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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루터의 오류와 이단성에 관하여(2016-11-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14





루터의 오류와 이단성에 관하여- 성신강림 후 제26주일(2016-11-13)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2주 전에 교황은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 교회에 95개조 논제를 부착함으로써 시작된 루터의 반란 500주년을 기념하였습니다. 루터를 기념하는 것은 엄청난 스캔들(악한 표양)인데 매스컴은 그 문제를 많이 다루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이와 같은 스캔들은 오늘날 너무나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행동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루터는 길을 잃어 방황하는 수백만병의 영혼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끈 역사상 최악의 이단자 중 한 명입니다. 


루터는 때때로 ‘개혁가’로서 상징되는데, 그가 교회의 잘못에 대해 투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바로 이것이니, 그는 스스로 자기가 비난한 것보다 더 많이 악한 남용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지킬 세 가지 서원을 깨뜨리고 떠났으며, 수녀원을 떠나 자신을 따르는 수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루터는 거룩한 성물을 독성하는, 특히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파괴하고 교황제도를 비난하며 자주 술에 취하는 등, 말 그대로 많은 것을 남용하는 폭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합법적인 권위를 거슬러 격렬한 반란을 이끌었고,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전쟁’의 원인 제공자였습니다. 어찌 이런 사람을 모범으로서 대표할 수 있나요? 이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루터의 신학이란 ‘오직(alone)’이란 단 하나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오직’이란 말로써, 그는 진리를 비틀어 왜곡했고 상실했습니다. 그는 주장하길,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만으로, 오직 성경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입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참 신앙을 상실했고, 성화(聖化)의 은총을 상실했으며, 성경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상실했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이신 그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저 ‘오직’이란 말이 루터에겐 너무 중요하여 성경 안에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그러면 우리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의화(義化)되었으매,”(로마5;1)라고 쓰신 곳에 루터는 바오로 성인께서 쓰지 않은 ‘오직’이란 말을 붙였습니다. 심지어 그를 추종하는 개신교인들에게 이 점을 지적할 때, 왜 ‘오직’이란 말을 붙이느냐고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전문가인 루터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스스로 심지어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고쳤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표현으로, 루터는 사랑(자비)의 필요성을 거부합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의화(義化)는 외부적인 것이고, 사람 통제 밖의 것이며,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오직 천주님의 선언일 뿐이라 하니, 그 사실에도 불구하고 루터에 따르면, 그와 같은 사람은 그의 죄 안에서 그대로 죄인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루터를 추종하는 개신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것은 의화된 ‘오직 믿음’ 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톨릭교회는 바오로 성인의 말씀인, “나 설령 건설적 설교의 특은을 가지고, 모든 신비를 알고 온갖 인식을 가질지라도, 또 나 설령 산을 옮길만한 완전한 신앙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을진대 아무것도 아니로다.”(코린토 전13:2) 그래서 사랑이 없는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는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이란 오직 믿음만으로는 의화되지 않습니다.


왜 사랑이 또한 필요한가요? 의화는 단지 정의(正義)의 외적인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죄의 상태(영적인 죽음)에서 은총과 정의의 상태(영적인 생명)로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몸이 영혼과 분리될 때 육신이 죽은 것 같이, 영혼은 천주님과 분리될 때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반대로, 몸이 영혼과 일치될 때 몸은 살아있는 것이고, 영혼이 천주님과 일치될 때 영혼은 살아있습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사랑은 완덕을 매는 끈”(콜로새3;14)이라 하신 것처럼 천주님과의 일치는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와 반대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라나타(주: 주여, 임하소서의 뜻)”(코린토 전16;22) 그래서 만약 사람이 사랑이 없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성 야고보 말씀하시길,: “육신이 영혼이 없이는 죽은 것인 것과 같이, 선행이 없이는 신앙이 또한 죽은 것이니라.“(야고버2;26) 바오로 성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가치 있는 것은 할손례나 비할손례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신앙이니라.“(갈라타5:6)하신 것처럼 야고보 성인은 사랑의 착한 행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영혼의 내적인 변화와 사랑이 없이 오직 믿음만으로, 이런 법적상의 믿음인 외적인 신앙만으로 의화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루터는 진정한 신앙 그 자체조차 상실했습니다!


그러니 루터는 사람이 선행 없이 ‘오직 은혜’만으로 구원된다고 주장합니다. 루터는 주장하기를, 사람이 어떤 좋은 일을 하던 간에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대해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어떠한 선행의 필요는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를 구원한다고 합니다. 이는 명백히 성경에 어긋납니다. 진실은 바로, 회두 전에, 의화되기 전에, 이와 같은 회두에 가치가 있을 만한 선행이 초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니, 실제로 은총의 상태에 있기 전에 사람은 죄의 상태로 있는 것이고 은총이 아닌, 벌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회두가 있은 후에는, 사람이 죽기 전에는 선행의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이 선행은 구원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착한 행실은 나무로부터 요구되는 좋은 열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는 뽑히게 될 것입니다(루까13-9) 이러한 착한 행실은 그들이 받은 재능과 더불어 열심히 일한 하인이 벌어들인 부수적인 재능이지만, 받은 재능을 결실 맺지 못한 ‘무익한 종’은 밖의 어두움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마테오25:;30) “좋은 실과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다 베어 불 속에 넣으리라.”(마테오3;10) 간선된 자들은 “내가 굶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보상을 받습니다. 여기서 “...을 했기 때문에”라는 이 작은 말은 저들의 착한 행실 때문에 그들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저주받은 사람들은 저들이 착한 행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받습니다.(마테오 25:31-46)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티토에게 교훈을 줍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곤궁한 중에서 선업 닦기를 배울지니라.”(티토3;14) 천주님이 착한 행실에 상을 주시는 것은 성경의 너무나 많은 구절에 명백히 나옵니다. 잠언서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19:17)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르시길, “너희는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 거기는 동록과 좀도 손상치 못하고 도적도 파가지 못하노니”(마테오6;20) 그리고 환대(歡待)에 대한 결실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을 위하여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인을 대접하는 자도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테오10:41) “인자(人子) 자기 성부의 영광과 천신 중에 옹위하여 와서 이에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리라.”(마테오16;27) “보라 나 미구(속히)에 오리라. 나의 줄 바 보수의 (상벌은) 내게 있으니, 나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바를 따라 보답하리라.”(묵시록22;12) 그래서 천국은 저들의 착한 행실 때문에 의로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지옥은 저들의 악한 행실 (또는 선행의 결핍)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거부함으로써 루터는 성화은총을 상실했습니다! 특히 그는 보속의 착한 행실, 우리 죄에 대해, 내 이웃의 죄와 연옥 영혼들에 대한 배상의 행실을 거부했습니다. 예수성심은 파레 르 모니알 (주: 1644년 창설한 방문 수녀회 소속 성녀 마르가리타 알라코크 수녀로 유명. 예수 성심과 성체 신심 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순례지가 됨. Paray-le-monial)에서 특히 첫 금요일에 이런 배상을 요청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은 특히 첫 토요일에 이와 비슷한 배상을 요청했습니다. 현대 세상의 압도적인 사악함, 특히 낙태라는 사악함을 볼 때, 이와 같은 착한 행실의 긴급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루터는 ‘오직 성경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러나 성경 그 자체는 그리스도에 대해 모든 것을 담아놓고 있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 문제(門弟)들 앞에서 과연 다른 영적(靈蹟)을 많이 행하셨으되, 이 책에는 다 기록하지 못하고...”(요왕20:30) “예수 행하신 바 다른 행적이 또 많이 있으니, 만일 다 낱낱이 기록할 양이면, 그 기록할 바 책을 이 세상에라도 다 능히 담지 못할 줄로 여기노라.”(요왕21:25) 예를 들어 바오로 성인은 예수의 말씀이신 (“남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니라.”:종도행전20::35)를 언급하는데, 이것은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성 루까도 우리 주님이 “이에 종도들의 명오(明悟)를 밝혀 하여금 성경 뜻을 통달케 하시고”(루까24:45)를 언급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종도들에게 주신 성경의 이러한 내용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극히 일부만이 서간경에 있고, 의심의 여지없이 더 많은 부분은 교부들에 의해 쓰여진 종도들의 구술(口述)로 인한 가르침 속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부들의 가르침, 즉 전통(성전聖傳)이 필요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친히 “말로나 혹은 서간으로써 전달”(테살로니카 후 2;14)하십니다. 여기서 성 바오로는 자신이 쓴 서간 말씀을 구술된 말씀과 동등한 입장으로 놓습니다. 구술로 전해진 말씀, 즉, 종도들과 그의 계승자들의 말로 전한 가르침을 거부함으로써, 루터는 성경의 적절한 이해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개신교인들은 대체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령의 감도를 직접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자체 반박될 여지가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라면 성령은 수차례 자신과 모순될 것이니, 왜냐하면 개신교에는 주요 교리에 대해 서로가 반대하고 있는 너무나 많은 분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몰몬 교도들은 저들의 ‘몰몬경’을 지지하는 가운데 서로 반대되는 것을 주장하고 있거니와, 심지어 무슬림도 저들의 ‘코란경’을 지지하는 가운데 서로 반대 주장을 합니다. 이 엄청난 분열과는 대조적으로 성 바오로는 “한 분의 주님, 하나의 신앙, 하나의 성세”(에페소4;50)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실제로, “천주는 혼란함의 천주 아니시고 오직 평화의 천주”(코린토 전14:33)입니다.


‘오직 성경만으로’ 주장함으로써, 루터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교회에 관해 언급하는 풍성하고도 분명한 구절을 더 이상 분별할 수 없었으니, 이것이 루터의 마지막 ‘오직’이란 말이었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중재 없이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가길 주장합니다. 그리스도 혼자만이 중재자라는 핑계를 대고 교황도, 사제도, 성인도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모님이나 성인들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를 거부합니다. 바오로 성인말씀하십니다: “천주는 다만 하나이시며,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역시 다만 하나이시니라. 이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니”(티모테오 전2:5) 그러나 ‘하나의 중재자’가 ‘홀로, 혼자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의 중재자’라는 뜻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성부께 올 자 없느니라. ”(요왕14:)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혼자가 아닙니다. 바오로 성인은 여러 장소와 많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인 교회의 머리”(콜로새1;18)라고 하십니다. 머리가 몸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거부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마테오9:15)이고, (가톨릭) 교회는 신부입니다.(요왕3;29, 묵시록21:2,9) 신랑과 신부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둘이 아니요 오직 한 몸이라. 그런즉 천주 결합하여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지니라.”(마테오19:6)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를 거부함으로써 루터는 그리스도를 잃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은 한마디 ‘오직’이란 말이 어떻게 참으로 파괴적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말 때문에 루터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참 신앙을 잃고, 은총을 잃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잃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낼 수 없고, 착한 행실로부터 은총을 떼어낼 수 없으며, 말로 전달된 말씀과 글로 쓰인 성경과 떼어낼 수 없고, 교회와 그리스도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부분만을 받아드려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 교리 전체를 받아드려야 합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오직 가톨릭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의 모든 전체를 발견합니다.


모든 성인들은 가톨릭 신앙과 밀착되어있고 천주님을 위한 위대한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성인들은 착한 행실에서 부유하였고, 성전(聖傳)에 의해 수세기동안 전승되어 온 것에 충직하였으며, 그리스도 그분의 교회 안에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성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들입니다. 그분들은 잔치에서 주님과 함께하였습니다.(루까14;1) 만약 다른 손님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한다면 주님의 잔치에서 좋은 손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에게 헌신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실제로 왕을 제외하고 잔치 방에서 다른 사람과 말하길 거부하는 사람은 매우 무례합니다! 그는 적합한 손님이 될 리가 없고 쫓겨날 것입니다.  

신앙의 수호자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루터의 오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가톨릭 신앙을 우리가 지킬 수 있도록, 루터가 행한 대로 이것 혹은 저것을 배제하지 않고서 온전한 가톨릭 신앙 전부를 지키도록, 천국에서 보물을 얻게 하는 사랑을 통해 일하는 가톨릭 신앙을 지키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한 “성도들 중의 한 신민(臣民)”(에페소2;19)이 되기에 합당하도록 하게하여 지복직관 속에서 성인들과 영원히 함께하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