주교는 자기 교구 안에 있는 모든 양떼, 심지어는 방황하는 이들의 착한 목자이신 것처럼 주교는 자기 교구의 영역에 있는 모든 이의 목자이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무신론자, 그대들이 열거하는 -그들이 다 그의 것이다.


 이제야 이해했는가? 간단히 말하면 국가는 사람들의 사회이다 온 인류는 사제이시고, 예언자이시며,  왕이시고, 또 당신의 교회이신 그리스도께 종속되어 있다. 지상의 교회는 지상 세상의 “생명의 중심‘ 이다. 그 심장은 세상에 있는 모든 영역을 통하여 성총을 펌프질한다. 교회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정신 은 구원의 수단으로서 “그들(이단적이고 열교적인 교회 및 교회의 공동체)을 이용하기를 삼가지 않으며” (U R I,3) 그들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인들”도 볼 수 있는 교회 밖에서 “성총의 생활”을 누린다. 고 하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상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걸쳐서 아무런 성총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성총이든지 또 온갖 성총은 가톨릭교회를 통하여 오며 다른 것을 통해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성신께서는 “갈라져 나간 형제들”을 위한 구원의 수단으로서 가톨릭교회를 이용하실 수 있지만, 신비체로부터 분리된 열교(개신교) 분파를 성신께서 구원의 수단으로서 이용하시리라는 것은 가당치도 않게 보인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거대한 “성총 공장”이며, 생산된 성총이 전 세계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성총의 증가가 세상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성총에 있어서의 격감은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비오 신부님께서 옛날 미사 시절에 말하셨듯이 “세상은 미사로써 결합되고 있다.”


 트리덴틴 미사의 시절에 세상이 미사로써 결합되고 있었다면, 제 2차 바티칸공의회를 따라 그 이름으로 변화가 적용되는 오늘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세상의 인도자로서의 교회를 생각하고, 또 그 인도자가 악하게 타락한다면, 세상은 어디로 인도되는가?

 1962년 이전의 시절에 있던 세상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공산주의는 진정 거대한 위협이었다. 이는 세상을 기만한 혁명이었다. 그것은 사회의 내부로부터 치밀어 오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산주의 치하에 있던 사회는 그것에 대하여 자주 반기를 들었었다. 만일 민중에 부과된 체제가 위험하다면 사회의 개인들 내부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혁명을 상상하라. 1962년 이전에 그런 현상이 있었는가? 교회에서 도취감이 퍼져 나가고 혁명이 시작 되었던 상태인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대를 생각해 보라.


첫째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그런 다음에는 혁명의 하수 오물 및 불필요한 변화의 거대한 분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교회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물론 세속의 사회학자들은 말하리라. 그의 현대주의적인 정신은 종교를 현상으로서 본단다. 내부로부터 비롯되는 개인의 내적 자아의 돌발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냉기”를 경험하고는 생각하는 어떤 것이란다. 그러나 정말로 실제 그대로를 볼 줄 아는 가톨릭 신자라면 교회의 세상에 대한 관계를 실제 있는 그대로 아는 고로, 공의회의 여진(餘震)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이다. 그래서 자국어 미사, 미사형식과 내용의 변질, 테이블로 된 제대, 수도복 및 수도 생활의 사라짐, 결혼하는 사제, 성직자 및 수도자 계층으로부터의 대량 이탈, 사제 및 수도 생활에서의 거의 모든 자격의 완화, 무서운 성상 파괴, 교리상의 혼돈, 예전 미사 및 성교(聖敎) 규계(規戒)에서의 변화, 성직자 및 수도자 사이에서 성적인 타락의 출현, 종교의 자유.... 나열이 계속 된다. (그리고 언급된 모든 것이 어떤 구속의 완화 어떤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그릇된 자유에 관련 되어 있음을 주목하라) 인종 폭동, 성 혁명, 히피족, 우드스톡, 마약, Roe v . Wade, 길고도 오래 끌며 성공적이지 못한 전쟁으로 이끈 베트남에서의 결정적인 행동의 결여, 급진적인 여성주의, 살인과 강간을 포함하여 범죄율의 극적인 증가 희생자보다도 범죄자에게 호의적이게 나타나는 범죄 정의 체계 세계에 걸쳐서 일반적인 정치적 자유주의 및 방탕 사회의 세속화 헤이트애시버리의 동성애자 폭동 이후에 공식적으로 과시되고 있는 온갖 형태의 타락사회에 대하여 그런 타락을 장제로 수용하도록 하는 흥분한 움직임,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문자 그대로 메스꺼움 (앗 나우새암-ad nauseam)을 가져온 공의회 동안 및 이후의 시대 속에 녹아 있다.


 1960년에는 유죄 판결된 강간범이 감옥에서 방면되고 마이크 타이슨과 같이 8월에는 잠깐 동안의 싸움에 대해 2천5백만 달러가 주어지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었던가? 1960년에는 “불완전 출산” 낙태의 합법성에 대하여 공식적인 논쟁이 있게 되고 그에 따라서 의사가 노동자를 설득하여 모친의 태중으로부터 나오는 도중에 있는 아기를 죽이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그 누가 호텔 방에서의 매음 행위에 의해 주어진 코카인 환각제를 사용함으로써 사진 찍히고 고발된 후에 주의희 의사당 시장의 재선을 두고 심상치 않게 압도적 승리의 가능성으로 삼으려 했던가?
   
 나는 공의회 이전에 살리는 않았지만 그것을 상상하지 못하겠다. 그 다음에 오는 세상의 혼돈으으로 부터 공의회까지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그들의 정신 속에 크랭크로 연결하도록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면 나는 의문을 공ㄱ된 채로 남겨 두고 싶다. 다음을 기억하라 교회 당국은 제 2차 바티칸과 교회에서의 현대의 위기 사이에도 연결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로 한다. 공의회 이후의 교회의 끔찍한 붕괴를 뒷받침하는 통계는 어떤 식으로도 공의회 및 그 정신에 연결되어 있지 않단다 오히려 공의회에 충실하고 그것을 계속 채택 하라고 하는 끊임없는 권고가 있다.


 세계에는 현재 요한 바오로 2세의 취임 초기보다 더 적은 32,200명 이상의 사제가 있다. 이를 해석하면 세상에서 매일 드려지고 있는 성총의 샘인 미사는 보다 적은 32.000대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릇된 의향과 재료와 형식으로 말미암은 무효한 미사 그리고는 널리 퍼지는 봉헌의 효험을 계산에 넣고 그리고 이 시대에  있어서의 성총의 샘을 그려 보라. 사제들은 성총의 분배자일 뿐만 아니라, “사제, 예언자 그리고 왕”이신 자기들의 신성한 주재를 좇아서 모범으로 삼는 인도자이다. 17년 동안에 세계에서 32,00명 이상의 인도자의 에누리 없는 손실이 위기를 성립 시킨다고 누군가가 말했을까? 이상의 것을 어떤 사람도 천추님의 성총에 의하지 않고서는 인도하지 못하는 세상에서의 지도부의 위기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의 비참한 상태가 30년도 더 전에 주교들의 모임과 연결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다. 그렇지만 가장 현대까지도 고도로 강렬한 할로겐 등대라 할지라도 맹인의 눈을 밝혀 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온 인류의 빛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The Angelus, 95년 10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